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과학수사를 불신하는 '마지막 형사'

[리뷰] 피터 러브시 <마지막 형사>

등록 2011.05.23 14:39수정 2011.05.2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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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지막 형사> 겉표지

<마지막 형사> 겉표지 ⓒ 시공사

'마지막 형사'는 피터 러브시가 창조한 수사관 '피터 다이아몬드'를 가리킨다.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의 첫번째 편인 <마지막 형사>에서 한 검시관은 피터 다이아몬드에게 '한 시대를 마감하는 자리에 서 있는 마지막 형사'라고 말한다.

<마지막 형사>가 발표된 것은 1991년이다. 다이아몬드처럼 발로 뛰며 잔뼈가 굵은 수사관들이 점점 줄어들고 과학수사와 컴퓨터 시스템에 의존하는 형사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던 때다.


다이아몬드는 과학수사를 믿지 않는다. 과학수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코웃음을 치며 '상식과 탐문수사만 있으면 된다'라고 주장한다. 컴퓨터를 배우려고 하지도 않으며 전자레인지 사용법도 모른다.

수사관련 정보들을 컴퓨터에 입력하기보다는 수 만 장의 색인카드에 적어넣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것을 역겨워할 정도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형사처럼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마지막 형사>에서 그는 41세에 불과하다.

발로 뛰는 수사를 고집하는 피터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는 기술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사관의 고유한 지적능력만이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영국의 에이번-서머싯 지역 경찰서의 수사과장이다. 머리는 많이 벗겨졌고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부풀어오른 복부가 산을 연상시킬 정도다.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어느날 밤 호수에서 벌거벗은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현장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자살이나 사고일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여인을 죽인 후에 호수에 시체를 유기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해야하는 일이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호숫가 주변에는 신원과 관련된 단서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진정한 형사 업무라고 생각하는 용의자 색출과 심문에 앞서서 그물망식 수사를 시도한다.

희생자의 옷이나 다른 증거물들이 호수 바닥에 버려졌을 수도 있다. 호숫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최근에 수상한 사람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잠수부를 동원해서 호수를 조사하고, 부하들을 시켜서 호숫가 마을의 집들을 찾아다니며 방문수사를 펼친다. 한편으로는 최근에 신고된 실종자들 명단을 훑어보기도 한다.


그래도 별 효과가 없다. 해 질 무렵이면 낚시꾼, 조류 관찰자 또는 산책 나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벌거벗은 시신을 질질 끌고 가거나 짊어지고 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이아몬드는 매스컴을 이용한다. BBC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희생자의 몽타주를 보여주고 시청자들의 협조를 요청하게 된다.

그 결과는 탐문수사의 성과를 뛰어넘는 것이다. 각종 제보와 실종신고를 종합한 결과,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된다. 피해자는 이제 곧 서른네 살이 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BBC 방송을 통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 제럴딘 잭맨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미모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여배우를 누가 왜 살해했을까?

조금씩 변해가는 완고한 수사관

범죄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형사들이 그렇듯이, 피터 다이어몬드도 경찰서 내의 '정치'에 능하지 못하다. 다이아몬드는 마치 럭비 시합을 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물리치는 기술을 습득했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 공격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게끔 행동한다.

사건과 관련해서 문서작업이 잘못되기라고 하면 담당 여직원이 눈물을 흘릴 때까지 몰아댄다. 그리고 그녀의 잘못이 아닌 것까지 뒤집어씌우며 길길이 날뛰어서 사무실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가 수사과장으로 승진한 것 자체가 기적 또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런 다이아몬드도 집에 돌아오면 자상한 남편으로 변한다. 아직 자식은 없지만 부인과 함께 다정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와인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마지막 형사>의 후반부에서 다이아몬드는 최신식 전자레인지를 하나 사서 집으로 배달시킨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현대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될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형사들의 일 대부분이 과학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다이아몬드가 어린 시절에 우상처럼 떠받들던 탐정과 형사들은 모두 아득히 먼 옛날의 공룡같은 취급을 받는다. 피터 다이아몬드는 그 공룡 세대의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진정한 '마지막 형사'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형사> 피터 러브시 지음 / 하현길 옮김. 시공사 펴냄.


덧붙이는 글 <마지막 형사> 피터 러브시 지음 / 하현길 옮김. 시공사 펴냄.

마지막 형사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시공사, 2011


#마지막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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