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밖에 차이 안 나는 날 보고 '아빠'라니..."

[장애인 커밍아웃④]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가 있다면?

등록 2010.12.08 10:15수정 2010.12.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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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a  보드게임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병섭군. 평소 손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진은 생활교사 선생님과 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게재합니다.)

보드게임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병섭군. 평소 손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진은 생활교사 선생님과 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게재합니다.) ⓒ 박경선

보드게임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병섭군. 평소 손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진은 생활교사 선생님과 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게재합니다.) ⓒ 박경선

처음 만난 날, 병섭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침 날씨가 조금 쌀쌀한 가을이었기 때문에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해 여름에도 덜덜 떠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몸이 약해 서 있기가 힘에 부쳐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병섭이는 내가 활동보조인을 시작하면서 만난 친구다. 병섭이는 나를 자꾸 "아빠, 아빠"하고 불렀다. 열 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 날 보고 '아빠'라고 부르니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아니라 형이라고 해야지. 형이라고 해 봐. 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병섭이는 남자를 '오빠, 아빠, 할아버지, 아저씨', 여자는 '언니, 엄마, 할머니'로 표현했다. 알고 나니 이 친구가 부르는 아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들렸다.

 

병섭이의 제일 큰 관심사는 자동차다. 지나가는 차를 볼 때마다 늘 "저게 뭐냐"고 묻는다. 처음엔 가르쳐줘도 왜 자꾸 다시 묻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알고 보니 반복하는 질문은 관심의 표현이었다. 고등학생인 병섭이는 학교에 갈 때도 가방을 메자마자 '7호차, 7호차'를 반복했다. '7호차'는 스쿨버스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학교로 자신을 데려다 주는 행복의 메신저다. 병섭이가 특히 차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병섭이는 몸이 약해서 먼 거리는 혼자서 걷지 못한다. 옆에서 누군가 잡아주며 함께 걸어야 한다. 그런 자신을 가고 싶은 곳에 쉽게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자동차였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의사를 정확히 아는 것...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지적장애인인 병섭이의 특성을 알고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활동보조인 초기엔 인내심이 부족해 대화나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혼자 속으로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고 되뇌곤 했다. 말을 알아듣기 힘들면 지레짐작해 결론지어서 말하기도 했고, 행동이 느리면 도와준답시고 나섰지만 그건 도움이 아니었다. 곧잘 '이게 아닌데' 라고 말해 몇 번이나 당황했다. 

 

많은 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할 때 비장애인은 옷차림, 말투, 몸짓, 표정 모두를 사용하지만 지적장애인에게는 제한이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장애인이 이런 특성을 잘 알지 못하거나 예사로 보아 넘긴다는 것을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배려한다고 한 행동이 장애인들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장애인의 처지에선 이런 배려들이 때론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데 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관심을 갖고 병섭이를 지켜보면서 장애특성을 잘 알게 되었고, 다른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장애인을 동정심으로 배려하는 일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꼭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만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의사소통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인간관계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2010.12.08 10:15ⓒ 2010 OhmyNews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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