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시인의 40대 모습.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 제1권에 실린 사진입니다.
조종안
최영 시인과의 인연은 부산에 살 때 그의 수상록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1권-6권)을 통해 맺어졌다. 최 시인이 1973년 7월1일 군산 시청 부시장실에서 공무원 임용 발령장을 받으면서 시작되는 진솔한 고향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던 것.
최영 시인은 1945년생으로 전북 순창이 고향이다. 1968년 맹호부대로 월남전 참전, 제대 후 브루나이 공화국 공사장에서 다쳐 장애의 몸으로 귀국하여 군산에 터를 잡는다. 군산에서 가정을 가졌고, 아들을 보았고, 84년 <시문학>으로 등단, 올해엔 한국 문인협회 이사가 되었다. 그는 군산의 하늘과 땅, 산천을 사랑하고 사람들도 사랑하려고 한다고 말해왔다.
2010년 4월30일 <오마이뉴스>에도 소개되었던 책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를 읽으며 불완전한 몸으로 병마(우울증)와 싸우면서 무척 고독해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순간 '무척 외롭게 지내는 분이구나, 고향으로 이사하면 열렬한 독자가 되어 드려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목포역 광장에서 야간 유세를 할 때 갑자기 정전되었다 합니다. 연설 도중 불이 꺼졌는데 김대중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포 시민 여러분! 이제 캄캄하여 여러분이 마음대로 박수치고, 마음대로 좋아해도 알지 못하여 잡아가지 못하도록 도와준 목포 시장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시다'라고 제의한 후 명연설을 했다는 이야기는 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 2권 113쪽) 최 시인은 감옥에서 6년, 연금생활 10년을 극복하고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기의 목표에 최선을 다한 김대중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감명을 받고 있다며 1997년 12월 선거 승리로 50년 만에 이룬 정권교체를 감격해 하며 환영했다. 김대중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월남에서 돌아온 71년 봄 김대중 후보를 가까이서 보려고 전주고 운동장에 설치된 단상 앞에서 기다렸다는 최 시인은 박정희의 군사독재 18년을 '암울했던 시절', '지긋지긋한 세월'로 묘사했다. 특히 40대 중반에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 대목은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다.
"10여 년 전 나는 한 해 동안 내장산을 40회 이상 등반을 하였습니다. 삼학동 사무장에서 의료보장 계장으로 옮겨오던 시절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늘 세상은 쓰레기처럼 보였고, 머리엔 주검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28일 동안 개정병원 정신과 병동 입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왠지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내장산이었습니다."(같은 책 154쪽)
당시 40대 중반으로 휴일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장산을 찾았다며 산은 어머니요, 계곡은 큰 품으로 느껴졌다고 적고 있다. 최 시인은 만물의 존재와 생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산으로부터 얻어냈다며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렇게 쓴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사연들은 나를 열렬한 독자로 만들었다.
처음 만남(2009년 9월30일)부터 마지막 만남(2011년 6월29일)까지 2008년 8월 군산으로 이사해서 최영 시인이 <군산뉴스>에 연재하는 '군산풍물기'를 빼놓지 않고 읽으면서 그의 곁으로 한발짝씩 다가갔다. 그렇게 글만 대하기를 1년 남짓. 2009년 9월30일 '오성문화제전' 취재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지만, 반가웠고 의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