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옥구 읍성의 연혁과 관아시설’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군산대학교 김종수 교수
조종안
김 교수는 "조선 최대의 조운(漕運) 담당 관청이 있었던 군산에서 제때에 세미(稅米)가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면 한양 관리들에게 녹봉을 주지 못할 정도였다"라면서 "옥구읍성 내 객사, 동헌, 문루 등 관아 시설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무너진 성곽과 향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172명의 역대 현감 이름과 부임날짜, 이임 날짜, 공덕비 유무, 구 옥구지역 마을 이름 등이 기록된 '옥구부지'(1924년)가 현존하고 있어 지방 역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어주고 있다.
김 교수는 1872년에 편찬된 '옥구현 지도'와 '군산진 지도'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 일제 건축물에 쏟는 관심의 반만이라도 옥구현 복원사업에 사용한다면 일제의 근대문화가 아닌 아름다운 옥구의 전통문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유산이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재산을 말하는데 일제가 남긴 구 조선은행이나 나가사키 18은행, 세관 건물 등을 '근대문화유산'이라며 감동받았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 근대론'이요 '식민지사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은 "개항되기 전 군산은 옥구부에 속해 있었다며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 '유산'을 빼고 '근대문화 중심도시'로 바꿨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