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지면 나부터 의심해요...하지만"

[새해 르포] 2011년 첫날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에 가다

등록 2011.01.04 17:44수정 2011.01.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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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진이. 올 해 16살이 된 철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다. 얼핏보면 초등학교 2학년 처럼 보인다. 철진이는 2009년 10월 탈북해 한국에 왔다.
철진이.올 해 16살이 된 철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다. 얼핏보면 초등학교 2학년 처럼 보인다. 철진이는 2009년 10월 탈북해 한국에 왔다.구태우

저의 이름은 철진이예요. 김철진(16, 가명). 저의 고향은 저기 위쪽에 있는 함경북도의 청진이요. 우리집은 요~. 김매기(쓸데없는 풀을 고르고, 흙을 부드럽게 하는 일)를 하며 살았어요. 학교도 안 가고, 하루 종일 김매기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가 떠돌아다닌 적도 있어요. 꽃제비 생활도 좀 했어요. 배도 고프고, 가난해서 아버지가 이렇게 살려면 그냥 남한 가서 살자고 그랬어요.

남한 가려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세 패로 갈라졌어요. 우리 아부지가 길을 잘 알아서 사람들이 잘 따랐어요. 울 아부지 손 꼭 붙잡고 건너다가 아부지를 잊어버렸어요. 어떤 아저씨가 울고 있는 저를 데리고 중국으로 데려갔어요. 두만강은 물살이 엄청 세요. 군인 아저씨들도 무지 많아요. (두만강을) 건너다 잡히는 사람도 많아요.

한국에 와서 (하나원에 있는) 하나둘 학교에 갔어요. 컴퓨터도 첨 해봤어요. 하나둘 학교에서 남한에 대해 공부도 했어요. 3달 정도 있다가 (탈북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이란 곳에 갔어요. 마쌤이(새터민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 마석훈 원장) 롯데마트에도 데려가, 뽀로로 인형도 사줬어요. 저는 열여섯 살인데,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학교를 안 다녀봐서, 애들에 비해 실력 차이도 많이 나요. 다른 친구들보다 키도 작고, 등치(덩치)도 작아요. 어떤 애는 제 몸이 초등학교 2학년만 하다고 놀려요. 애들이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놀리고 괴롭히니까 비밀로 하고 있어요.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 아는 데, 아무한테도 소문 안 내고 있어요. 새롬이가 북에서 왔다고 말하면 왕따 당한 데요. 작년에는 학교 선생님이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 놈들은 다 개XX들이야, 다 박살 내야 된다고 말했어요.

친구요?? 한새롬(12, 가명)이가 있는데요. 새롬이는 요. 엄마는 북한사람이고, 아빠가 중국사람이에요. (2005년 3월 함경북도 무산) 옛날에 엄마랑 탈북했는데, 아빠가 중국사람이라고 돈(정부지원금)을 못 받는데요. 엄마는 서울에서 일을 한다던데… 잘 모르겠어요. 제 장래희망이요? 제 꿈은 댄스 가수가 되는 거예요. 새해 소원은 음~ 전쟁이 안 났으면 좋겠고, 울 아부지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마석훈 원장과 새터민 아이.
마석훈 원장과 새터민 아이.구태우

"마쌤~ 마쌤~"

아이들은 마석훈 원장이 '우리집'에 들어서자 반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어제 만났지만, 아이들은 마쌤의 귀환으로 즐거워 보였다.

2011년 새해 첫날을 맞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을 찾았다. '우리집'은 외로운 새터민 청소년들과 '허접한' 남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그룹홈이다.


정부지원과 종교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우리집'은 안산시민들이 5000원~1만 원씩 모은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록수역 근처 목욕탕 주인아저씨가 새터민 아이들을 공짜로 목욕시켜주고, 미용실 아주머니는 공짜로 이발시켜 준다. 시장에서 조기 장사를 하는 실향민 할머니는 이따금씩 조기 한 상자를 '우리집'에 가져다준다.

마석훈 '우리집' 원장은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아래로부터 통일운동이 바로 진짜 통일운동이다"라고 말했다. 새해 첫날인 아침에 아이들은 떡만두국 한 그릇씩 먹었다.


"우리의 고향은 남한과 북조선입니다"

탈북 1.5 Q채널에서 지난 2008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탈북 1.5 의 한 장면
탈북 1.5Q채널에서 지난 2008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탈북 1.5 의 한 장면구태우

정대세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첫 경기를 갖던 날이었다. 브라질과의 경기에 앞서 북한국가 울려 퍼지자, 정대세 선수는 서럽게 울었다. '우리집'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고향을 등지고 온 이들의 정서였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를 볼 때도 아이들은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새터민 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에 들어서면 "우리의 고향은 남한과 북조선입니다"라고 써 붙여진 글귀가 있다. 이들에게 북한은 되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었고, 남한은 배타적인 고향이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 한국에 오면 이들을 처음 맞이하는 곳은 하나원이었다. 아이들은 하나원의 하나둘학교에서 한국생활 적응 교육을 받고, 어른들은 하나원에서 한국생활 적응교육을 받는다. 교육 성적이 좋지 않으면, 탈북자 지원정착금이 깎였다.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나면, 탈북자들에게 이런저런 특혜가 주어졌다. 취업 특례, 특례 입학, 영구임대아파트, 정착금 등 고향을 등지고 온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의 지원금이 주어졌다. "특혜는 탈북자들을 일반 국민과 구분 짓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라고 마석훈 원장이 말했다.

고향을 등지고 온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냉담했다. 수업시간에 탈북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전교생이 모여들었다. "북한에서는 사람 고기 먹나?", "핵을 몇 개나 가지고 있나", "정말 한국에 발사할 건가?" 등 북한에 대해 아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교실에서 지갑이 없어지면 새터민 아이들이 의심을 받았다. 오해와 의심은 곧 왕따로 이어졌다.

게임하는 새터민 청소년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아이들은 게임에 쉽게 빠졌다.
게임하는 새터민 청소년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아이들은 게임에 쉽게 빠졌다.구태우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게임밖에 없었다. 길드마스터가 될 수 있고, 온라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리니지나 뮬을 주로 한다고 하였다. 이런 생활을 견디지 못한 새터민 청소년들의 일부는 난민신청을 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로 가기도 하였다. 다음은 마석훈 원장의 설명이다.

"북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온 아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특례로 대학을 입학하여도 졸업하는 아이들은 10%도 안 된다. 대학을 졸업장도 없고, 탈북자이다 보니, 자연스레 3D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남과 북이 그만 좀 싸웠으면 좋겠어요"

16명의 '우리집' 가족들은 2002 월드컵 기간 동안 매번 서울광장에 가서 응원을 했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월드컵 기간 내내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2년 6월 29일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있던 날 아이들은 붉은 악마 티셔츠와 분장을 하고, 거리응원 나설 준비를 하였다. 이날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결국 거리 응원에 나가지 않았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이 있고, 연평도 도발이 있던 날도 그랬다. 아이들은 관련 뉴스가 TV에서 나올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마음 편히 북한을 욕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남한을 욕할 수도 없었다.

'우리집' 아이들 '우리집'에서 살고있는 새터민 아이들.
'우리집' 아이들'우리집'에서 살고있는 새터민 아이들. 구태우

일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에게 혹시 탈북자인 처지가 들킬까봐 걱정되었다. 일반 중학교에 다니는 민정이(16, 가명)는 "경제 시간에 선생님이 '북한놈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라고 했어요"라면서 "저한테 하는 말 같았어요"고 말했다.

'우리집'의 한 아이는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날 마석훈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마쌤~ 전쟁 나면 어떡해요?"라고 다급하게 전화하기도 하였다. 기자와 함께 얘기를 나눈 8명의 새터민 청소년들은 "2010년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로 걱정됐던 한 해였다"라고 말했다. 마 원장은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니, 탈북자들은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몰라 걱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새해 남한과 북한에 대한 희망사항을 물었다.

"그만 좀 싸웠으면 좋겠어요"라고 한 아이가 말을 하자. 다른 아이가 이어받았다. "지겹게 싸우다 보면 지쳐서 서로 그만둘 거야"라고 말했다. 다른 아이는 "차라리 전쟁 나면 공부 안 해도 돼서 좋겠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지난해에 남북 관계를 바라보며 적잖게 놀랐기 때문에 올해에는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체스를 두는 철민이. 얼마 전 철민이는 새터민 형에게 체스를 배웠다. 철민이는 기자와 체스를 두었다.
체스를 두는 철민이.얼마 전 철민이는 새터민 형에게 체스를 배웠다. 철민이는 기자와 체스를 두었다.구태우

'우리집'의 아이들은 "특혜 받는 탈북자가 아닌, 남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2PM의 닉쿤과 같은 아이돌스타를 좋아하고, 소녀시대를 좋아한다.  열두 살 새롬이의 꿈은 의상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새롬이의 새해 소원은 "서울에 엄마와 북한에 계신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외삼촌이 위험하지 않게 통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61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은 불행하게도 3세대에게도 전이되고 있었다. 
#새터민 #탈북자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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