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압구정교회.
김준희
1990년 전후, 한때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최고급 승용차에다 값비싼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다니던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서울 강남구 일대였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돈 씀씀이'를 바탕으로 젊은 여자들을 손쉽게(?) 유혹했다. 특히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는 이들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세워놓고 "야! 타!"를 외치면, 스스럼없이 차에 올라타는 젊은 여자들이 있었단다.
그렇게 이들은 강남 일대에서 불야성의 밤을 만들어갔다. 퇴폐와 향락으로 손가락질도 당했지만, 이들은 개발과 투기 열풍의 혜택으로 많은 부를 소유한 부모의 힘을 빌려 유유자적하며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밤 문화를 즐겼다.
이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준 반면,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 젊은이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해 '오렌지족' 대신 '낑깡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낑깡도 귤이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지언정 낑깡족은 나름대로 '대한민국 1% 젊은이'가 되고자 불나방 같이 로데오거리로 모여들며 신분 상승을 꾀했다. 벼락처럼 순식간에 집중된 거대한 부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오렌지족'이라는 정체성이 불명확한 향락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렌지족에 대한 간접적인 기억은 나(김준희)에게도 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서울 시내의 한 군부대에서 방위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 소대에는 나보다 2살 많은 3개월 위의 고참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의 집이 바로 압구정동이었다.
방위병이면서도 자기 승용차로 부대에 출퇴근했던 그들은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압구정동 나이트에서 술 마셨는데 몇 십 만원 카드로 긁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주말이면 아껴둔 용돈으로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생맥주나 막걸리를 마셨던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오렌지족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얼마 후에는 나보다 3개월 밑의 후임병이 들어왔는데 그도 역시 자기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오렌지족이었다. 당시 나는 앞뒤가 오렌지족으로 둘러싸인 채 군생활을 했던 셈이다. 물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고참들은 부대 내에서 좋은 선임들이었고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형들이었다. 다만 그들의 생활방식이 나하고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일종의 위화감을 느꼈을 뿐이다.
압구정과 강남의 부가 만들어낸 향락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