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의 조화로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람과 사람] 이명선 서예가, 서예의 대중화를 꿈꾸다

등록 2011.03.27 16:58수정 2011.03.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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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예가는 붓을 잡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 이명선 서예가가 붓과 먹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서예가는 붓을 잡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 이명선 서예가가 붓과 먹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 이정민


"서예의 법도에 따라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대답이다. 서예가로서 걸어온 길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답은 명쾌했다. 이명선 서예가가 말하는 서예란 '문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창조'이기에, 서예가로서 그의 삶은 더 이상의 군더더기가 필요 없는 그야말로 단순한 선(線)의 의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214+6=5만?... 한자는 언어의 본류

a   한 자 한 자 혼을 들여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천자문.

한 자 한 자 혼을 들여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천자문. ⓒ 이정민


서예의 대중화를 꿈꾸며 초등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서예의 가치를 교감하고 있는 이명선 서예가를 만나러 3월 26일 오후 3시께 연구소를 찾아갔다. 본래는 사무실을 4층에 두고 그의 여러 작품을 전시하면서 학원을 운영했는데, 얼마 전에 6층으로 올라와 아직 정리가 안 된 모습이었다. 5평 남짓한 조그만 작업실에는 서예관련 각종 서적과 문방사우(=붓·먹·종이·벼루), 그리고 다양한 실습 작품들로 인해 독특한 묵(墨) 향기가 가득했다.

이명선 서예가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한자와 서예문화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지와 습자지를 주면서 필력을 익혀나가는 습관을 들이게 했다. 당시 이 작가가 썼던 '바른생활, 정직한 사람'이라는 표어가 학교 환경미화 게시판에 걸릴 정도로, 그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솜씨를 인정받았다.

이 작가가 갑자기 물었다. 혹시 '이백십사 더하기 육은 오만'이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속으로 '내가 그걸 알면 이곳에 왜 왔겠어요?' 하는데, 자문자답이 이어졌다.


"한문의 개념원리가 그렇죠. 한자는 214개의 부수와 상형문자·지사문자·회의문자·형성문자·전주문자·가차문자의 6개의 형태로 이뤄져있어요. 이러한 기본구조를 이해하고 한자를 외워야만 효율적입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한자가 무려 5만자가 되죠. 단순히 한자라고 무조건 외우는 것보다는 그 원리를 정확히 알고 나면 보다 쉽게 친숙해질 겁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죠.(웃음)"

이 작가의 웃음 속에 담긴 안타까움, 서예가로서의 고독한 길이 순탄치 많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삼십대 후반세대까지 제도교육 속에서 한문 교육은 그나마 정식 교과목에 포함되었기에 접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한문과정이 사라지다보니 점차 우리 시야에서 한자와 서예문화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작가는 한자 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덧붙여 설명했다.

"국어, 영어 모두를 잘 할 수 있으려면 국어 이해가 우선 잘 돼야합니다. 또한 국어는 한문이 90%이상 차용돼있기 때문에 한자를 잘 이해해야 국어를 잘 할 수 있는 법이죠. 고급 영어를 하려고 해도 하다못해 품사 구분을 못하면 '우이독경'인 셈이죠. 품사자체가 한자이다 보니 그 뜻을 명확하게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한글 언어의 본류 자체가 한자에서 파생되다보니 그 뿌리를 제대로 익혀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예와 한자를 이해하는 기본 상식입니다." 

서예는 음악의 운율과 같은 것

a   그의 손끝에서 문자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그의 손끝에서 문자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 이정민


이 작가는 문자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서예의 대중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최근 한 회사의 상품로고를 직접 써서 '완전 매진'이라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캘리그라피(=필력이 느껴지는 손글씨)'였다.

"캘리그라피 역시 생활의 변화로 전통적인 필법을 응용해 새로운 현개 감각에 맞게 대중화 하는 한 기법입니다. 서예는 문자를 통해서 자기의 생각을 타나내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생활에서 필요한 옛 느낌의 글씨가 시대적으로 요구되고 있지요. 마치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경향 때문인지 요즘 여러 기업체의 제품이나 건물을 보면 캘리그라피로 이루어진 문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예술 자체가 가장 자연스럽고 보기 좋아야 멋스러움이 나듯이, 인쇄체의 딱딱함보다는 인간적인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손글씨가 유행인 것 같아요"라고 해석했다.     

'서예란 먹물과 붓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이명선 서예가는 서예 또한 음악의 은율과 같은 강약의 변화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즉, 서양 붓은 크기별로 다르게 돼있지만 동양의 붓은 굵고 가는 두께에 중심을 둬 선의 변화에 다양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동그란 붓 끝의 놀림 속에서 64괘의 면이 나와 선의 조형미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말이었다.

서예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 안에 있는 많은 잠재성을 발견하고 있다는 이 작가는 말한다. 예술의 근본은 정신문화 존중에 있다고.

"미술이란 예술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서예는 흑백과의 조화로써 마음을 움직이는 역동적인 신비감이 있습니다. 미술은 그림으로 표현되지만, 서예는 먹물로 창작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술에 정중동(靜中動)이 있는데, 요즘은 거의 동적인 것에 치중하는 경향이죠. 그러나 예술행위에는 자신의 희열과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신문화를 결코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이명선 서예가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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