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로 아들을 군에서 잃고 군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타이완 '군인의 어머니' 첸피에씨.
연합뉴스
지난 1995년 6월 15일 중국 푸젠성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들이 바다에 떠 있는 한 타이완 해군 수병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수병의 이름은 '후앙궈장', 타이완 군은 시신이 발견되기 전 가족들에게 함상 근무 중이던 후앙궈장이 군 복무에 염증을 느껴 바다에 투신했다고 통보했던 터였다. 하지만 발견된 시신의 두개골에는 긴 쇠못이 박혀 있었다.
아들의 죽음은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어머니를 인권운동가로 변모 시켰다. 후앙궈장의 어머니 첸피에씨는 이때부터 '후앙마마(황씨 성을 가진 아이의 엄마라는 뜻)'라고 불리며 아들의 사인 규명과 함께 병영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타이완 국방부를 찾아가 항의할 때마다 수갑이 채워진 채로 끌려나오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미친 여자'란 말이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후앙마마는 미인가 단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국방장관의 외부 행사마다 쫓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군에서 의문사를 당한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을 모아 '군중인권촉진회'를 만들어 힘을 모았다. 이러길 5년, 마침내 그 끈질긴 활동은 작은 결실을 맺었다. 1999년 9월 타이완 국방부가 첸씨를 장병들의 인권과 관련하여 국방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감독하는 권한을 가진 '관병권익보장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것이다(하지만 아들 후앙궈장의 사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타이완, '후앙마마'의 투쟁이 가져온 병영문화 개선
그가 활동하는 군중인권촉진회는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에게 인권촉진카드를 나눠준다. 이 카드에는 상관이나 선임병으로부터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당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되어 있다. 또 후앙마마의 전화번호는 대만의 각 부대 막사에 헌병대 등 폭행사건 처리를 담당하는 군의 공식기구의 전화번호와 함께 나란히 붙어 있다. 타이완 국방부는 아예 이런 사건 처리를 위해 군중인권촉진회와 바로 연결되는 직통전화까지 설치했다. 여기에는 첸씨를 '훼방꾼', '상습민원 제기자' 정도로 여기던 타이완 군 당국의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첸씨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군이 사망 사건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 대만 군내 사망자는 1995년 408명, 1999년 270여 명, 2002년 200명 등으로 꾸준히 줄었고 현재는 100여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 폭력을 근절하려는 이런 노력과 함께 타이완 군의 사망률이 낮아진 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쫓겨 온 이래 타이완은 90년대 중반까지 2000여만 명의 인구로 한국군에 조금 못 미치는 60만 명의 대군을 유지해온 병영국가였다. 군 인권 문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어서 매일 한, 두 명 꼴의 사망자가 군에서 발생했다. 경직되고 방만한 군 조직 탓에 군의 자살률이 사회의 3~5배에 이르고 군 의문사도 자주 발생해 결과적으로 군대의 질적 하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타이완 군은 2000년대 초 단계적으로 병력을 60만에서 45만 이하로 감축하는 대대적인 감군을 실현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과의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활성화, 자유로운 왕래 등으로 인한 양안관계 개선이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12억 인구의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타이완이 병력 수보다는 장비를 현대화하는 것이 국방력 향상에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타이완이 도입한 대체복무, 현역 병사의 복무 여건도 개선시켜
감군은 병사의 복무 기간 단축뿐 아니라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가능케 했다. 타이완 병역제도에서 신체 등급은 현역, 체대역, 면제로 나뉘는데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대체복무를 원하는 사람은 체대역을 신청할 수 있다.
사회치안, 사회복지, 의료, 교육 등 민간 분야에서 근무하는 대체복무자의 경우 현역 병사(1년)에 비해 복무기간이 두 배 정도 길다.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 체대역 복무 지원을 할 경우에는 2년, 체대역으로 분류된 사람이 체대역 복무를 할 경우에는 1년 10개월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 같이 종교 등의 사유로 징집입영을 거부하고, 체대역으로 복무를 할 경우에는 2년 2개월을 복무해야 한다.
대체복무제 시행 초기에는 병역기피 풍조 확산과 안보위협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대체복무의 강도가 세고 기간도 길기 때문에 봉사분야 편중 외에 별다른 부작용 없이 복지환경과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또 대체복무제는 현역 병사의 복무여건을 개선하고 일선 지휘관들의 지휘부담도 줄여주는 효과도 가져왔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의 첸신민 교수는 군대와 대체복무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현역으로 온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여 복무하기 때문에 군대 생활에 더 잘 적응하게 되고, 군대 역시 통제가 용이해짐에 따라 구타 등 폭력 사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타이완의 대체복무제 실태를 조사했던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 "현역 복무부적격자들이나 신체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체복무로 걸러질 뿐 아니라, 일단 대체복무와 현역 중에서 일정한 선택의 기회를 준 뒤 현역에 응한 사람들만으로 군을 운용하다 보니 사병들의 복무적응도도 크게 향상되었다"며 "그 결과 군에서도 자살, 의문사, 각종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퇴행적 행태 보인 MB의 국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