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주'는 지역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설치물도 마련했다.
한진숙
사는 분들이 원하는 대로 짓는다고 완벽한 주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건설 효율성에서 이번 공동주택은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방 위치뿐 아니라 거실, 주방, 욕실의 위치가 전부 제각각이라 어떤 집 안방 위에 화장실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건축 코디를 맡아주신 이일훈 교수님께서는 설계도를 보면서 '이 집을 기한 안에 다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층마다, 집마다 평수와 구조, 골격이 다 달라 건물의 중심부를 한 곳에 모으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본 골조가 완성된 후 입주자들은 벽 두께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일반 주택의 벽보다 훨씬 두꺼웠기 때문입니다. '맘대로' 설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많은 철근을 넣어 골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사장의 인부들도 '이렇게 굵은 철근을 많이 쓰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답니다.
생각보다 방이 작아 보인 것도 벽 두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살면서 벽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갉아내야겠다'라고 했을 때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다 보니 효율성은 떨어지고 그만큼씩 입주자들은 손해 아닌 손해를 입은 셈입니다.
공동주택이 입주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은 모두 반겼습니다. 설계에서부터 마감재 선택까지 모여 살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취합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설계하는 동안 수차례 입주자 모임을 열고 의견을 취합하고 설계 수정 모임도 수차례 했습니다. 터파기 공사 고사, 상량식 고사도 참석해야 했습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1박2일로 입주자 나들이도 다녀왔지요. 공동주택이 지어지기까지 모든 과정에 입주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니 소통의 기회는 참 많았습니다. 그런 모임이 대부분 평일 저녁에 이뤄지다 보니 피곤한 남편들은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모여? 그냥 알아서 하면 안 되나?' '사사건건 다 의견 들어야 해? 개략적인 것만 합의하면 되는 거지.'
소통은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내 의견이 꼭 반영되기를 바라지만 피곤한 어느 순간은 외면하고 싶어지곤 했습니다. 내 관심사가 아닌 것은 더욱더 귀찮게 생각되더군요. 내 집 내부를 어떻게 만들지는 늘 챙기는 것이지만 공동의 공간, 이를테면 옥상이나 2층 공용 공간, 1층 공간은 관심에서 멀어지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도 그 공간이 내가 쓰는 곳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또 눈을 빛내며 힘주어 말하게 되고요. 개인의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공존하는 공동주택에서 개인의 관심사와 욕구, 공공의 선을 위한 배려가 적절히 어울리는 모양새를 찾아가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공동주택 생활의 백미는 엄마들의 저녁 만찬소통하려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했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교환을 했는데도 나중에 알고 보니 서로 다른 말로 이해하고 있었던 경우가 더러 생겼습니다. 공사 시작 전에 건설 실무자가 집집마다 방문해서 갖고 있는 가구의 크기를 세밀히 조사하고 짓는 집에 어떤 방향으로 배치할 것인가까지 꼼꼼히 알아갔습니다.
그 세밀함에 감탄을 연발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골조가 올라가고 내장재가 들어간 후 실측을 해보니 가구보다 작아 가구를 쓸 수 없게 된 경우가 생겼습니다. 충분히 소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틈이 생겼는지 그런 경우가 생겨 마음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 최대한 수납공간을 확보해달 라는 입주자들의 요구가 많아 욕실장을 최대한 넓게 짰더니 세면대 사용이 어정쩡해지고 말았습니다.
개인의 욕구가 사용 자체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면 그런 수납 욕심은 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입주 후 집집마다 욕실장을 바꾸거나 옮겨 다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개인의 욕구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 경계를 분명하게 긋지 않아 생기는 소통의 오류는 앞으로 살면서도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봅니다.
절반 정도 입주가 이뤄졌을 때 5층 복도에서는 소행주 벼룩시장이 열렸습니다. 쓰지 않는 멀쩡한 물건을 갖고 나와 필요한 집에서 가져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정리해야 할 절박함에서 벌인 행사이긴 했지만 덕분에 아이들 옷 몇 가지를 공짜로 얻었습니다. 아이들도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냉큼 챙겼습니다. 우리 막내가 타던 실내자동차는 아랫집 4살 동생한테 갔습니다. 우리 큰아이는 앞집 언니가 입던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물품들은 5월 말에 열리는 성미산마을축제 아나바다 장터에 내놓기로 했구요. 너도나도 기분 좋아지는 반짝 잔치였습니다.
입주가 시작되면서 남편이 늦는 가족들은 모여서 자연스럽게 밥을 같이 먹습니다. 주로 아이들이 어린 입주자들이 모이는데 집에서 반찬 한 가지씩 들고 오면 식탁도 풍성해지고 아이들도 즐겁습니다. 바쁜 남편 보채지 않고 엄마들끼리 같이 저녁 먹으려고 공동주택에 입주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마들의 저녁 만찬은 공동주택의 백미 중 하나입니다.
다만 아이들이 많다 보니 식사 시간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잠들 시간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맺고 끊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잔치는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주말이 되면 아이들의 잔치는 더 소란해졌는데 아이들의 소란함이 피곤한 아빠들은 '사생활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집 저집으로 몰려다니는 식의 놀이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현관문을 닫을 수가 없고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마음 놓고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우리 집 큰아이와 윗집 중학생 딸도 꼬맹이들의 동분서주가 피곤한 기색입니다. 입주가 완료되면 입주민들이 모두 모여 아이들 노는 방식에 대해 서로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얘기하고 원칙을 정해야 할 듯합니다. 집은 엄연히 휴식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공동주택 입주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용기와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