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 길을 갈 것이다

4대강을 생각하며... 끝까지 가야 할 길

등록 2010.12.24 16:53수정 2010.12.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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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주 월요일에는 서울을 간다. 오후 7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가에서 거행되는 천주교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참례하기 위해서다. 매주 첫머리의 생활을 서울 출타, '길거리 미사' 참례로 장식하며 사는 셈이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듯이 위중한 상태였던 87세 노친의 몸이 좋아지셔서 내가 가끔 하루나 이틀 정도는 출타를 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은 내 차를 가지고 가고오고 했다. 대개 오후 두세 시쯤 출발하여 서울 합정동 아이들 자취집 근처에 차를 놓고, 여의도로 가서 미사에 참례한 다음 한밤중이나 첫새벽에 돌아오곤 했다.

거리미사에 참례한 신자들 12월 20일 저녁 거리미사의 한 장면. 내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거리미사에 참례한 신자들12월 20일 저녁 거리미사의 한 장면. 내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정현진

태안에서 서울 합정동을 가려면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서해안고속도로 발안-화성휴게소-비봉-매송 구간의 정체도 겪어야 하고, 유명한 상습정체구간인 서부간선도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부간선도로에서만 1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때도 있다.

오후 11시 이후 심야시간대에는 서부간선도로도 서해안고속도로도 수월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우리 집에 도착한다. 올라갈 때는 3시간 이상 걸린 길을 1시간 30분이면 돌아오는 사실에서 각별한 '쾌감' 같은 것을 얻기도 한다.

서부간선도로의 정체 현상이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굳이 한밤중이나 새벽에 돌아오는 것은, 집사람과 데리고 사는 중학생 조카아이를 학교에 태워다주는 일도 해야 하고, 또 실속이야 있건 없건 일복이 많은 내 처지를 제대로 간종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엊그제와 오늘, 집사람과 조카아이 모두 겨울방학을 맞았으므로, 이제부터는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다.

월요일 저녁에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열리는 것은, 월요일이 천주교 사제들의 휴무일이기 때문이다. 본당을 맡고 있건 특수사목을 하건 천주교 사제들은 매일매일 격무에 시달린다. 특히 '주님부활대축일'과 '성탄대축일' 전의 '판공시기'에는 연일 격무의 연속이다. 그건 신자 수에 비해 사제들의 수가 적은 탓이기도 하다. 그런 사제들에게 월요일은 그야말로 '휴식'의 시간이다. 휴식할 수 있는 그 휴무 날을 이용하여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은 월요일 저녁마다 여의도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사제들의 휴무일을 언급하자니 유례없이 연 3년째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의 처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비정규직 사제'로 소개되곤 하여 신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노천 미사를 지난 11월 29일까지는 '생명평화미사'라고 불렀다. 4대강파괴공사 중단을 기원하는 쪽으로만 지향이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내년도 4대강 관련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미사였다.


그러나 12월 8일 국회에서의 야만적인 날치기 통과, 민주주의 실종 사태가 발생한 이후 명칭은 '월요 전국사제시국기도회'로 바뀌었고, 미사 지향은 4대강 문제를 포함하여 세 가지로 확대되었다.

세 가지 미사지향 내년 예산안이 12월 8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통과된 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국회 앞 거리미사는 지향이 세 가지로 확대되었다. 그 세 가지 기도지향이 제대보에도 새겨졌다.
세 가지 미사지향내년 예산안이 12월 8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통과된 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국회 앞 거리미사는 지향이 세 가지로 확대되었다. 그 세 가지 기도지향이 제대보에도 새겨졌다. 정현진

4대강 댐 헐어내서 모든 강에 생명을!
 남북화해 되살려서 온 누리에 평화를!
 민주정부 수립해서 만민에게 인권을!'

나는 19일의 미사에 참례하면서 제대 앞에 드리워진 세 가지 미사지향을 보며 눈물이 솟구칠 것 같은 감회를 맛보았다. 이미 13일의 미사에서 전종훈 신부님의 발표를 통해 접한 바 있지만, 간단명료한 말로 정리되어 제대 앞에 드리워진 지향들을 보자니 너무도 절절히 사무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신부님들은 매번 30명 이상이 나오시는 것 같다. 11월 29일 미사 때는 100명이 넘는 사제들을 보며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신부님들을 보면 너무 큰 고생들을 하시는 것 같아 안쓰럽고 애처롭기도 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더더욱 고맙고 감사하다.

지난 13일의 미사 때는 영성체 후 '공지사항' 발표 시간에 사회를 보시는 사제단 총무 김인국(청주교구 금천성당 주임) 신부님이 돌연 나를 불러내서 간단히 인사말을 하게 했다. 아마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매번 미사에 참례하는 내가 고맙고 미더우셨던 모양이다. 나는 당황한 가운데서도 명확하게 우선 신부님들께 감사를 표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정말로 내게는 고마운 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분들을 신뢰하고 존경하고 감사한다. 그분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뜨겁게 희망을 안았던 지난 세월을 지금도 반추한다. 오늘 그분들에게 갖는 애정은 더욱 절절하다. 매주 월요일 서울에 올라가 생명평화미사, 또 시국미사에 참여하며 얻는 위안으로 내가 오늘을 견디며 살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정구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계시지 않는다면, 또 생명평화미사와 시국미사 등이 없다면 내가 어디에서 위안을 얻고 제대로 숨을 쉬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굴착기의 삽날에 마구 까뭉개지는 4대강을 생각하면 너무도 원통하여 눈물이 난다. 4대강이 이명박의 사유재산이라도 되는가? 왜 저토록 멋대로 난도질을 하고, 강의 특성과 형체를 회복 불가능까지로 망가뜨리고 없애는 일에 광분하는가?

내 비록 강가에서 살지는 않더라도, 연일 강의 신음과 비명을 들으며 산다. 나는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상태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이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며 살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문수 스님처럼 소신(燒身) 공양을 할 수도 없다. 강의 처절한 비명을 지속적으로 들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이 철저히 슬프다. 그 절절한 슬픔 때문에 매주 월요일마다 서울을 간다. 그 슬픔을 안고 미사를 지내며 한 가닥 위안을 얻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숨을 쉬며 사는 사람이기에 하느님 앞에서 다시 한 번 포기할 수 없는 지향을 뜨겁게 되새긴다,

지난 20일 저녁 미사 때는, 미사 시작 직전 노인 한 사람의 '침입'이 있었다. 갑자기 노인 한 사람이 제대 앞으로 불쑥 나오더니 "한마디 물읍시다!"하며 김인국 신부님이 들고 있는 마이크를 빼앗으려고 들었다. 다른 신부님과 신자들의 제지로 그 노인은 물러나고 곧 사라졌지만, 그 노인에게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어버이연합' 회원일지도 모를 그 노인은 맨 정신으로는 올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술기운으로 그렇게 천주교의 미사까지 방해하려 했던 것 같다. 그 노인이 천주교 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천주교 신자이기에 '국회 앞 거리미사'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그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그 노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무겁고 슬픈 마음이었다.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했다.

비록 나이는 먹어가고 있지만...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간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매번 참례한다. 비록 늙어가는 몸이지만 어둠 속에서 촛불 들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나이는 먹어가고 있지만...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간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매번 참례한다. 비록 늙어가는 몸이지만 어둠 속에서 촛불 들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요하

미사 후 서울에서 생활하는 내 대학생 아이들과 함께 합정동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며, 아빠가 매주 월요일 오후 서울에 올 적마다 함께 국회 앞 거리미사에 참례하곤 하는 내 아이들에게 또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 자취집으로 가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자정을 넘긴 0시 40분쯤 차에 올랐다. 한산해진 서부간선도로를 쾌속으로 달렸지만 서해안고속도로 팔곡에서부터 지독한 안개를 만났다. 완전히 안개 세상이었다. 서해대교를 지날 때는 온 몸이 수축되는 공포감마저 안아야 했다.      

길고 긴 지독한 안갯속을 달리면서 안갯속에 묻혀 버린 우리나라의 실상을 보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 짙은 안갯속에 묻혀 있다. 그 안갯속에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그러나 안개는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짙은 안개가 길을 덮는다 해도 그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또 아무리 지독한 안개도 시간이 흐르면 걷히기 마련이다.

짙은 안갯속을 조심조심 달리면서, 그 안갯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더욱 명료해짐을 느꼈다.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하는 일이지만, 내가 끝까지 가야 할 길이었다. 고뇌의 길이고 고행의 길이지만,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과 함께 가는 길, 끝까지 함께 가야 할 길이기에 나는 짙은 안갯속에서도 명확하게 그 길을 보며 더욱 뜨거워지는 마음으로 무난히 밤안개 길을 달릴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 길을 갈 것이다. 끝까지 가야 할 길이기에….  
#4대강사업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생명, 평화,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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