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도대교 위. 조업을 마치고 포구로 돌아가는 배들.
성낙선
'너도 나와 같은 놈이냐' 포구를 돌아보고 다시 올라오는 길에 도로 밑을 관통하는 터널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차량 출입 금지', '위험' 표지가 붙어 있다. 터널 안으로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 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위험 표지를 무시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솔길 옆으로 주택 몇 채가 보이는데 대부분 폐가다. 상당히 으스스한 분위기다. 그 길 끝에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게 분명해 보이는 횟집과 폐교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곳은 일종의 버려진 땅이다. 섬에 육지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이면서, 그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편과 저편이 완전히 운명을 달리했다. 양쪽 다 살릴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한쪽이 거의 아사 상태다.
버려진 횟집 옆에 텐트 하나가 쳐져 있다. 한 남자가 텐트 앞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첫인상에서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남자다. 호기심에, 이 추운 날 사람이 지나다니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그는 이곳에서 벌써 4개월째 '휴양 중'이다. 전국 방방곡곡 '휴양'을 가보지 않은 곳이 드물다. 그가 묻는다, '너는 뭐하는 중이냐?'고.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번엔 '얼마나 됐냐?'고 묻는다. '집을 나선 지 한 50일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라면을 먹다 말고 아예 나를 향해 돌아앉는다.
내가 자신과 같은 '떠돌이'임을 간파한 거다. 그러면서 '무전여행을 하는 거냐?'고 묻는데 그 말이 마치 너도 나와 같은 놈이냐고 묻는 것 같다. 그 말엔 혹시라도 그가 실망할까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가 묻지도 않은 말을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말이 너무 엄청나서 그대로 옮겨 담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베트남 종전 두 달 전에 전선에 투입됐다. 내가 알기로 베트남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다. 동료 군인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고,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하는데 베트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로 잔인했냐면, 신대륙 발견 이후 양키가 인디언을 학살한 것과 똑같다.
제대 후엔 세계 여행을 한 모양이다. 외국에 나가 몸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던 장면을 열심히 설명한다. 젊어서부터 방랑벽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30여 분이 지나 내가 그만 떠날 기미를 보이자, 그가 갑자기 텐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커피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다. 그만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한참 텐트를 뒤지더니, 결국 커피를 찾지 못한다. 그 다음엔 콜라라도 한잔하고 가란다. 결국 김이 다 빠진 콜라 한 잔을 얻어 마시고서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때 나를 보내던 그의 쓸쓸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날이 점점 더 추워지는데 언제 돌아갈 거냐'고 했더니 '이까짓 거 바로 걷어서 집으로 보내 버리면 된다'고 했다. 말이 호기롭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 있는 '집'이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인지는 불분명하다. 그가 앓고 있다는 마음의 병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혹여 그 병이 베트남전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말하는 걸로 봐서 그는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쓰레기 하나 함부로 버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쓰레기 버린 사람을 불러서 반드시 스스로 치우게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 땅도 아니면서 텐트 주변과 바닷가를 청소한다. 그 사이 싸리 빗자루만 대여섯 개가 닳아 없어졌다. 그의 도덕성이 베트남전에서 자행된 부도덕성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삼천포대교까지 2개의 다리를 마저 걸어서 건넌다. 다리가 몹시 무겁다. 하지만 무거운 게 다리만은 아니다. 폐허나 다름이 없는 바닷가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를 혼자 남겨 두고 가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삼천포대교를 건너자 바로 해가 떨어진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7km, 총 누적거리는 3374k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