쑥쑥 큰 재벌들, 서민들 살림살이 나아지셨나요?

[2010 시민경제강좌 ④] 김상조 교수가 말하는 '재벌 중심 체제의 한계'

등록 2010.10.29 09:36수정 2010.10.2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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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투자가 한국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입니다. 상위 5대 재벌 그룹의 투자액을 합치면 전체 투자의 30%예요. 정부는 이런 거대 재벌들을 지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은 서비스업이나 중소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대마불사. '큰 말은 웬만해서는 잘 죽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재벌 중심의 투자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속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미국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죽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대형 금융기업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1960년대부터 유지해온 재벌 중심의 한국형 경제모델은 앞으로도 유효할까?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연구가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시급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난 21일 열린 '2010 시민경제강좌'에서 김 교수는 "재벌은 한국경제의 명과 암을 동시에 드러내는 야누스의 두 얼굴"이라며 "재벌이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최고수준의 생산력을 상징하지만, 재벌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우 산업 간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재벌이 훌륭한 성과를 내도 이것이 국민 전체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는다"며 "재벌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경제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 중심 체제의 한계'를 주제로 서울 한국NPO공동회의 교육장에서 열린 이날 강의에서 김 교수는 "재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기업집단 관련 법체계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기업집단 자체에 법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벌만 크니 중소기업은 죽어... 기업 양극화 심각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재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재계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자본가와 기업가의 무리', 다른 하나는 '대자본가의 일가나 친척으로 이뤄진 다각적인 기업체군'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재벌은 이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가적으로 재벌에 경제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재벌이 가진 가장 긍정적인 측면은 이들이 거대한 기업이기 때문에 보유할 수 있는 생산력인 것 같아요. 그런데 보통 그런 것들이 황제적 CEO 등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와 맞물려 있거든요. 전자가 밝은 면이고 후자가 어두운 면인데 그나마 재벌이 가진 생산력도 한국에서는 산업 간 연결고리가 잘 짜여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지속한 결과 현재 자산 규모 상위 30대 그룹의 자산 총액은 GDP의 80% 수준"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재벌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경제적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거대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이 국내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막을 수 있으며, 이 경우 국민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 내 재벌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인 전기전자 조립가공 부문의 경우 지난 1997년에 0.347이었던 수입유발계수가 2008년에는 0.501까지 상승했다. 1000원짜리 전기전자 제품을 생산할 때 필요한 중간재 중 501원어치를 수입해서 사용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를 재벌과 대기업의 독주로 부품과 소재 생산을 담당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재벌의 선도적 성장이 중소기업을 포함한 국민경제 전체의 동반성장을 이끌어낸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논리는 현실적인 유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a  지난 21일 한국NPO공동회의 교육장에서 열린 2010시민경제강좌에서 김상조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지난 21일 한국NPO공동회의 교육장에서 열린 2010시민경제강좌에서 김상조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 김동환

지난 21일 한국NPO공동회의 교육장에서 열린 2010시민경제강좌에서 김상조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 김동환

 

재벌 총수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비단 경제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김 교수는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이 정치·사회·문화·이데올로기적 지배력으로까지 확장되며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 총수는 사법처벌도 공정하게 받지 않고, 매체별로 광고물량을 조절해서 언론에도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재벌 경제연구소의 이데올로기 지배입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18개 신문사에서 삼성경제연구소를 인용한 보도 건수가 3197건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삼성이 하면 다르다', '재벌에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이다'라는 관념이 국민들의 경제 인식을 지배하게 될 때 우리의 현실진단은 심각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죠."

 

경제개혁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기업인들의 경우 1심 피고인 149명 중 106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 중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은 60명인데 이들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1명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특히 재벌 총수와 관련된 형사재판의 경우 최고형을 받은 사람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며 "(이런 풍경은) 형법상 징역 3년이 넘으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배임·횡령죄는 이득액이 50억 원 미만일 경우 징역 3년, 50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의 형벌이 정해져 있는 중범죄"라며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배임·횡령 유죄를 선고받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현실은 한국 법원이 기업인 범죄에 관대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으로 재벌 비자금 조성 막을 길 없다"

 

일가 친척으로 구성된 기업체군으로서 재벌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 김 교수가 꼽은 재벌의 대표적 폐해는 족벌 및 세습 경영. 김 교수는 "요즘은 재벌 총수들이 자녀에게 자산을 증여할 때 현대차가 모범을 보인 방식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벌 그룹마다 반드시 있는 계열사가 건설, 물류, 전산회사예요. 그룹 내의 물량만으로도 존속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경우 이 회사들은 총수일가가 지분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글로비스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의 물류를 담당하는데 그룹 내 회사들과 정상적으로 거래를 하더라도 물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현장경제적 이익을 얻게 됩니다. 회장 30억 원, 장남 20억 원 내서 총 50억 원으로 만든 회사가 지금 시가 총액이 2조원이 넘어요. 재벌들이 요즘은 이런 방법들을 씁니다."

 

세습 경영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러한 유형의 거래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시장경쟁을 거치지 않고 사주의 장남이 대주주로 있는 사업체에 독점적인 사업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런 부분들은 기존의 상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독일처럼 상법에 기업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기업인들의 차명계좌 개설과 비자금 조성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행 금융실명제는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게 만드는 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금융실명제법의 제도적 공백을 메우고 정비하면 적어도 재벌 총수들이 차명계좌로 비자금 관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서민들은 금융실명제법 어기면 대단한 처벌을 받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금융실명제법은 차명계좌로 거래해도 아무 법적 처벌이 없습니다. 금융기관에서 고객이 계좌를 만들 때 실명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고 해도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는 게 전부입니다. 혹시 누가 차명계좌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계좌가 1993년 이후에 만든 것이면 실명으로 전환할 때 아무런 과징금이 없어요. 이러니 금융실명제가 될 리 없죠."

 

김 교수는 "국회에서 이런 금융실명제법의 공백을 보완해서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사실 현행 금융실명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국회의원들이라 행정부 차원의 입법이 아니라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2010.10.29 09:36ⓒ 2010 OhmyNews
#김상조 #시민경제강좌 #재벌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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