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흙탕물, 바다는 검붉은 화염 휩싸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 글 화제... 매주 국회 앞에서 '4대강 반대 미사' 열 것

등록 2010.12.03 12:00수정 2010.1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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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제 모습을 잃고 흙탕물로 변했다. 바다는 푸른빛을 잃은 채 검붉은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생명을 그 자체로 경외하지 않고 돈으로 환산하는 천박함은 반드시 평화마저 무너뜨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이며 평화의 원리이다."

 

지난달 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대표신부 전종훈)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3주 동안 매일 저녁 열었던 '4대강 살리기 시국미사'를 접으면서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우리는 재앙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제목의 A4용지 1쪽 분량의 이 성명서는 현재 트위터에서 '명문'으로 회자되며 리트윗 되고 있다.

 

이 성명은 "회복 불능의 자연 파괴와 남북관계의 심각한 악화를 포함해 진전은커녕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할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앞으로는 4대강 사업의 문제 뿐만 아니라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매주 월요일마다 시국미사를 열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전쟁과 폭력의 악령을 몰아내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빌려 이 땅을 정화하고 강을 되살리는 일에 신명을 바치자."

 

전종훈 신부에게 뒤늦게 수소문해서 초안 작성자를 확인해보니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였다. 그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고백, 광우병 쇠고기 촛불, 언론장악과 미디어법, 4대강 반대 생명평화순례, 용산참사와 남일당 미사, 그리고 또 4대강 미사 등 이명박 정부 들어 잦아진 '거리의 미사'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인물이다.

 

"왜 이렇게 포기가 빨라? 4대강 이렇게 어이없이 뺏기면..."

 

a  김인국 신부가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4대강 사업 중단 촉구 전국사제단 단식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인국 신부가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4대강 사업 중단 촉구 전국사제단 단식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김인국 신부가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4대강 사업 중단 촉구 전국사제단 단식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이번 성명에서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4대강 문제를 안타깝게 고민하고 행동하던 종교계와 시민운동마저 자포자기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면서 "4대강 공사의 모든 엔진은 '거짓'이라는 연료로 가동되고 있다"고 탄식한 김 신부는 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그렇게들 포기가 빨라? 4대강 이렇게 어이없이 뺏기면 다른 건 더 빠른 속도로 뺏기게 될 걸? 매일미사 중단한 건 연평도 포격 때문인데 우리 국민들은 곧 연평도에서 벗어날 거예요. 매주 월요일 국회 앞에서 할 미사는, 뜻이 죽지 않았다는 반딧불 같은 거지, 뭐."

 

이 성명을 직접 작성한 김인국 신부는 2일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자포자기가 이렇게 빠를 수 있나"라며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계속 얘기해야 하는데, 서둘러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4대강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위태로운 일"이라고 걱정했다.

 

4대강을 이렇게 맥없이 빼앗긴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민주주의 문제, 한미FTA, 청와대 대포폰과 민간인 사찰 같은 사회현안들은 더 빠른 속도로 이명박 정권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신부는 "이미 이 대통령은 거짓말 잘하는 소년이 됐다"며 "강을 죽이는 걸 살리는 일이라고 생사까지도 뒤바꾸고 부정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안보와 관련해서 대북 강경발언을 하지만 그분의 말을 믿을 국민은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문제와 관련해서 연일 대북 억지력을 강조하며 엄청난 보복을 할 것처럼 말하지만 그의 말을 진짜로 여기는 국민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북한에겐 군사적 도발을 자극하고, 우리 국민에겐 불안감만 심어주는 발언이라는 것. 이런 거짓말은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무엇보다 김 신부는 "절반은 이미 진행된 것이니 4대강 공사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계속 밀어붙일 모양인데, 우리 사회는 이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짖거나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동안 피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성과가 정녕 무엇이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토로했다.

 

지난 3주간 봉헌했던 매일미사에도 신부들은 많이 나오는데 신자들과 일반인들은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신부님들의 미사'가 될 때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김 신부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이라면 남들이 패배를 말할 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묻히셨다고 주장할 때 아니다, 살아오신다, 새로운 반전을 믿는 게 부활신앙인데 50% 공사했으니 강을 죽이는데 결과적으로 동의하자? 이건 못할 짓"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부활의 신앙으로 4대강 공사중단 촉구활동을 벌일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들 끝났다고, 50%나 지어놓은 4대강 공사 못 막는다고 풀 죽어 지내지 말고 다시 광장에 모여 4대강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 때"라면서 "4대강 공사 중단 촉구 미사를 중단 없이 이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일이며, 쉬지 않고 뜻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반딧불 같은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연평도 사태가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매일 열었던 시국미사를 일주일 간격으로 조정할 수 밖에 없었던 전종훈 신부도 할 말이 많았다.

 

전 신부는 특히 "연평도 사태는 기본적으로 북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를 총체적으로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었다"면서 "도둑정권도 아니고, 하지도 못할 전쟁을 하자고 거짓말을 하면서 국민을 협박하는 정권"이라고 일갈했다.

 

전 신부는 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정치인들이 '전쟁 불사'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생명만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는 정권은 다시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재앙을 향해 달리고 있다"

- 4대강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매일미사를 마치며-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마르코 5,12)

1.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따로 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4대강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강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의 강이 아니니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자손만대에 길이 물려주어야 하는 생명줄이다. 게다가 사람들만의 강도 아니니 하늘과 땅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아껴야 하는 지구 전체의 유산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반도의 가장 큰 네 물줄기를 서슴없이 파괴하고 있는가?

2. 정부는 사업진행이 절반을 넘겼다며 그 어떤 우려나 호소도 국익에 반하는 일로 규정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일반 대중을 물론이고 4대강 문제를 안타깝게 고민하고 행동하던 종교계와 시민운동 진영마저 자포자기의 기색이 역력하니 실로 큰 근심이 아닐 수 없다. 4대강공사의 모든 엔진은 '거짓'이라는 연료로 가동되고 있다. 시작부터 그랬고 마지막까지도 그럴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산 것을 죽었다 하고, 죽이는 일을 살리는 일이라 강변하는데 우리 사회의 역량은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짖거나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동안 피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성과가 정녕 무엇이었는지 의심스럽다.

3. 그 동안 우리는 매일 저녁 사람의 길과 우리의 미래를 물으며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던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벌어졌다. 그동안 위태롭게 유지되던 평화가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참변의 책임이야 말할 것도 없이 북쪽이 짊어져야 할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역량의 총체적 한계를 드러내 준 사건이기도 했다. 강은 제 모습을 잃고 흙탕물로 변했다. 바다는 푸른빛을 잃은 채 검붉은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생명을 그 자체로 경외하지 않고 돈으로 환산하는 천박함은 반드시 평화마저 무너뜨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이며 평화의 원리이다.

4. 회복불능의 자연파괴와 남북관계의 심각한 악화를 포함하여 진전은커녕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할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는 오늘의 말기적 증상에 굴복하고 민주주의 퇴행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를 설계하고 틀을 세울 것인가 하는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5. 이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욱 근본적으로는 생명과 평화를 주춧돌로 삼는 '새 하늘 새 땅'을 위하여 매주 월요일마다 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봉헌할 것이다.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전쟁과 폭력의 악령을 몰아내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빌려 이 땅을 정화하고 강을 되살리는 일에 신명을 바치자.

2010년 11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2010.12.03 12:00ⓒ 2010 OhmyNews
#김인국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4대강 공사중단 촉구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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