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개정영어교육과정으로 학교는 몸살 중

5월 26일 영어교육관련 공개 토론회를 앞두고

등록 2011.05.24 16:44수정 2011.05.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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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정규 교과로 영어를 가르친 지 14년이 되었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분명 달라졌지만 이는 학교 영어 교육의 효과가 아니라 초등영어교육의 역사와 비례해서 늘어난 사교육비의 효과라고 봐도 될 만큼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상 회화의 단면만을 가져다가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학습하면 뭔가 영어 의사소통이 될 것을 가정하고 집필한 것 같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처음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영어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우리말과 어떻게 다르고, 그 다름을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필요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영어 사교육 광풍의 제1의 진원지라고 볼 수 있다.

엉터리 교육과정 때문에 학교 영어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영어 사교육으로 고통 받고, 학부모들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사교육비로 허리가 휜다. 교사들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환경에 대한 어떤 교육적 담론도 없이 만들어낸 엉터리 교육과정을 목이 터져라 가르치며 자괴감을 느낀다. 이러한 현실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도 하지 않은 채 돈만 쏟아부어 해결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 오류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수 차례 기사를 통해 고발했 건만 부실한 기초에 돈만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1.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의 문제점

a 5월 26일 서울고등학교에서 국가영어교육정책 토론회가 열린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영어과 교육과정 개정, 방과후 영어 교육 관련 굵직굵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5월 26일 서울고등학교에서 국가영어교육정책 토론회가 열린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영어과 교육과정 개정, 방과후 영어 교육 관련 굵직굵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 한희정


4년을 배워도 눈 뜬 장님을 만드는 초등 영어 교육과정, 450개 단어를 그냥 듣고 외우라고 강요하니 사교육 안 받으면 부진아되기 십상이라는 비판, 문화는 없고 기능만 앙상한 영어교과서는 그림책일 뿐이다. 읽기 따로 쓰기 따로 가르치니 총체적 언어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런 교육과정 때문에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영어 격차가 더 커지며, '영어포기아'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8년 교과부는 끝내 근본적인 변화 없이 영어수업시수를 늘려놓았다.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시수 확대 : 3-6학년, 2-2-3-3 으로 늘어남.
▶단원수 증가 : 8단원→16단원으로 2배 순증(검정교과서마다 조금 차이)
▶어휘와 표현 증가 : 3~6학년 총 500단어에서 520단어
▶읽기, 쓰기 학습 조기 도입(3학년 2학기)
▶검정 교과서 도입

1) 영어 시수 확대는 일자리 창출 정책인가?
2008 개정 당시 많은 학자나 교사들이 주당 1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사교육 열풍을 부추길 뿐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시수 확대를 강행했고, 아이들의 학습 노동은 뒷전으로 한 채, 수업 시수가 확대되니 교사 부담을 경감시켜주겠노라며 영어회화전담강사라는 희대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신규 임용 교사는 줄고, 이미 임용에 합격한 교사들은 일년 이상 발령 대기 상태로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회화전담강사라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이 제도가 교사의 수업 부담을 줄여주고 영어 교육을 질을 높이기 위한 게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른 고용 확대, 일자리 창출 정책이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셈이다.

2) 늘어난 학습 부담,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
시수가 늘어났으니 배워야 할 내용도 늘어났다. 배워야 할 단원, 학습해야 할 어휘수가 '소폭'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네 영역을 골고루 학습하여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키겠다고 선전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학습 부담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3) 문자언어학습 보완? 내용은 그대로, 시기만 앞당긴 꼴
외국어 학습에서 문자 언어 학습은 외국어 학습 환경, 즉 ESL(제2언어로서의 영어)이냐 EFL(외국어로서의 영어)이냐, 성인 학습자이냐 아동 학습자이냐에 따라 학습 효과가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은 EFL 환경에서 초등학교 3학년 시기에 문자 도입과 함께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단지 시기를 3학년 2학기로 앞 당겨놓고 문자언어학습을 보완했다고 선전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4) 검정교과서는 영어교육시장 키우기?
검정교과서가 도입되면서 전입생에게 나누어줄 교과서가 부족하고, 학습 자료 저작권 문제로 시끄럽다. 이 이전에 불충분한 검정기준으로 인해 너무 어려운 교과서가 버젓이 검정에 통과되기도 했다. 결국 무리한 개정을 추진한 교과부는 교과서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민간 출판사에게 전가한 셈이다.

2. 초등영어교육 14년,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은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 현실은 무시한 채 영어교육강화론자들에 의해 졸속으로 추진된 교육과정이다. 교육은 속도전으로 갈 문제가 아니다. 초등영어교육 14년이라는 역사, 그 속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고통에 제대로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초등영어교육의 공과 과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필요하다.

1) 제2언어(ESL)냐 외국어(EFL)냐 관점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외국어다. 자명한 사실이다. 영어 교육에 있어서, 영어를 외국어(EFL)로 보느냐, 제2언어(ESL)로 보느냐는 아주 중요한 관점의 차이를 내포한다. 영어를 하나의 외국어로 대한다는 것은 전 국민이, 학생들이 영어를 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교육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영어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초등학생에게 '아침 먹었니? 기분이 어떠니? 무슨 요일이니? 뭐하니?' 하는 일상 회화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학교에서 배워도 써 먹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초등 저학년부터 원어민 강사 데려다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혀 꼬부라지는 발음에 왕창 주눅 들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2) 초등영어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의 영어교육환경이 EFL이라는 것을 인정한 다음 초등영어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행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은 영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기초적인 영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를 만나지 않는 한,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할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배워도 써 먹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다.

일주일 영어 시간이 1시간이든 2시간이든 3시간이든 노출시간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몰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영어를 아이들에게 노출시킨다고 학원에 보내니 많은 아이들이 영어에 진저리를 치고 고학년이 될수록 영어포기아동이 늘어나는 것이다. 정말 우리의 초등학교 자녀들에게 필요한 영어가 무엇인가? 아니 정말 필요한 과목인가? 날씨, 요일, 기분, 나이, 생일, 가격 따위를 묻고 답할 줄 알면 영어로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되는 것인가? 사실 이런 정도의 의사소통구문은 인지능력이 더 발달한 중학생이 학습하면 더 빨리 더 쉽게 배울 수 있다.

3) 선수학습을 배제한 교육과정 구성과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
현재 한국의 초등 영어 교육의 상황은 부실한 교육과정에 사교육 광풍으로 한 마디로 난맥상이다. 학교 현장에서 영어를 가르치다보면 정말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자들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알고 쓴 것일까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가정하고 쓴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보기도 했다. 아이들의 선수학습을 배제한 교육과정,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실증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3) 교과서 검정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
검정교과서제도는 이미 살펴보았지만 시행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되었을 뿐인데 여러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초학습을 하는 초등학교에 검정교과서 체제가 과연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고, 다음 교육과정 개편시에는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4) 영어회화전담강사, 한시적 제도임을 분명히 하라.
초등영어 14년의 역사는 수많은 문제들도 만들어냈지만 우수한 초등영어교사들을 배출해 내기도 했다. 영어 교과 전담은 이제 기피하는 자리도 아니며 수많은 현직교사와 예비교사들이 영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연수 받고 공부하며 노력하고 있다. 이런 모든 암묵지들, 즉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 초등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초등학교 아이들의 발달 특성에 대한 이해 등을 배제한 채 '회화' 능력만을 기준으로 잣대질 하는 것은 더 이상 현장에서 용납하기 힘든 처사이다.

얽힌 실타래는 속도전으로 풀리는 게 아니다. 차근차근 중지를 모아야 한다. 한 사회의 100년을 설계하는 일이니 그 중요성이야 더 말해서 뭣하랴.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각론을 개발중이라는데, 정말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 좀 더 정밀하게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5월 26일 있을 토론회에서 좀더 건설적인 전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첨부파일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의 문제.hwp
덧붙이는 글 이 글은 5월 3일 있었던 '초등교과서와 교육과정 어떻게 바꿔야 하나' 토론회의 영어 교과 발제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국가영어능력검정시험 #초등영어교육 #2009교육과정 #2008개정영어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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