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해변 찻집에서 만난 현지거주 이대부고 21기 졸업생들(왼족부터 정종옥, 강영수, 필자, 전영록, 고 김순세 선생. 2004.3.)
박도
지금 우리 교육의 현장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품이 쏟아지듯이
배우는 이도, 가르치는 이도
뜨거운 가슴이 없이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것 같고,
교육의 바른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네.
사실 교육은 가르치는 훈장과
배우는 학생과 눈빛의 만남이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어야만 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네.
30년 전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는데
나는 오늘도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끼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학교가 다투어
대량과 대형을 우선시하며, 우열을 가리고, 빈부를 가리며,
인격의 만남보다 지식의 거래처와 같은 곳으로 변질되는 느낌이 없지 않네.
문화와 철학의 빈곤 지금 생각해 보면 30년 전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성격도 모난 데가 많아 수업시간을 비롯한 학교생활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짜증을 주었으리라 짐작이 되네.
이 점 뒤늦게나마 깊이 사과 드리네.
이제 다시 교단에 선다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월은 나에게 지난날과 같은 건강과 기회를 주지 않을 뿐더러,
지금과 같은 학교 풍토에서는 교단에 서고 싶지도 않고,
또한 학교에서도 나와 같은 구닥다리는 받아주지도 않을 걸세.
나는 뒤늦게야 내 부족함을 깨닫고
지금도 책을 열심히 읽고,
역사의 현장을 쫓아다니며,
부지런히 배우고 있다네.
그동안 서른 권 정도의 책을 펴냈는데
지난해에는 <영웅 안중근>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등의 책을 펴냈고,
올해는 장편소설집 <제비꽃>, 산문집 <카사, 그리고 나>, <대한제국> 등의
책을 곧 펴낼 예정이네.
우리 역사와 인생에 대해 공부할수록 무명 무지의 지난 세월이 부끄럽고,
또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도 있다네.
자네들도 살아있는 한 늘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기 바라네.
얼마 전 나의 학창시절 한 동창 얘기를 들었는데,
그는 한때 매우 잘 나가는 기업인으로
아무개 방송국 '성공시대'에 소개될 만큼 화제의 인물이었지만
잠깐 새 추락하여 지금은 폐인 직전이라는 얘기를 들었네.
나는 그 원인을 그 친구는 돈 버는 일에만 전력투구했지
문화와 철학은 소홀이 한 탓으로 돌리고 싶네.
어디 그 친구뿐이겠는가.
고위공직자가, 재벌의 자녀가,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이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도
그 근본 원인은 건전한 문화 마인드와 철학의 빈곤 탓이라네.
자네들은 이제라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소양을 넓히고
자기 나름대로 생활철학을 세우기를 바라네.
자네들 남은 인생이 순항하기를 이제 자네들도 지명(知命, 50세)에 이른다고 하니 세상살이에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 테고,
내가 특별히 부탁할 것도 없지만(전문분야에서는 내가 오히려 배워야하지만),
그래도 지난날 훈장의 노파심으로 띄우는 글이요,
그날 자네들에게 대접받은 밥값으로
이 글을 보내네.
자네들 남은 인생이 아무쪼록 순항하기를 바라며,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 특별히 부부간 화목과 해로를 비네
부부간 화목의 비결은 서로간 존중과 배려요.
서로 다름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네.
그리고 그날 이런저런 사정으로 만나지 못한 제자들에게도
아울러 건강과 안녕을 비네.
특히 지구촌 곳곳에 흩어진 여러 제자들에게 건강을 기원하며 안부 전하네.
남은 날도 우리 모두 열심히 사세. 그러면 다시 만날 때 더 반갑다네.
2011년 6월 1일
원주 치악산 아래 '박도글방'에서
옛 훈장 박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