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좀 먹읍시다, 왜 식당도 못 가게 해?

[장애인 커밍아웃 ⑤] 건물 주위에 설치된 돌말뚝, 다시 생각하시라

등록 2010.12.10 16:42수정 2010.12.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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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긴 좋아한 저입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휠처어에 몸을 맡기고 부터는 저 비장애인 친구들과 멀어져 버렸답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지요.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긴 좋아한 저입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휠처어에 몸을 맡기고 부터는 저 비장애인 친구들과 멀어져 버렸답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지요. ⓒ 김영애


저는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인권교육은 다 찾아다니며 듣는 편입니다. 지난 6월에도 광주의 한 단체에서 교육이 있다기에 광주 북구 오치동에서 서구 화정동까지 빠르게는 한 시간, 저상버스를 놓친 날에는 세 시간이 걸려 교육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매일 8시간씩 교육을 받았습니다. 점심시간은 딱 한 시간이었는데 나와 같은 장애인에겐 턱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다른 식당은 엄두도 내지 못했기에 바로 옆 건물에 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옆 건물에 가 보니 건물을 빙 둘러 돌말뚝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나 같은 장애인은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들어갈 곳은 마련해 두었겠지' 하는 마음으로 30분 이상 걸려 건물 전체를 돌아보았습니다. 다 막아뒀더군요. 어쩔 수 없이 큰 목소리로 직원을 불렀습니다.

직원의 도움으로 돌말뚝을 밀어제치고 겨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와 보니 밀어 둔 돌말뚝을 도로 제자리에 갖다 두었더군요. 점심시간이라 직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몇 바퀴를 돌고 돌아 위험을 감수하며 겨우 주차장 쪽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입구 찾아 서성이길 30분... "돌말뚝 두더라도 휠체어는 들어갈 수 있어야죠"

a 장애 휠체어 필자가 사용하는 전동휠체어. 왼쪽 발판은 올해 서울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과정에서 부서져, 휠체어까지 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 휠체어 필자가 사용하는 전동휠체어. 왼쪽 발판은 올해 서울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과정에서 부서져, 휠체어까지 장애를 갖고 있다. ⓒ 김영애


다음 날 점심시간에 다시 그 건물로 간 나는 직원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저 돌말뚝, 왜 고정시켜 놓았습니까? 그리고 고정을 시켜 놓더라도 휠체어는 들어갈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에 직원은 "손님들이 쇼핑카트를 가져가니 어쩔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 때 여직원이 한 명 나타나더니 "그걸 열어두면 어떡해!"라며 힐난조로 얘기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화를 내며 "그럼, '이 건물에서는 장애인들을 안 받습니다'라고 밖에다 적어 놓지 그러냐"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기를 일주일. 점심 때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점심도 거르지 않고, 교육도 다 받았습니다. 수료증을 받아서 뿌듯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 건물을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결국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단체 명의로 건물주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밥 한 끼 먹는 것, 비장애인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 장애인에겐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요. 이것은 엄연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시설물 접근이용의 차별금지) 위반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틀 만에 그 건물주에게서 답변서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 광주점 인사파트장 000입니다. 1)해당 시설물은 8월 20일부로 건의하신 내용을 반영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2)협력사원 채용시, 장애우에 대해 편견없는 서비스가 실시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장애우 쇼핑시, 고객만족센터에 접수하시면 도우미 사원이 동행하여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저는 이런 일이 있으면 꼭 확인하러 갑니다. 가보니, 그 건물 입구에 있던 돌말뚝이 치워져있더군요. 그렇게 해놓으니까 유모차도 쉽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 비장애인이 같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다만 세상이 장애를 느끼게 만드니 장애인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영애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광주인권사무소)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그동안 지자체 청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공공기관 주관 지역행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영애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광주인권사무소)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그동안 지자체 청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공공기관 주관 지역행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왔다.
#장애인 #세계인권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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