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2년째 수주 제로, 부산 경제 먹구름

2009년 이후 수주 없어... 노조 "영도조선소 포기냐"-사측 "구조조정 불가피"

등록 2010.11.25 11:17수정 2010.11.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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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했다. 용접 불꽃도 보이지 않았고, 기자재를 실은 트럭도 보이지 않았으며, 헬멧을 쓴 노동자들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정문을 드나드는 차량도 뜸하다 보니 경비들은 공장 앞 도로를 지나는 차량만 바라볼 뿐이다.

24일 오후 부산광역시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 풍경이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 가장 큰 기업인 한진중공업이 2년간 수주 제로(0) 상태가 되면서 노사갈등이 깊어지고, 지역 경제에도 엄청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영도조선소는 70년 넘게 부산 경제를 이끌어 왔다. 26만㎡ 규모에 현재 2500여 명(관리직 포함)이 소속돼 있다. 영도조선소에는 2년 전만 해도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4500여 명이 일했다. 기자재 납품의 협력업체만 500개가 넘는다.

a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있는 부산 영도구 전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있는 부산 영도구 전경. ⓒ 윤성효


지난해 한진중공업은 17억 달러를 수출했다. 영도구에 있는 기업체가 모두 25억불을 수출했는데, 그중 2/3가량을 한진중공업이 한 것이다. 영도구는 부산에서 녹산공단이 있는 강서구 다음으로 수출을 많이 했다. 한진중공업 종사자 20%가 영도구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있는 선박은 모두 8척이다. 5척은 마무리 작업 중이고, 3척은 도크에서 건조 중이다. 이 선박들은 모두 2009년 이전에 수주했으며, 2011년 3월이면 건조를 마치게 된다. 한진중공업은 2008년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소형 경비정 9척을 수주한 이후 수주를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 HHIC-Phil(수빅조선소)은 수주가 넘친다. 올해 6월까지 23척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지난 16일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가 벨기에 델피스사로부터 38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했다고 '자랑'했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 수빅조선소 조성 1단계를 추진, 18개월 만에 완료하고 선박 건조에 들어갔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는 대조적이다. 수빅조선소는 앞으로 3년치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 영도조선소는 내년 4월 이후 건조할 선박을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한 상태다. 수빅은 '대박'을 내고 있는데 영도는 '휴업'이라 할 만하다.


이는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진중공업지회는 "수주 물량이 수빅으로 갈 것이 아니라 영도로 왔어야 하는데, 사측은 '영도조선소 죽이기 경영'을 한다"고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영도조선소는 규모가 적어 수주 단가가 맞지 않고, 수빅이 자체적으로 수주했던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말부터 구조조정을 두고 노사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가 노사는 지난 2월 ▲인위적 구조조정(일방적 정리해고) 중단 ▲파업 철회, 업무 복귀 ▲임단협 진행 ▲노사는 회사 생존을 위해 수주 경쟁력 확보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렇지만 사측은 구조조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사측은 올해 5월 설계부문 외주화를 단행했으며, 7월에는 울산공장을 폐쇄하고, 선각공장 휴업조치를 확대했다. 지난해 말부터 정규직 노동자 600여 명이 영도조선소를 떠났다. 노조 지회에 따르면 사측은 최근 노동자 26명에 대해 추가로 휴업통보(총 226명)를 했다. 이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a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최근 2년간 수주 물량이 없는 속에, 노사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최근 2년간 수주 물량이 없는 속에, 노사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 윤성효


노조 지회 "일감 없다고 노동자한테 책임 전가"

노조 지회는 11월 들어 4~6시간 부분파업에 이어 남포동과 서면 등지에서 시민선전전과 집회를 벌이고 있다. 노조 지회는 사측이 지난 2월 합의사항을 어기고 "일방적인 조치를 독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노조 지회는 "사측은 수주를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도, 일감이 없으니 휴업을 해야겠다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였다"며 "지금 공장에는 '회사가 어려우니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하겠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명백한 합의사항 위반이며, 무능한 경영진의 비겁한 책임회피다"고 밝혔다.

노조 지회는 "영도조선소의 위기는 경영진의 의도적 영도조선소 폐쇄 정책에 기인된 것이 명백하다"며 "영도조선소는 부산 경제의 근간임에도 사측의 영도조선소 폐쇄 정책에 대해 부산시와 부산고용노동청, 한나라당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빅의 수주에 대해, 노조 지회는 "지난 2월 사측은 '회사 생존을 위해 수주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사측이 약속을 지킬 요량이었다면 이번 수주 물량이 수빅으로 갈 것이 아니라 영도로 왔어야 옳다"며 "지금 사측의 일련의 형태들이 '노조를 와해시킨 뒤 영도조선소를 축소·폐쇄'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 지회는 "사측의 일방적인 '부산경제 망치기. 영도조선소 죽이기 경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나설 것"이라며 "영도조선소가 폐쇄되면 부산 경제에 끼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부산 경제의 버팀목인 영도조선소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고 나섰다.

노조 지회는 26일 오후 한나라당·민주당 부산시당 앞과 김형오, 김무성, 조경태 의원 사무실 앞에서 각각 '영도조선소 살리기 시민선전' 활동을 벌인다.

a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 ⓒ 윤성효


한진중공업 사측 "영도조선소 포기는 말도 안 돼"

한진중공업 사측은 "영도조선소 포기는 말도 안 된다"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수빅조선소에 대해, 사측 관계자는 "해외 선사가 영도조선소에 선박 건조를 맡긴 게 아니고 수빅조선소에 맡긴 것"이라며 "임금 등을 고려할 때 해외선사가 제시하는 가격으로는 영도에 수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도조선소는 대형 선박을 수주할 수 있는 도크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 그는 "현재 영도는 도크가 작아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없고, 작은 선박은 주로 중국 등에서 많이 수주하고 있다"면서 "태생적으로 영도조선소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불황이 닥쳤다. 오래전부터 조선 불황이 오면 제일 먼저 한진중공업에 닥칠 것이라고 해왔다"면서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한다.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노조는 1명도 안 된다며 대화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부산 영도구청도 한진중공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도구청 경제진흥과 서동식 과장은 "한진중공업은 영도뿐만 아니라 부산의 최대 기업이다. 부산은 해양항만물류도시라고 하는데, 한진중공업이 그 중심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는 일자리 창출정책을 벌이고 있는데 한진중공업에 고용보조금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신경을 쓰고 있으며, 구청에서 해외마케팅 홍보물을 제작할 때 한진중공업을 대표기업으로 소개하고 있다"면서 "한진중공업은 영도구의 중심 기업인데, 특별히 도와줄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a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수빅조선소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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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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