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겨울이 온다면 뭘 입어야 할까?

[김호기 교수의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2 ①]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체제>

등록 2010.11.10 18:00수정 2010.11.10 18:00
0
원고료로 응원
"미국이 주도하던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최근의 세계화 추세에 한국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대응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지점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이론은 우리가 새롭게 세계화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1월 11일부터 이틀간 한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는 환율 분쟁 조정과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성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특히 미국이 주장하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과 중국이 문제를 제기한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에 대해서는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한국과 깊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두 나라가 부딪힐 경우, 한국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실리를 취해야 할까.

지난 3일 열린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 2' 첫 번째 특강에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나라에 국한해 해법을 찾는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개별 국가들 간의 관계만 가지고는 세계 현상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며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위기는 극소화시키고 기회는 극대화하는 전략을 읽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체제>를 교재로 열린 이날 강의에서 "국가 간의 관계를 뛰어넘는 금융자본의 이동이나 초국적 기업의 활동은 개별 민족국가 간의 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자본주의가 '존재의 가을'에 도달했다"던 월러스틴의 말을 인용하며 미래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 양상에 대해 전망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세계-체제'로 자리 잡았나?

a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대표작인 <근대 세계체제>는 종속 이론을 세계적으로 확대 적용했다는 점과,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사회과학 분석단위에 일대 전환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월러스틴은 이 책에서 국가 단위의 분석을 거부하며 '세계-체제(world-system)'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체제'란 생활이 자기 충족적이어야 하며 내적인 동기만으로도 체제의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하는 집단을 말한다.

월러스틴의 분류에 따르면 민족국가인 한국은 자급자족이 이뤄지지 않으며 한국 내부만의 발전동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도 아니므로 '체제'라고 볼 수 없다. '체제'는 그 안에서 모든 변화와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인 분석이 가능하지만 '체제'가 아닌 경우는 정확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한국 외부의 요인을 감안하지 않은 한국 분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체제'일까. 경제학자 칼 폴라니에게 경제사를 들었던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의 핵심을 자본이 아니라 시장에서 찾았으며, 국가를 넘어서 교환이 이뤄지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유일한 세계체제로 보았다. 역사를 사건 중심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설명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김 교수는 "이런 월러스틴의 개념은 프랑스 아날학파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로델은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국민국가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보았고, 역사적 시간의 지속을 단기와 중기, 장기로 분류했는데 이런 점들이 월러스틴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다.

"1987년 6월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은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단기 지속의 관점에서 보면 전두환 정권이 1984년 전·후로 유화정책을 쓰면서 학생운동이 활발해졌는데 이때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기 지속의 관점에서 보면 1960년 4월부터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강렬한 열망이 사회적으로 분출됐으니까 그때로 볼 수 있겠지요. 장기 지속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민주화 운동이란 것은 개인의 권리를 확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니까 19세기 동학농민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월러스틴은 이런 장기 지속에 주목한 셈입니다."


김 교수는 "역사적 사건에는 여러 개의 시간이 흐르는데 이것들을 다 살피지 않으면 해당 사건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월러스틴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역사적 시간의 장기 지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이 장기 지속의 관점에서 보면 영국의 산업화로부터 촉발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월러스틴은 자신의 책에서 서유럽, 남유럽, 동유럽, 아메리카 등의 지역들이 중심부와 반주변부, 주변부로 나뉘어 분업을 담당했다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중심부는 다른 지역에 대해 우월한 힘이나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지역이고, 주변부는 원자재를 싸게 공급하며 중심부에게 경제적인 수탈을 당하는 지역, 반주변부는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분석틀은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이후 찾아온 '자본주의의 가을'

월러스틴은 1974년 <근대 세계체제 1>을 출간한 이후 일관되게 위의 분석틀로 '세계-체제'로서 자본주의를 다뤘다. 그는 현재 3권까지 출간된 <근대 세계체제>에서 15세기 중엽부터 20세기까지 자본주의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분석했으며 특히 20세기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편입시켜, 유일하게 자본주의 세계 경제만 존재하던 시기라고 보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저작에서는 "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문명이 존재의 가을에 도달했다"고 평가를 내놓았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탄생과 성장, 절정과 몰락이 있는 하나의 역사적 체제로 봤습니다. 월러스틴도 마르크스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자본주의가 존재의 가을에 들어섰다는 얘기는 그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커져서 평형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분기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역사적 체제로서 자본주의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운 가을이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끝이 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역사적 사회주의로 전환될 것이라는 게 월러스틴의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가을' 이후부터 역사적 사회주의가 오기 전까지 자본주의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김 교수는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미래에 대해 세 가지 가능성을 짚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신봉건주의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 프랑스의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중세의 장원경제는 독립된 단위들이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전 지구적으로 지식과 정보, 높은 기술을 독점한 소수의 계층들이 영주가 되고 빈곤계층들이 장원 안에 갇히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월러스틴은 미래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민주주의적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와 평등주의적 세계 질서가 잡힌 사회도 함께 언급했다. 김 교수는 "세계화 시대에 그리고 있는 20:80의 사회가 월러스틴이 말한 민주주의적 파시즘 사회"라며 "월러스틴은 세계가 1/5의 상층과 4/5의 하층으로 나뉠 가능성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 번째 형태가 평등주의적 세계 질서가 잡힌 사회입니다. 월러스틴이 꿈꾸던 사회상이기도 한데요, 그는 1968년에 전 유럽을 강타했던 68혁명 같은 시민이 중심이 된 반체제 운동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세계적 규모에서 고도로 탈중심화된 평등주의 질서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a  수강생들이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수강생들이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 권우성


김 교수는 강의를 마치며 월러스틴의 영향을 받은 국내 이론으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을 소개했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가 한국과 북한을 아우르는 중범위적인 독자 체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세계 사회가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칠 때 분단 체제를 거치고 한국 사회가 세계 사회에 영향을 끼칠 때도 분단 체제를 거치게 된다. 김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분단현실 때문에 한국의 주식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꼽을 수 있다"며 "미국이나 중국의 대한 정책은 분단 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호기 #사회학 고전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5. 5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