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량만방조제 갈대밭
성낙선
그 후에 안남어촌체험마을에서 한 사람을 더 만났다. 그들은 <우리나라 해안여행>을 제작한 이후에 다시 어촌체험마을 관련 홍보물을 제작하기 위해 이곳에 내려온 참이었다. 마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뻘배타기와 물대포쏘기 체험 등의 행사를 막 끝낸 뒤였다. 그래서 한동안 책과 관련해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해소됐다. 책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됐다. 서해, 남해, 동해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다른 작가들이 참여했고, 그 세 부분이 모여서 하나의 책이 만들어졌다. 책 표지에 지은이가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어촌어항협회로 되어 있지만, 실제 원고를 작성하는 작업에는 여행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제작 기간이 너무 짧았다. 콘텐츠 제작에 겨우 한 달 반 정도가 소요됐다. 이 책이 갖는 의미와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편집상 몇 가지 흠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편집을 업으로 해온 사람이어서 그들이 어떤 애로를 겪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개정판을 내는 건데, 지금은 그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여러 군데다.
애초 책이 잘못되어서 개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자전거여행자들치고 이 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더욱 완벽한 책, 더욱 사용하기 편한 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사용하는 데 유의할 점, 그리고 이 책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정하면 좋을지는 나중에 이 여행이 끝난 후에 한 번 더 정리를 해볼 생각이다.
가슴 뜨끔한 질문... "혹시 집에서 쫓겨난 거 아니냐?"유쾌한 만남이었다. 덕분에 안남어촌체험마을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됐고, 그날 밤을 마을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 어촌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어촌체험마을을 지났고 체험객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 마을의 '체험'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공무원도 있고 학자도 있다. 그들의 노력과 지혜가 모여서 마을마다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행사 주최자와 참가자들 사이, 행정 주체와 객체 사이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고민도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만한 갈등과 고민거리로 마을의 미래와 희망을 포기할 리 없다. 그들이 어촌에 품고 있는 깊은 애정이라면 그처럼 소소한 문제들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비록 하루 저녁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많은 걸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꽤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때마침 쉬어가고 싶던 터에 맘 놓고 주저앉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달린 거리는 45km, 총 누적거리는 2582km다.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을 주민 한 분이 날 보고 "실례지만, 혹시 집에서 쫓겨난 게 아니냐?"고 물어서 좀 당황했다. 웃자고 한 말이다. 그런데도 방심중에 그 말이 내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뜨끔했다. 집을 나선 지 벌써 40여 일째다. 아닌 게 아니라 이쯤 되면 내 발로 나왔든 등 떠밀려 나왔든 집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을 앞 바닷가에 신기한 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일 아침 6시 30분에 그 돌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 그러려면 6시경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얘긴데, 내가 과연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바닷물이 가득 들어온 뒤에는 그 돌을 볼 수 있는 해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늦어도 아침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언제 또 다시 그 돌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내일 아침, 무슨 일이 있어도 6시에는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