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10화

넘쳐나는 할인 쿠폰, 믿으세요?

[e사람⑩] 박태훈 쿠폰잇수다 대표 "소셜 커머스 업체, 소비자 신뢰 얻어야"

등록 2011.04.29 10:44수정 2011.05.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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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태훈 쿠폰잇수다 대표.

박태훈 쿠폰잇수다 대표. ⓒ 선대식


지난 21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 9층에는 늦은 시각인데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초인종에 '고장'이라고 써 붙일 정도로 낡은 곳이다. 창문 밖으로 휘황찬란한 술집들이 보이는 33㎡ 남짓한 오피스텔 안에는 대학생들이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창문과 여러 개의 화이트보드에는 비즈니스 전략과 관련된 글이 쓰여 있었다.

오피스텔 곳곳에는 옷가지와 치우다 만 음료수 병이 가득했다. 작은 냉장고 위의 말머리 가면은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했다. 박태훈 '쿠폰잇수다' 대표(26)는 "작고 누추한 곳"이라고 했다. 기자가 그에게 "'페이스북' 초창기 팔로 알토(Palo Alto)에 있던 마크 주커버그의 작업실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자,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박태훈 대표를 포함해 8명의 대학생이 지난 2월 창업한 쿠폰잇수다는 최근 '상거래 혁명'으로 평가받는 소셜 커머스 업체다.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유통채널을 통한 입소문으로, 싼 제품이나 할인 쿠폰을 팔아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을 얻게 한다는 게 사업 내용이다.

쿠폰잇수다는 그 중에서도 조금 특별하다. 최근 대형 소셜 커머스 업체들이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고 이로 인해 제품의 질 하락 등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을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소셜커머스는 죽었다"며 업계 1위인 '티켓 몬스터'에 공개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박태훈 대표도 특별하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산학과 03학번 휴학생으로, 징벌적 등록금과 100% 영어강의로 대표되는 서남표 총장의 개혁 전과 후를 모두 겪었다. '학점 전쟁'이 벌어지는 카이스트에서 어떻게 창업을 선택했을까? 박 대표와 마주 앉은 후,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부터 물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죠…. 학생들이 몇 년 전부터 100% 영어수업과 징벌적 등록금에 크게 반발한 상태였거든요. 매년 1~2명씩은 자살했어요."


"친구 못 따라가면, 돈을 더 내든가 경쟁에서 탈락하든가"

- 서남표식 개혁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가?
"카이스트는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만 모인 곳이 아니다. 다방면에 재능 있고 열정적인 친구들이 모였다.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음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은 공부한다면서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많다. 공부 말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활기찼던 캠퍼스가 카이스트 학원이 됐다."


- 징벌적 등록금에 대한 반발이 많이 있었나?
"'장짤(장학금 잘림)'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불효라고 생각한다. '장짤'은 막대한 등록금 부담으로 이어지니까…. 학점을 돈으로 계산하도록 하는 건 비인간적이다. '넌 얼마를 내야하는 학생이다', '다른 친구들 못 따라가면 돈을 더 내든가 경쟁에서 탈락하든가' 하는 식이다. 학점 0.001점 차이로 등록금이 달라지니, 캠퍼스가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 100% 영어강의는 어떻게 보나?
"반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학번만 해도 영어 잘하는 학생들을 뽑은 게 아니다. 교수님이 강의하는데 한국어와 영어에 적잖은 차이가 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까 수업시간에 수동적으로 된다. 예전에 명강의라던 교수님의 수업도 영어로 들으니까 명강의인 줄 모르겠더라."

- 서남표 총장 이후 학교가 발전했다는 시각도 있다.
"대학 평가 순위라는 것을 믿을 수 있나. 학교에 많은 건물들이 세워지긴 했는데, 오히려 사용 제한이 생겼고 등록금 부담도 늘지 않았나. 구체적으로 나한테 무엇이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13일 카이스트 학생 총회에서 '서남표식 개혁' 실패 인정 요구안이 부결돼 논란이 많았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 경쟁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박 대표는 "카이스트 역시 과학고의 연장으로 보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카이스트에서는 창의력이나 개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낙오해 불효하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카이스트의 적지 않은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다. 학교는 다른 길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소셜 커머스가 뜨니까 돈을 벌자고 창업한 게 아니었다"

a  박태훈 쿠폰잇수다 대표.

박태훈 쿠폰잇수다 대표. ⓒ 선대식


박태훈 대표는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했다. 다른 카이스트 학생들처럼 '학점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학내 방송국 활동 등 여러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리고 창업을 선택했다. 쿠폰잇수다를 함께 이끌어가는 친구들도 한 경영전략동아리에서 만났다고 했다. 인터뷰 시작 1시간째, 문답의 내용은 카이스트에서 소셜 커머스 업계로 옮겨졌다.

그렇다면, 왜 소셜 커머스였을까? 박 대표는 "오프라인에서만 구매가 가능했던 음식점이나 뷰티 서비스 등을 반값 할인 쿠폰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지난해 초 티켓몬스터 등의 성장을 보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지난해에 사업 구상을 하느라 바빴겠다.
"지난해 9월 이미 소셜 커머스 업체를 창업했다. 우리 사이트에서 소셜 커머스 업체들의 쿠폰을 모아 보여줬다. 하지만 이미 당시에 이런 사이트가 200개도 넘어 차별성이 없었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쿠폰 상위 노출로 수수료를 받거나 배너 광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당장 돈이 되지 않나?
"단순히 소셜 커머스가 뜨니까 돈을 벌자고 창업한 게 아니었다.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추천한다'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고 싶었다."

- 무슨 뜻인가.
"기존 모델은 쿠폰 고객을 무시하고 서비스가 부실한 제품을 판매해도 통제를 할 수 없다. 이처럼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모델은 오래갈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책임지고 제품이나 쿠폰을 추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착한 소셜 커머스'를 지향하는 것도 그 때문인가.
"그렇다. 지난 1~2월 쿠폰잇수다에서 소셜 커머스 대실망 공모전을 열었다. 할인 혜택을 받은 고객을 무시하거나 광고 내용과 실제 음식이 다르게 나오는 등의 사례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그러한 불만들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업계 1위 티켓 몬스터, 공개토론회 거절했다"

a  쿠폰잇수다 홈페이지.

쿠폰잇수다 홈페이지. ⓒ 선대식


박태훈 대표는 지난 2월 7일 쿠폰잇수다 홈페이지에 "소셜 커머스는 죽었다"는 칼럼을 통해 대형 소셜 커머스 업체를 비판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대형 소셜 커머스 업체들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형 업체를 외면하거나 높은 판매량을 요구해 제품 부실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 신현송 티켓몬스터 대표에게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대형 소셜 커머스 업체들이 막대한 자본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업계 1위인 티켓몬스터와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발전적인 대안을 만들고 싶었다."

- 어떤 반응이 있었나?
"공식적인 반응은 없었다. 거절 당한 것이다."

- 쿠폰잇수다가 새로운 모델을 보여줘야겠다.
"쿠폰잇수다는 판매량에 개입하지 않는다. 단순히 제품이나 쿠폰을 중개하는 것에 그치지도 않는다. 우리가 책임지고 제품이나 쿠폰을 소비자에게 추천한다. 제품에 대한 웹툰과 상황별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광고가 아니라 정보로 받아들이게끔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 쿠폰잇수다에도 불만을 표출하는 소비자가 있다.
"쿠폰잇수다 사이트에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실망잇수다' 게시판을 만들어 의견을 듣고 있다. 불만 사안이 들어오면 대표인 제가 전화를 하는 등 직접 대응을 하고 있다."

쿠폰잇수다는 현재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소셜 커머스 업체인 그루폰이 한국에 진출한 뒤, 대형 업체들은 TV광고를 비롯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소형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셈이다.

쿠폰잇수다 역시 아직까지는 의미 있는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아직 비즈니스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면서 "쿠폰잇수다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구현한 모델로 진화중이다, 올해 안에 승부를 걸겠다"고 강조했다
#쿠폰잇수다 #박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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