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하려면 4가지를 지켜라'...법원의 예외규정

[아는만큼 보이는 법 51] 재판으로 본 학교 '체벌' 사례

등록 2010.11.28 16:52수정 2010.11.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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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경기도 교육청이 학교 체벌 금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공감대도 커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에서 체벌은 없어졌나.

아니, 그전에 체벌은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지가 여전히 논쟁거리다. 체벌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는 여론 못지 않게 최후의 교육 수단으로서 타당한 체벌마저 금지한다면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냉정히 따져보면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체벌 금지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지 않다. 법과 판례가 체벌을 보는 시각도 복잡하다. 법원은 체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먼저 체벌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자. 일반적으로 체벌이란 교사가 물리적 도구나 손과 발 등 신체의 일부를 이용하여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도구 등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직접체벌'과 '손들고 서 있기' 등 도구 없이 간접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간접체벌'로 분류하기도 한다.)

법원은 체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례1] 교육자로서 열정이 지나친 탓이었을까, 아이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인 장풍녀(가명)씨는 숙제를 하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는 학생들에게 매를 들기 일쑤였다.

받아쓰기 시험시간이었다. 장 교사는 민호(가명)군이 미리 공책에 연필로 흐리게 답을 써놓은 것을 발견했다. 화가 난 그는 야단을 쳤는데도 민호군이 자신을 속이고 계속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몽둥이 80대를 때렸다.


체벌은 여학생에게도 가차 없었다. 같은 반 소영(가명)양이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그 이유를 물었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자 장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27대나 때렸다. 중간에 소영양이 잘못했다며 울면서 용서를 빌었으나 체벌은 멈추지 않았다. 두 아이는 멍이 들어 전치 2, 3주의 진단을 받은 것은 물론, 당시 폭행당한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이 정도면 체벌 찬성론자라도 '사랑의 매'로 정당화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검찰은 장 교사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하였으나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재판에 회부하였다. 1, 2심을 맡은 인천지법은 장 교사의 '체벌'이 목적의 정당성도 없고 체벌의 방법이나 정도에서도 현저히 객관적 타당성을 잃었다고 보았다.


법원은 "우리 교육 여건상 적절한 지도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쉽게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저학년 학생들이 수인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며 상해죄를 적용, 중형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2009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했다. 그는 교사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사례 2] 여중 체육교사 한손날(가명)씨는 여중생들에게 손찌검을 일삼아 악명이 높았다.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손으로 머리를 때리고, 체육시간에 무질서하게 달린다는 이유로 손바닥으로 목을 치기도 했다.

태권도 연습시간에 다른 수업을 받고 왔다고 슬리퍼로 손바닥을 때리는가 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생을 향해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법원은 한 교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학생들을 '폭행'하고 '모욕'했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학생들의 언행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개별 지도로서 훈계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나머지 때리고 욕설을 하였던 것은 사회관념상 객관적 타당성을 잃은 지도행위"라고 판시했다.

법원 "정당한 체벌 아니면 폭행, 상해죄 해당"

두 사례를 보니 법원은 교사의 체벌을 폭행, 상해, 모욕죄로 처벌했다. 그렇다면 판례는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법원은 두 교사의 행동이 '정당한 체벌'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법원이 보기엔 '정당한 체벌'이 있다는 말인데, 어떤 걸까.

"학생에 대한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교육상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학교장의 위임을 받아 학생의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다."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예외적인 체벌은 허용한다, 이것이 판례의 태도라고 보면 되겠다. 어찌 보면 이게 체벌 금지보다 더 지키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더 자세한 기준을 알아보기 위해선 헌법재판소(헌재)까지 간 체벌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서울의 한 중학교 복도 게시판 한쪽에 '사랑의 매, 무서워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복도 게시판 한쪽에 '사랑의 매, 무서워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박상규

[사례 3] 나일진(가명, 고1)군은 평소 결석이 잦았고 학교에 나오더라도 지각과 땡땡이(수업이탈)를 밥먹듯이 했다. 수업시간에도 잠을 자거나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교사들도 애를 먹었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나군은 수업시간에 25분 늦게 들어왔다. 친구 3명을 이끌고 라면을 먹다가 늦었다는 것이다. 이에 교사 엄규정(가명, 여)씨는 나군을 포함한 남학생 4명의 뺨을 1대씩 때렸다. 그런데 나군이 손길을 피하자 엄교사는 '너는 왜 피하느냐'며 다시 때려 손끝에 뺨을 맞게 되었다. 그러자 나군은 "00, X같네"라고 욕설을 하며 교실을 나갔다.

그 후로 나군은 학교 다니기 싫다며 등교하지 않다가 부모의 요구로 자퇴 처리되었는데 나군의 어머니는 엄 교사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수사결과 엄 교사가 뺨을 때린 것은 폭행에 해당되나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

엄 교사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자신의 체벌행위가 징계권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데도 검찰이 혐의를 인정, 기소유예처분을 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헌재가 체벌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헌재는 "심한 체벌은 학생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격성장의 권리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정도가 심하지 않은 체벌은 학습 효과를 높여주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할 가능성이 있으며 교사도 교육방법의 하나로 여길 소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심한' 체벌과 '심하지 않은' 체벌의 차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지만 어쨌거나 체벌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헌재는 그러나 "교사가 먼저 인권과 적법절차를 중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체벌은 법령과 규정(학칙)을 준수하여야 하며 극히 제한적인 지도방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원칙적 금지...교육상 불가피하면 허용?

헌재는 "학교 체벌이 사회적 상당성을 충족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좁다"면서 체벌의 객관적 타당성 기준 4가지를 제시했다.

1. 체벌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행해져야 한다.
  (훈육이나 훈계 등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하여 체벌을 할 수밖에 업는 경우에만 한다.)
2. 체벌의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학생에게 체벌의 목적을 알리고 변명과 반성의 기회를 주고 신체 이상 유무를 살핀 후 시행한다.) 
3. 체벌의 방법이 적정해야 한다.
  (정해진 체벌도구를 사용하고 교사의 신체를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한 비공개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상해 발생이 적은 부위를 체벌부위로 해야 한다.)
4. 정도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학생이 수인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하고, 모욕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헌재는 엄 교사의 체벌이 이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엄 교사가 나군의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였더라도, 체벌의 불가피성이 인정되지 않고 절차와 방법이 적정하지 않았으며 체벌의 정도도 가볍지 않았으므로 타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체벌은 원칙적 불가, 예외적 허용'의 결론에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교육행위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존중한다면 체벌을 형사처벌하는데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3명의 재판관들은 반대 의견을 통해 "교사의 체벌행위를 일반인들 사이의 폭행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때린 사람은 여교사이고 맞은 학생들은 고1 남학생들로 폭행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보기 어렵다"며 학칙이 정한 체벌 절차와 방법은 어겼으나 다른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 등을 감안하면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권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만일 이 정도의 체벌행위가 폭행죄가 된다고 한다면 선생님들은 고소당하거나 처벌되지 않을까 하는 찜찜한 생각에 나약과 무책임속으로 도피하게 된다"며 "그렇지 않아도 가치관의 심각한 붕괴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교육의 장래가 더욱 황폐화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결국 헌재 재판관들은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체벌은 필요악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폭력과 구분되는 '사랑의 매'는 있을까

2006년 헌재의 결정은 이후 법원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판례의 입장을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징계방법으로서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타당한 요건을 갖추었을 때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현행 판례는 교사들의 체벌에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이 기준을 통과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제로 체벌의 정당성이 인정되어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나마 체벌이 허용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체벌을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나 학칙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직까지 법원은 폭력과 구분되는 사랑의 매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음 회에서는 법원이 체벌을 해석하는 근거가 되는 관련 법령을 자세히 짚어보겠다.)
#체벌 #법원 #헌법재판소 #체벌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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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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