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전 군산, 한적한 어촌 아니었다"

군산문화원, 옥구읍성 복원추진 위한 심포지엄 개최

등록 2011.01.01 15:20수정 2011.01.0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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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구읍성 복원추진 방안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는 군산 은파 리츠프라자호텔
‘옥구읍성 복원추진 방안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는 군산 은파 리츠프라자호텔 조종안

지난 2010년 12월 28일(화) 오후 2시 30분 군산 은파 리츠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옥구 읍성 복원추진 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군산대학교 김종수(52세) 교수는 "개항(1899년) 전 군산은 일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적한 어촌 마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군산에는 종2품 수군절도사가 담당하는 수영(水營)이 있었고, 종3품 병마첨절제사가 담당하는 옥구진(沃溝鎭)과 종3품 첨절제사가 담당하는 군산진(群山鎭)도 있었다는 것. 김 교수는 한 지역에 수영과 진이 3개씩이나 있었던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이후 쉬지도 못하고 6일에 걸쳐 군함을 타고 고군산도까지 올라와 군산의 안위를 확인하고 돌아갔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일본인이 작성한 <민적통계표(1910년)>에도 당시 군산 인구는 2만1830명으로 나와 있다"며 "이러한 군산이 일본인이 오기 전까지 150여 채의 한옥이 산재한, 인구 500여 명이 거주하는 한적한 어촌 마을에 불과하였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군산에는 4446호 1만4649명(호적에 등재된 숫자)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타지에서 군산창(群山倉)에 와서 근무하는 군인과 노무자들까지 포함하면 족히 2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조선시대 옥구 읍성의 연혁과 관아시설’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군산대학교 김종수 교수
‘조선시대 옥구 읍성의 연혁과 관아시설’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군산대학교 김종수 교수 조종안

김 교수는 "조선 최대의 조운(漕運) 담당 관청이 있었던 군산에서 제때에 세미(稅米)가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면 한양 관리들에게 녹봉을 주지 못할 정도였다"라면서 "옥구읍성 내 객사, 동헌, 문루 등 관아 시설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무너진 성곽과 향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172명의 역대 현감 이름과 부임날짜, 이임 날짜, 공덕비 유무, 구 옥구지역 마을 이름 등이 기록된 '옥구부지'(1924년)가 현존하고 있어 지방 역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어주고 있다.


김 교수는 1872년에 편찬된 '옥구현 지도'와 '군산진 지도'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 일제 건축물에 쏟는 관심의 반만이라도 옥구현 복원사업에 사용한다면 일제의 근대문화가 아닌 아름다운 옥구의 전통문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유산이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재산을 말하는데 일제가 남긴 구 조선은행이나 나가사키 18은행, 세관 건물 등을 '근대문화유산'이라며 감동받았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 근대론'이요 '식민지사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은 "개항되기 전 군산은 옥구부에 속해 있었다며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 '유산'을 빼고 '근대문화 중심도시'로 바꿨다"고 해명했다.

 군산대학교 김종수 교수의 식‘식민지근대론’은 무리라고 지적하는 김양균 향토문화연구소장.
군산대학교 김종수 교수의 식‘식민지근대론’은 무리라고 지적하는 김양균 향토문화연구소장. 조종안

토론에 나선 김양규(85세) 향토문화 연구소장은 일제 건축물 복원을 놓고 '식민지 근대론', '식민지사관' 등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라며,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고 복원하는 것이지 일제의 식민사관을 본받자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 소장은 이어 "역사의 문화유산은 조상의 얼인 만큼 하루빨리 발굴하고 복원해야 한다"면서 "복원한 옥구 읍성을 새만금과 연결해야 관광객 유치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지역경제도 살아날 것이다"고 주장했다.

옥구읍성 복원공사, 미군 철도가 걸림돌 될 듯

 옥구향교 전경, 군산에는 옥구향교와 임피 향교가 유교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팸플릿 캡처)
옥구향교 전경, 군산에는 옥구향교와 임피 향교가 유교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팸플릿 캡처) 조종안

군산시 옥구읍 소재 '옥구읍성(沃溝邑城)'은 석성(石城)으로 왜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세종 4년(1422년) 10월 옥구 지역의 비옥한 논밭을 지키기 위해 전라감사에 의해 둘레 389보(步)로 축조했다. 1보가 6척(尺)이니, 읍성의 둘레는 2334척, 1097m인 셈이 된다. (세종실록지리지)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한 평산성(平山城) 형태를 지니고 있는 옥구읍성은 문종 원년(1451년)과 중종 19년(1523)에 행정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병행하는 특이한 형태로 개축하여 조선왕조 500년 내내 존속되다가 19세기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전체적인 윤곽은 잘 남아 있다. 

네 개 성문(城門) 중 남문 지역은 구 군산역에서 비행장을 오가는 미군전용 철로(옥구선)와 겹쳐 복원공사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산선이 폐선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전군도로가 시작되는 '팔마재' 도로를 가로질러 통행에 지장을 주는데도 미군 측 허락이 없어 방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이 주최하고 군산시가 후원한 이날 심포지엄은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복원해서 군산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를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여 국제 관광기업도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리로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주제발표와 토론이 3시간 넘게 이어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옥구 읍성 #군산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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