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단독 표기 어렵다...나도 매국노인가

[주장] 불가능한 현실적 이유 7가지...동해 살리려면 국제적 명칭 새로 정해야

등록 2011.05.09 21:20수정 2011.05.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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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mplified Map of Japan's Periphery" drawn by Takahashi Kagerasu. "조선해"로 표기된 일본인이 그린 고지도.
"Simplified Map of Japan's Periphery" drawn by Takahashi Kagerasu. "조선해"로 표기된 일본인이 그린 고지도. koreaaward.com

"동해 '조선해' 표기 1800년대 일본 고지도 발견."

이런 뉴스를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난다. 우리 국민은 이런 뉴스를 듣고 "그래 당연하지"라고 안도하며 박수를 보내지만, 나는 참 서글프다. 20세기 이전에 인쇄된 일본의 고지도 수백 수천 종 대부분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였는데, 가끔 "조선해"로 표기된 지도가 발견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일까. 그것도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동해"가 아니라 "조선해"일 뿐이다.

동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데 나만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동해 표기문제에 대해 다른 주장을 하면 매국노 취급을 한다. 이 문제에는 좌도 우도 없다. 국론이 통일된 듯하다. 보수언론도 진보언론도, 트위터를 비롯한 SNS 참여자들도 정부의 동해-일본해 병기 방침에 비판을 퍼붓고, 도대체 현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인지를 준엄하게 묻고 있다. 동해 표기 문제에 관한 북한의 협력 제안을 반북 보수 언론조차 환영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세계지도, 교과서에서 일본해가 사라지고 동해가 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주장이 역사적으로 정당하고, 국제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상식에는 맞는 것인지 한 번쯤은 냉정하게 점검을 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2012년 국제수로기구에서의 논의를 앞두고 있기에 논의가 절실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모두의 바람과 달리 일본해를 세계지도에서 지우는 것도 동해를 (단독으로) 표기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일본해' 지우기도, '동해' 단독 표기도 불가능한 이유 7가지

 유럽 최대의 항공사인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에서 발행하는 기내소식지 'Magazin'에는 '동해' 가 'Sea of Japan(일본해)' 으로 표기되어 있다.
유럽 최대의 항공사인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에서 발행하는 기내소식지 'Magazin'에는 '동해' 가 'Sea of Japan(일본해)' 으로 표기되어 있다.루프트한자 'Magazin 스캔

일본해라는 명칭은 이미 1세기 이상 국제적으로 통용되어 왔기 때문에 일본이 포기할 까닭이 없고, 다른 나라들이 이를 변경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것이 역사이고 현실이다. 일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해 표기를 그들이 포기할 이유는 없다. 상식이다. 일본이 사라질 때까지 동해 단독표기 투쟁을 하겠다는 각오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둘째로 동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서 20세기 들어서 사용되기 시작되었을 뿐 외국 어느 나라 지도에서도, 국제기구의 지도에서도 20세기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적이 없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명칭이다. 정부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에서 간행한 동해홍보책자 <East Sea>에도 정작 "동해(East Sea)"는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서양에서 간행된 고지도 수십 종 어디에도 "동해"는 없다. 한국해만 있을 뿐이다. 외국의 도서관이나 고지도판매점에서 아시아 고지도를 찾아보면 분명한 사실이다.


17세기 이후 간행된 대부분의 지도에 동해는 없고 일본해는 흔하다. 한국해(영어표현 Sea of Korea 혹은 불어표현 Mer de Coree)는 아주 가끔 보일 뿐이다. 우리나라 고지도에서도 한국과 러시아 일본 사이에 이 넓은 바다를 "동해"로 표기한 지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먼바다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고, 따라서 과거에는 그 먼바다에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먼 하늘 여기저기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와 같다. 먼 미래에는 대기권 여기저기에도 나름의 이름이 붙을 수도 있다.

셋째로 동해는 지역명칭일 뿐이다. 동해는 한반도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바다이기 때문에 국제적 명칭으로서의 정당성을 얻기는 어렵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로 불러달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로 들릴 것이 분명하다. 동해가 한반도의 동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함께 대륙의 동쪽에 있는 서해와 남해는 왜 그렇게 부르는가에 대해 답이 없다. 동해를 "동해"로 불러온 것은 오직 우리 민족뿐, 서양인들은 그렇게 부르거나 표현한 적이 없다. 동양해(Oriental Sea)로 표기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일 뿐이고 동해와는 의미가 다르다.

 반크의 시정 요구 후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는 미술관 사이트 한반도 지도 서비스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 표기 했다. 반크의 오랜 시정요구 끝에 일본해와 함께 쓰도록 허용하기로 한 것.
반크의 시정 요구 후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는 미술관 사이트 한반도 지도 서비스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 표기 했다. 반크의 오랜 시정요구 끝에 일본해와 함께 쓰도록 허용하기로 한 것.프린스턴 대학교 미술관

넷째로 동해는 지역 명칭이기 때문에 지구 상에 너무나 많다. 가까운 중국 동쪽 바다는 국제적으로는 동지나해(East China Sea)이지만 중국 지도에서는 동해이고, 베트남 동쪽 바다는 국제적으로는 남지나해(South China Sea)이지만 베트남사람들은 그냥 동해로 부른다. 그리고 일본지도에서도 동경만 동쪽은 "동해"로 표기되어 있다. 국제적으로는 태평양의 한 부분일 뿐이다. 동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 바다를 부르는 지역 명칭은 동해이다. 이런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동해 명칭을 두고 또다시 한반도 동쪽 바다를 "동해"로 표기하는 데 동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명과 국제명은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다섯째로 바다 명칭에 특정한 나라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 그런 사례가 없다는 주장도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 상에는 그런 바다 이름이 적지 않다. 인도양, 멕시코만, 아라비아해가 그렇다. 동지나해(East China Sea), 남지나해(South China Sea)에도 모두 중국을 뜻하는 China란 명칭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대한해협도 있다. 한반도 남쪽과 일본 규슈 사이의 바다 이름은 국제적으로 대한해협(Korea Strait)으로 표기된다. 일본인들은 대한해협 일부를 쓰시마해협으로 부르지만 국제적 표기원칙에 맞지 않는다. 일본 영토인 대마도가 있는 그 바다 명칭에 한국이란 이름이 들어가 있다. 세계지도에서 북한의 평안도 서쪽과 중국 요동반도 동쪽 사이의 바다는 한국만(Korea Bay)으로 표기되고 있다. 바다 이름과 해양주권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여섯째로 동해는 서해와 남해라는 명칭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서해와 남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둘은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다. 서해는 황해이고, 남해는 대한해협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1961년부터 중국식 명칭인 황해를 사용했고 1965년에 황해를 공식 명칭으로 수용하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서해안, 서해대교, 서해교전(제2연평해전), 서해갯벌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제적 명칭과 지역명칭은 다를 수 있다는 일반 관행과 일치한다. 남해는 대한해협이다. 우리가 동해를 국제적 명칭인 동시에 지역명칭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서해를 포기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세계지도에 남해를 표기하지 않고 대한해협으로 표기하는 이유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로 과거에 동해를 "한국해"나 "조선해"로 표기한 근거가 있다는 것이 지금도 그 바다가 국제적으로 그렇게 불려야 할 당연한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세계질서는 과거나 현재나 강대국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된다. 그런 국제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로서 존속할 수가 없다. 세계의 많은 테러 집단이 바로 그런 현실적 국제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일본해 표기는 설사 우리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7세기 이래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고, 18세기에 내부점검을 거쳐, 19세기에 근대화 수준에서 서양에 버금가는 수준에 올라섰던 일본의 주장에 서구 열강이 동의한 결과였다. 그 바다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근린 국가인 우리나라나 러시아와의 협의를 거치고, 모두 동의하는 명칭을 채택하였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지만 일본이 그런 아량을 지닌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쉽고, 그 결과는 불쾌하다. 그러나 쇄국으로 일관한 우리가 그 당시의 국제질서 자체를 부인하고 그 이전 질서와 우리식 명칭으로 되돌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일본해"라는 그들 식 명칭을 붙인 것만큼이나 세계인들 안목에서는 매우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애국가에 "동해물"이란 표현이 들어 있다는 것도 우리 국민들이 동해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애국가가 국제법이나 국제질서를 규제할 수는 없다.

평화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제안, 국제적 명칭을 새롭게 정하자

 가수 김장훈이 지난해 3월 9일 오후 서울시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동해독도 고지도전' 전시회장을 찾아 독도 및 동해 알리기 관련해 독도를 연구하는 호사카 교수에게 1억원 지원 약정서를 전달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가수 김장훈이 지난해 3월 9일 오후 서울시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동해독도 고지도전' 전시회장을 찾아 독도 및 동해 알리기 관련해 독도를 연구하는 호사카 교수에게 1억원 지원 약정서를 전달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유성호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65년이 되었다.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전 인구의 90%가 넘는다.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고, 그만큼 책임도 커졌으며,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는 세계인들의 시선도 매우 강하며 간절하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었던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평화 관리에서 지도적 역할을 할 수는 없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역사적 상처에서 벗어나는 책임이 무조건 일본에만 있다고 언제까지 되뇔 수만은 없다. 가해자와 함께 피해자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동해 표기 문제에서의 양국의 양보와 타협은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식은 동해-일본해 병기도 아니고, 동해 단독 표기도 아니다. 동해를 이름 없는 바다, 역사적 상처를 상징하는 무명의 바다로 남겨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협의에 따른 제3의 중립적 표기의 채택이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다른 대안은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제3의 명칭에 합의하더라도 한일 양국 자존심의 상징인 동해와 일본해는 살릴 수 있다. 상대국의 역사나 문화를 설명하는 지도에서는 상대국의 표기법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세계지리 교과서에서 일본 지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일본의 서쪽 바다를 일본식으로 "일본해"로 표기해 주고, 일본의 교과서에서 한반도 역사나 문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한반도 동쪽 바다를 "동해"로 표기하자는 주장이다.

즉, 동해와 일본해는 지역명칭으로 남겨두고 국제적 명칭은 새롭게 정하는 방식이다. 이미 영국이나 미국의 일부 교과서에서 그런 방식으로 동해를 표기하는 사례가 있고, 그런 방식의 채택 과정에서 나의 주장이 부분적으로 작용했던 경험이 있다.

나는 이것을 매우 평화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의 양보가 더 클 것인지를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나라 국민의 과거사 청산과 평화를 향한 의지가 더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길상 기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길상 기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입니다.
#동해 #일본해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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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문학자이며 교육학 교수이다. 유투브채널 <커피히스토리>를 운영하고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2023),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2021),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2015), <20세기 한국교육사>(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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