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뜯어말린" 집으로 이사갑니다

[성미산 공동주택 입주기①] 2층엔 방과후교실, 옥상엔 텃밭 만들 거예요

등록 2011.02.17 16:17수정 2011.02.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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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건설 현장. ⓒ 한진숙


온 세상에 봄기운이 퍼지는 4월이 되면 서울 마포 성산동 성미산마을로 이사갑니다. 성미산지키기 싸움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도심 속 마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 집을 사기도 한 데다 6층 공동주택을 지어 입주하는 것이니 12년차 우리 가족 역사상 사뭇 획을 긋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만들기'(줄임말 소행주)라는 회사가 '자연을 담은 집'(줄임말 자담) 건설사와 뜻을 모아 성산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입주자를 공개 모집해 공동주택을 지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입주할 주택이 소행주 1호인 셈입니다.

'따로 또 같이' 소행주에 입주하려고 합니다

공동주택 건축 현장. ⓒ 한진숙

이 공동주택은 '따로 또 같이'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입주자들 각자 생활은 보장하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한 데 모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2층에 '입주민을 위한 공용 공간'을 만들어 같이 식사도 하고 회의도 하는 것입니다. 때론 불 끄고 영화를 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실내놀이터로 변신할 수도 있지요.

또 2층에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방과후교실이 입주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만든 수제비누공동체도 들어옵니다. 이들 사무공간은 주택공간보다는 평당 입주금이 낮습니다. 마을의 자생단체와 일 공동체를 배려하는 차원입니다. 1층 주차장 옆엔 작은 마을쉼터를 만들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습니다. 주차공간을 좀 더 여유있게 두면 입주민들은 편할 테지만 설계 단계부터 그 마을 쉼터를 우리 공간으로 쓰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3층부터는 가정집인데 우리 가족은 5층에서 살 예정입니다. 세 가구가 모여 사는 5층은 다른 층과는 조금 다르게 지어집니다. 복도에 마루를 깔아 신발 벗고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복도에 세 가구의 신발장을 내놓았고 어쩌면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15평, 18평 정도로 평수가 작고 어린 아이들이 많은 5층 입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넓게 살까 고민한 끝에 복도를 생활공간으로 쓰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죠. 우리집 남편과 앞집 남편은 집이 너무 작아 답답하면 복도에서 사이좋게 자기로 합의했다는군요. 집을 크게 만들기보다 개인의 공간은 최소화하고 같이 쓰는 공간을 풍요롭게 하려고 합니다. 솔직하자면 입주금액에 맞춰 평수를 정하다보니 오밀조밀해진 것이지만요.


옥상에는 텃밭을 만들고 공동 빨래건조대, 야외 바비큐장을 만듭니다. 작은 정원도 들일 예정입니다. 텃밭에는 무엇을 심을지 모르지만 부지런한 어떤 집에서 야채를 파릇파릇 길러놓으면 게으른 어떤 집 식구들은 참 고마워하며 먹을 것입니다. 아마 그 게으른 집에서는 대신 빨래를 잘 걷어주게 될 테지요. 그렇게 살고 싶어 모인 것이니까요.

남편과 친지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결정했죠


공동주택의 안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 장면 ⓒ 한진숙

이 공동주택에 우리 집이 끼어들기까지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한 고개를 넘고 나면 큰 강이 나타나고 강을 겨우 건너니 큰 산이 가로막는 형국이었죠. 작년 4월 이 공동주택이 논의되고 있음을 남편에게 알리고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남편 얼굴빛은 창백해지더군요.

"사기 아니야? 그런 집을 짓고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남편의 거친 항변이 무리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돈을 모아 집을 짓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산다니 어이가 없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 집을 짓겠다고 나선 건설사도 도통 처음 듣는 곳이라 어디 한 군데 믿을 만한 구석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입주자들은 이미 그 동네 사람들이었고 공동육아나 생협을 같이 하면서 서로 속내를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 마을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었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다만 저는 생협 일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런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나중에 입주를 결정한 후 가진 입주자 회식자리에서 남편이 공식적으로 한마디 하더군요.

"이혼하자고 할까봐 공동주택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하."

시댁과 친정의 반대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은행 빚 얻어 그런 빌라 사면 집 값 떨어져 망한다. 애들 생각해야지~"
"뜻만 좋으면 뭘 하냐."
"다른 집 식구들하고 사이 나빠지면 어떡하려고!"

그나마 친정 부모님은 집 마련에 조금 기뻐하셨습니다.

"어찌 어찌 되겠지."

아침에는 '입주하자', 저녁에는 '포기하자'

우리 부부는 공동주택의 가치가 소중하고 마을에서 아이들이 행복해지리라는 기대 때문에 입주하는 것이지만 부모님 보시기엔 생전 처음 집을 사면서 아파트 값에 빌라를 사는 것은 너무 세상물정 모르는 짓일 뿐이었습니다. 또 옆집 아랫집 모두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이 그저 좋은 것만도 아닐 터이니 참 걱정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 얼굴을 볼 때마다 '정말 들어갈 거냐?'고 질책성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굳건한 의지를 천명하고는 있었지만 입주를 결정하고도 우리 부부는 수시로 안절부절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입주하자' 결심하고 저녁에는 '포기하자'로 마음을 돌리는 식이었습니다. 입주를 고집했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셋인 우리 다섯 식구가 살기엔 집이 작고, 마련해야 할 입주금은 우리 능력 밖이라 결국 은행 돈으로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계약금과 중도금을 마련하느라 월세로 옮겨야 했고 은행이자 계산해 보며 수시로 손익계산을 했습니다. 은행에 내는 이자만큼 집값이 올라야 하니 1년에 어느 정도 집값이 뛰어야겠구나 그런 계산도 재빨리 되더군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남편이 급작스럽게 실직하는 경우를 생각했을 때는 암흑천지가 되더군요. 기대치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성미산마을과 공동주택에서 배우고 실현하면서 사는 어떤 가치가 더욱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기까지 심적 고통이 대단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입주를 목전에 두고서야 부모님들은 마음을 비우신 것 같습니다. 시아버지는 집 사는 데 조금 보태주마 언질을 주시고 친정 어머니는 장농 사라며 그동안 아버지 몰래 모아놓은 쌈짓돈을 보내주셨습니다. 부모가 되고서도 부모의 마음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빚 얻어 공동주택 산 우리가족의 선택, 살아봐야 압니다

입주자 모임 모습. ⓒ 한진숙


대부분 입주자들에게 공동주택은 전에 살던 집보다 작습니다. 가지고 있는 살림살이를 한껏 단촐하게 정리해야 이사 들어올 수 있답니다. 우리 집만 해도 침대를 버려야 하고 안 보는 책이나 쓰임새가 적은 그릇들도 정리해야 합니다.

6층에 오실 분은 30평대 아파트 살다가 20평대로 오는 것이니 꽤 버려야 할 것입니다. 12자짜리 장을 버려야 해서 참 안타까워합니다. 우리 앞집에 올 분들도 입주를 앞두고 '살림 슬림화'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집 넓이에 맞게 살림을 정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것이지만 살림살이를 정리하면서 마음까지 정리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살 빠지면 입을 거라고 옷장에 몇 년 동안 모셔둔 원피스, 모양이 예뻐서 충동적으로 구입한 쟁반 세트, 사은품으로 받은 접시 세트를 정리하면서 내 욕심의 실체를 확인합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경우의 수에 대비해 쌓아놓고 쟁여둔 살림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과감히 버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우리집에 없는 것이 필요해지면 옆집 가서 빌려오고 거기도 없으면 아랫집 가서 빌리려고요. 혹시라도 나중에 날씬해져 엣지 있는 원피스 입을 수 있게 되면 마을에 있는 되살림가게에서 이천원짜리 원피스 사입으면 됩니다. 공동주택에 살려다보니 이런 근거없지만 마음 편해지는 낙관성을 덤으로 얻은 듯합니다.

바닷가에 집을 지을 때 바다를 맘껏 볼 수 있는 넓은 창을 만들기보다 작은 창을 내고 바다로 쉽게 나갈 수 있는 문을 내야 한다는 생태건축가 이일훈 교수님이 공동주택의 코디를 맡고 있습니다. 뭐 이렇다 할 벌이가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입주자들 모임에 꼬박꼬박 나오셔서 건축 전문가로서 조언도 해주시고 건축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비워야 넓어지고 채워진다'는 그분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을 대단한 재산도 없고 남편도 탄탄한 신의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우리 가족의 윤택한 생활을 보증하는 방편은 집테크가 유일할 테지요. 재산을 늘리는 테크, 이런 저런 계산 다 팽개치고 빚 얻어 공동주택 산 우리가족과 입주민들이 과연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는 살아봐야 압니다. 공동주택에서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가감없이 기록하면서 그 결과를 알아볼 작정입니다.
#성미산 #공동주택 #따로 또 같이 #소행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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