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에도 한낮에는 한가한 시골버스
김수복
"얼래래, 자네 으디 가는가?" "오매 이것이 누구다냐?" "누구긴 누구여, 나제. 나 몰라? 모르는 거여, 참말로? 나를 모르는 것이냐고." "아따 거 여편네 오살도 해쌌는다" "자네가 내 서방인가? 어째서 여편네, 여편네 해싸. 저는 여편네 아니고 뭐, 남편넨가?"아주머니 두 분이 서로 상대의 가슴께를 툭툭 쳐대며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차에 탈 때 들고 있던 보따리는 바닥에서 잠시 버림받은 채로 뒤로 밀리고 앞으로 밀리고 버스의 진행방향에 따라 반대쪽으로 춤을 추듯이 밀리다가 한참 뒤에야 주인의 관심을 받고 그 품안으로 들어간다.
초등학교나 혹은 여중학교의 동창쯤 되는 것 같다. 다들 결혼 이후 서울로 부산으로, 혹은 광주로 어디로 떠나 버렸는데 두 사람은 남편을 잘 만났다고나 할까, 잘못 만났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리저리 해서 떠나지 않고 고향에 남아 운이 좋으면 가끔 한 번씩 이렇게 만나서 살풀이를 하듯이 수다를 떨곤 한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남편 이야기가 잠시 나오고 이어서 객지로 떠난 자식들 이야기, 그리고 풍문으로 들리는 옛 친구들에 관한 소식을 주고받고 하다가 마침내 농사 이야기로 접어든다.
가만히 듣자 하니 아주머니 한 분은 검은깨 다섯 되에 들깨를 또 그만치 보따리에 싸들고 시장을 보러 가는 것 같다. 다른 한 분 아주머니는 읍내 공무원에게 시집간 딸 산후 구완을 위해 이런저런 먹을거리들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깨를 팔러 가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근디 나 오늘 쥐 밟아부렀네 잉?" "쥐를?" "오매오매 시상에나, 시방도 내가 그놈의 쥐새끼 밟은 것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그냥 숨을 못 쉬겠당게." "아이 뭔 소리여.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았다는 말은 들었어도 사람이 쥐 밟았다는 말은 또 처음이네." "아이 내 말 좀 들어봐. 우리집 말캉(마루)이 방보다 겁나가 낮차서(낮아서) 방에서 나올 때마다 쿵, 소리가 안 나는가. 방에서 막 나오는 참인디 쿵 소리는 안 나고 발밑에서 뭐시 징그럽게도 물컹 하는 거여. 깜짝 놀래서 이렇게 보니께 쥐새끼 한 마리가 도망가는디, 발밑은 여적도 물컹인 거여, 그리서 발을 들어보니께, 시상에나, 인제 포도시 눈 뜨고 털이나 났을랑가 어쨌을랑가, 애기 손구락 만한 새끼쥐가 한 마리도 아니고 시상에나, 다섯 마리나 내 발에 밟혀서 그냥 죽은 거여. 그것도 그냥 깔끔스럽게 죽은 것도 아니고 죄다 찢어져서는 뭐이냐 그 창시(내장)가 터져 나오고." "아이그 징그러." "내 밀이 그 말이랑게. 그렇게도 꼴보기 싫던 쥐가 내 발에 밟혀 죽었응게 깨소금이다, 이렇게 되얄 텐디, 빌어먹게도 가심이 영 애릿한 것이 눈앞에서 삼삼하고, 껄척지근하고 그렇다니께.""어찌 안 그러겠는가. 그래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소. 재수없다고 헝게." "이런 걸 뭔 자랑이라고 막 떠들어대고 다니겠는가. 써글넘의 것, 애미나 밟혀 죽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해필 새끼들이 밟혀서는." "하이고오 이 사람아. 자네는 쥐가 무슨 사람인 줄 아는가. 사람은 이십년을 키워도 아직 애지만 쥐는 안 그려. 한 달이면 벌써 어른 되고 석 달이면 저도 새끼 낳는다고 혀, 쥐새끼는." "야튼간에 그 바람에 내가 오늘 자네를 만났네. 아침에 장에 갔다가 점심참에 와서 콩타작이나 좀 하려고 했더마는, 그놈의 쥐를 밟는 바람에 그만 정신이 쏙 빠져서는 이제야 집을 나왔당게." "긍게 뭐여 시방. 쥐 덕분에 나를 만났응게 쥐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라고?"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웃어대는데 그 소리가 마치 깊은 물속의 고래가 물을 박차고 뛰어 오르며 내는 소리 같다. 고래의 그런 소리를 내가 들은 바는 없지만 하여튼 그만큼이나 이색적으로 요란하게 화통한 것이 그야말로 십 년 묵은 채증이 싸악 내려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