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겉표지
비채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쪽이건 가해자 쪽이건 그 가족들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피해자 가족이 받는 상처와 상실감도 엄청나겠지만, 가해자 가족이 받게 될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나 형제 또는 자식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과 기나긴 재판을 준비하고 지켜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 못지않게 힘든 것이 주위의 시선이다.
가족 중에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도 등을 돌릴 가능성이 많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학교생활도 예전처럼 하지 못할 테고 친구들도 떨어져 나간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그 자식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한 가족이니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자식들은 부모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처지에 놓인다.
고급주택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미나토 가나에는 자신의 2009년 작품 <야행관람차>에서 이런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무대는 고급단독주택이 밀집해있는 히바리가오카 지역이다. 작품은 그 지역에서 이웃으로 살고있는 엔도 가족과 다카하시 가족의 모습을 번갈아 묘사하면서 진행된다.
이 두 가족은 이웃이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엔도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히바리가오카에서 가장 작다. 아버지는 건축인테리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어머니는 주택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외동딸인 아야카는 사립학교 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수준이 낮은 공립중학교에 다닌다. 열등감을 갖고 있는 아야카는 툭하면 히스테리를 부려서 어머니 마유미를 힘들게 만든다.
반면에 다카하시 가족은 크고 넓은 집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엘리트 의사고 어머니도 미인이다. 삼남매 중 첫째는 의과대학에 다니는 수재고, 둘째는 명문 사립여고에 다니고 있다. 막내아들 신지도 수려한 외모에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 공부도 못하는 편이 아니다. 시쳇말로 '엄친아'와 '엄친딸'이 모여있는 가정인 것이다.
이런 가정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과 문제가 있을 것이다. 늦은 밤에 아야카의 심부름으로 근처 편의점에 들른 마유미는 그곳에서 우연히 신지를 만난다. 신지는 공부를 하던 도중에 잠시 머리를 식힐겸 편의점에 온 것이다. 하지만 지갑을 깜박하고 나왔기 때문에 신지는 마유미에게 돈을 빌린다.
마유미가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구급차와 경찰차가 집 근처에 모여든다. 무슨 일인지 알아본 결과 다카하시 가족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시각에 아이들은 집에 없었고 신지만이 유일하게 편의점에서 마유미에게 목격된다. 평온하고 안정된 것처럼 보였던 다카하시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살인사건으로까지 발전했을까?
살인사건 이후로 변해가는 사람들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사건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얽혀들어가는 주변 사람들을 더 많이 묘사하고 있다. 고급주택이 모여있는 지역이지만 그 주택의 '레벨'에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 질시하고 반목한다.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면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아야카는 제일 작은 집에서 산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그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해소한다. 아야카는 어머니를 '당신', '할망구'라고 부르며 마구 소리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진다.
이렇게 막돼먹은 아야카에게도 나름대로의 통찰력은 있다. 아야카는 '언덕길 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평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이상한 곳에서 무리해서 살면 점점 발밑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낀다. 힘껏 버티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고 말지만, 그렇게 의식할수록 언덕의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다카하시 가족의 어머니도 고급주택가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고, 버티려는 노력이 한계치에 도달한 순간 자기도 모르게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우발적인 살인이었더라도 그 결과는 남은 가족에게 치명적이다. 살인사건은 한 가족의 미래를 평생동안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야행관람차> 미나토 가나에 지음 / 김선영 옮김 / 비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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