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도의 바닷가 계단 논 1
성낙선
11월 2일(화)바닷가라 해풍이 부는지 밤새 어디선가 문짝이 들썩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 게다가 웃풍이 심한 탓인지 밤새 어깨가 시려서 혼난다. 이름은 '모텔'인데, 방 안 설비는 여관과 다를 게 없고, 방 안의 온도는 합판으로 벽면을 한 민박 수준도 따라가지 못한다. 방 안이라고는 하지만 한데서 자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아침이 돼서 몸을 일으키는데 온몸이 찌뿌듯하다.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햇살이 공기를 충분히 덥힐 때를 기다렸다가 바로 짐을 싸들고 다시 길 위로 올라선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남해도로 들어서면서 고난의 연속이다. 힘이 들더라도 페달을 좀 더 세게 밟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오늘 반짝 추위가 온다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는 내내 추위에 시달린다. 언덕을 오를 땐 어느 정도 견딜 만하다가, 언덕을 내려갈 때는 그 사이 흐른 땀이 급속히 식으면서 온몸에 한기가 스며든다. 그렇다고 속도를 늦춰 천천히 가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남해도 역시 돌산도 못지않게 산이 많다. 해안이 거의 대부분 산비탈이다. 그 언덕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가운데 사촌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꽤 넓고 쾌적한 조건을 갖춘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날이 춥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해수욕장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휑한 해변을 벗어나 바닷가 한쪽에서 고구마를 썰어 말리고 있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면서 길가에 죽 뿌려 놓은 고구마 절편들이 뭐에 쓰려고 그런 건지 궁금했던 차, 잘됐다. 할머니 한 분이 기계를 손으로 돌려가며 고구마를 썰고 다른 두 분은 썰어놓은 고구마들을 일일이 펴서 바닥에 늘어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할머니들 곁에서 고구마를 대신 썰어드리면서 이것저것 묻는다. 처음에는 '놉을 산다'는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엉뚱한 얘기를 했다. 들어보니, 이렇게 고구마를 썰어 말리면 조합에서 거둬들여 과자 공장이나 술 공장으로 보내는 데 '놉'은 이런 일을 하는 일꾼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이 추위에 웬 자전거냐며 어디서 왔냐고 되묻는다. 서울에서 왔다니까 다들 놀란다.
며칠이나 걸렸냐고 묻기에 이번에는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았다. 걱정을 살까 우려해서다. 어촌에서 물고기도 아닌 고구마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이채롭다. 추위에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