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니 갑부된 그들, '얼마인지 말만 해'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빛과 그늘②] 접근 꺼리는 '특권층'의 문화

등록 2010.11.25 20:04수정 2010.11.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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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부동산의 강남불패 신화를 탄생시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현대아파트가 처음 분양된 지 35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0년대에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탄생하면서 강남 특권층, 부동산투기, 8학군 및 위장전입 등 여러 사회문제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현대아파트 35년을 맞아서 압구정동으로 대변되는 강남개발의 역사, 이 지역의 부동산 실태, 현대아파트 재건축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기사는 김준희, 최육상 두 명이 공동 작성, 총 4편으로 구성했으며 각각 교육문화, 사회, 정치, 경제를 중심으로 접근했습니다.... 기자주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압구정교회.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압구정교회.김준희

1990년 전후, 한때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최고급 승용차에다 값비싼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다니던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서울 강남구 일대였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돈 씀씀이'를 바탕으로 젊은 여자들을 손쉽게(?) 유혹했다. 특히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는 이들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세워놓고 "야! 타!"를 외치면, 스스럼없이 차에 올라타는 젊은 여자들이 있었단다.

그렇게 이들은 강남 일대에서 불야성의 밤을 만들어갔다. 퇴폐와 향락으로 손가락질도 당했지만, 이들은 개발과 투기 열풍의 혜택으로 많은 부를 소유한 부모의 힘을 빌려 유유자적하며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밤 문화를 즐겼다.

이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준 반면,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 젊은이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해 '오렌지족' 대신 '낑깡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낑깡도 귤이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지언정 낑깡족은 나름대로 '대한민국 1% 젊은이'가 되고자 불나방 같이 로데오거리로 모여들며 신분 상승을 꾀했다. 벼락처럼 순식간에 집중된 거대한 부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오렌지족'이라는 정체성이 불명확한 향락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렌지족에 대한 간접적인 기억은 나(김준희)에게도 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서울 시내의 한 군부대에서 방위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 소대에는 나보다 2살 많은 3개월 위의 고참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의 집이 바로 압구정동이었다.

방위병이면서도 자기 승용차로 부대에 출퇴근했던 그들은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압구정동 나이트에서 술 마셨는데 몇 십 만원 카드로 긁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주말이면 아껴둔 용돈으로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생맥주나 막걸리를 마셨던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오렌지족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얼마 후에는 나보다 3개월 밑의 후임병이 들어왔는데 그도 역시 자기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오렌지족이었다. 당시 나는 앞뒤가 오렌지족으로 둘러싸인 채 군생활을 했던 셈이다. 물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고참들은 부대 내에서 좋은 선임들이었고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형들이었다. 다만 그들의 생활방식이 나하고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일종의 위화감을 느꼈을 뿐이다.

압구정과 강남의 부가 만들어낸 향락문화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차장에는 평일 낮에도 차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차장에는 평일 낮에도 차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김준희

현대아파트 취재를 위해서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1번 출구로 나오자 맞은편과 대각선으로 수많은 성형외과들이 보인다.

"엄마, 나 쌍꺼풀 수술해줘!"

현대아파트 쪽으로 걷다보니까 지나가던 여학생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쌍꺼풀 수술해 달라'는 이야기를 휴대폰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다니. 어떤 학생들은 분명히 한국인처럼 보이는데 서로 영어로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다.

현대아파트 단지 앞에는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11월 11-12일 승용차는 두고 나오세요"라고 써진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아파트의 앞뒤 공간을 가득 메운 차량들이 눈에 들어온다. G20 현수막의 영향을 받아서 주민들이 승용차를 두고 나갔는지, 평일 오후였음에도 주차공간에는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어둔 차량들은 두 줄로 늘어서서 원래 주차 공간을 앞뒤로 포위하고 있었다. 최고급 외제 승용차인 '벤츠'와 '베엠베' 등이 구박덩이마냥 사람들에 의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이런 모습이 이곳 주차장에서는 늘 있는 일이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3명은 익숙한 듯 각자 차 한 대씩을 한 손으로 밀어내고 자신들의 차를 빼내기도 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다룬 한 포털사이트 글에 달린 댓글은 이곳 주민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압구정 현대는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큰 불편한 점이 있죠. 가구당 소유차량은 많은데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주차장이 없어 날마다 주차 전쟁입니다. 예를 들어 64평형인 13동에 56가구가 사는데 보유차량수가 200대 가량 됩니다. 가구당 4대의 차를 보유한 셈인데 주차공간은 협소해 3중, 4중으로 주차해도 장소가 부족해 멀리 금강쇼핑에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와야 되는 때도 많습니다."(mase****)

외부인을 꺼리는 듯한 아파트 단지

 복도식 아파트 전면을 가로막은 커다란 나무들.
복도식 아파트 전면을 가로막은 커다란 나무들. 김준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김준희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복도식 아파트 전면을 가로막은 높은 나무들이었다.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들이 높게는 10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아파트 바로 앞에 붙어서. 저 나무들 때문에 낮에는 햇빛도 잘 안 들어올 테고, 여름철에 매미가 한꺼번에 울어대면 그 앞 복도를 지나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고역일 것이다. 서울시내, 아니 전국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나무들 때문에 어둡고, 벌레들도 많고 한데 어쩔 수가 없어요.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라서 베어버릴 수도 없거든요."

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의 역사에 걸맞게 나무들도 35년 동안 쑥쑥 자라난 모양이다. 이런 거목들이 아파트 바로 앞에 붙어 있어서 좋은 점도 있을까. 모르겠다, 유사시에 나무를 타고 아래로 내려올 수 있다는 점 정도?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도 나무와 수풀이 울창하다. 최근에 생기는 아파트들은 잔디밭이 거의 없다. 좀 오래된 아파트들의 경우는 아파트 사이의 잔디밭을 잘 손질해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대아파트는 다르다. 일부러 방치해둔 건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마치 숲을 연상할 정도다. 아파트 안을 걷다보니 산림욕을 하는 것 같다.

"몰라요, 결정된 게 없어서 모르겠어요."

반면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가 좀 어렵다. 재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다가가면 대부분 경계하는 눈치다. 외부인을 싫어하는 건지 취재를 원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오마이뉴스>라서 꺼리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세 가지 전부일 수도.

경비 아저씨들도 마찬가지다. 사진 찍는 것이 눈에 띄면 사진 찍지 말라고 손짓한다. 수입식품들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가게에서 상품들을 좀 찍으려고 했더니 가게 주인도 역시 사진 찍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때마다 말없이 물러났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자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현대아파트 단지와 달리 깨끗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현대아파트 단지와 달리 깨끗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김준희

현대아파트 단지 바깥으로 나오면 압구정동 아니 강남의 명물들이 차례로 나온다. 대로변에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 백화점 생활관, 명품관이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맞은편으로 길을 건너면 한때 유명했던 로데오 거리다. 압구정동이 한참 잘나갈 때, 나는 '뒷구정동'이라 불렸던 잠실 옆의 신천역 먹자골목을 주로 누비고 다녔다.

로데오 거리도 불황을 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깨끗하고 세련된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지역은 서울시에서 지정한 '역사문화미관 지구'라고 한다. 강변에서 500m 안쪽으로는 아파트를 제외하고 5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로데오 거리에 높은 건물들이 없는 것이다.

로데오 거리를 뚫고 서쪽으로 대로를 건너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망교회가 있다. 역시 그 이름만큼이나 커다란 교회다. 교회 자체도 크지만 넓은 대형주차장에 커다란 교육관이 두 개나 있다. 교회가 아니라 무슨 기업체를 보는 느낌이다. 그 앞에는 신구 중학교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봤더니 정문은 폐쇄되어있고 학생들은 후문으로 드나든다고 한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가 있다. 시인은 자신이 어렸을 때 온통 배나무밭이었던 예전의 압구정동을 떠올린다. 바람이 배나무를 흔들면 잘 익은 배가 후두둑 떨어지고 시인은 그 배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을 생각한다.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이 주변은 급격하게 변했지만 그 안에서도 현대아파트만은 변하지 않았다. 35년간 아파트도, 상가건물도 재건축이 없었고 주민들도 대부분 반대하고 있단다. 변화를 원하지 않고 옛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런 면에서도 이들은 '강남 보수'인 것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맞은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소망교회는 규모가 상당하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맞은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소망교회는 규모가 상당하다. 김준희

#압구정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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