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길동무와 함께하는 500리'길 동행취재

홍길동의 본거지, 둘레길 탐방에 시민들과 동참

등록 2011.07.26 16:48수정 2011.07.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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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주시 의당면 정안천 자연학습장 부근을 지나고 있다.

공주시 의당면 정안천 자연학습장 부근을 지나고 있다. ⓒ 김종술


사람들이 서서히 '느림의 미학'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만 보며 달리기에 급급했다. 발전과 개발지향적인 면만을 추구하고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는 일에는 인색해하며 사치라고 여겨왔다. 경제발전과 함께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자기 자신과 주변까지 돌아보는 변화와 더불어 잊혀졌던 길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총알처럼 질주하는 고속도로가 아닌 자신의 신체로 땅을 딛고 바람과 공기, 주변의 꽃 향기를 맡으며 가족들과 친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공주시가 역사와 전례가 있는 테마 길을 발굴하고자 가칭 '길동무와 함께하는 500리'길을 답사 길에 올랐다.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이어지는 이번 답사 길에는 이준원 공주시장과 이충열 공주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해 공무원과 일반참가자 등 30여명이 참여했으며 첫째 날은 '무성산 홍길동'길에 동행하여 취재를 해 보았다.


a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서 정안면 오인리 길가에 코스모스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서 정안면 오인리 길가에 코스모스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 김종술


오전 8시 15분경 금강둔치공원을 출발한 답사팀은 정안천변을 따라 전형적인 농경지 논뚝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다가 길가에 나와 있던 뱀 한 마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면서 뱀도 놀라고 사람도 놀라서 깔깔깔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인리 석송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시원한 수박이 준비되어 있어 목을 축이고 잠시 쉬다가 일행들은 다시 길을 나섰다.

양옆으로 펼쳐진 논과 밭에서는 김을 매는지 구부정한 모습의 어르신의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걷다보니 다리가 저려 와서 고성 궁월교 다리에 잠시 몸을 맡겼다. 그 틈을 타서 이준원 시장의 핸드폰 카메라 후레쉬가 터진다. 이 시장은 "어릴적 사진 찍는 걸 좋아 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카메라가 집엔 없어 못해보았다. 요즘 나온 스마트폰은 기능이 다양하고 좋다"며 그 자리에서 내 모습을 찍어 즉석에서 전송해줘 뜻하지 않던 사진 선물을 받은 나는 기분이 좋았다.

다시 출발. 이준원 시장과 전승태 정안농협조합장과 함께 걸으면서 나는 "고성리 가는 길이 협소해서 확장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 시장은 "시에서는 도로를 넓히기 위해 주민들과 협의를 하고 있으나 땅값을 터무니없게 요구하는 사람들과 20여 평의 땅이 필요한데 몇 천평의 땅을 몽땅 수용하라는 분들이 있어 쉽지가 않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쌍달리 갈림길에서 선두 그룹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일행도 잠시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가방에 넣어두었던 물을 꺼내 한 모금을 마셨다. 그야말로 꿀맛이다. 모여 있는 길에 사진 한장을 찍기로 했다. 작은 사람은 앞줄이란 소리에 키 작은 나는 객기부리듯 뒷자리에 떡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쯤이야하며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답사 길이 힘에 부쳤다. 다리는 아프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발을 끌다시피 해서 점심식사가 준비된 마을회관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a  쌍달리 마을은 농촌 체험마을로 옛길따라 걷기, 개똥벌레관찰장, 습지체험장 등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쌍달리 마을은 농촌 체험마을로 옛길따라 걷기, 개똥벌레관찰장, 습지체험장 등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 김종술


최근 장맛비가 내려서인지 개울물이 맑아 뛰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유혹하지만 꿋꿋하게 참고 도착한 마을회관에는 박수현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한껏 반겨주었다. 박 위원장은 계곡물에 머리를 적시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서는 호스를 머리에 대주었다. 등목을 하라는 유혹을 겨우 참고 쌍달리 주민들이 준비해주신 묵밥을 한 그릇 게 눈 감추듯 먹고는 맛있어 보이는 열무김치에 박기영 의원이 얻어온 고추장을 넣고 밥 한 그릇을 쓱쓱 비벼 그 마저도 뚝딱 비우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느긋하게 잠시 쉬고 있던 일행들은 마귀할멈 같은 인솔자의 재촉에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을 떼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많이 다닌다는 길이라는데 얼마나 가파르던지 죽을 힘을 다해 걸어갔다. 좀 전 동네분이 말씀하시던 "산에 오르면 시원할 것이다"라는 말씀에 기대를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 일행은 가파른 산길을 캑캑거리며 쉬엄쉬엄 걸었다.


홍길동이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산성을 쌓고 실제로 홍길동이 은거했다는 무성산은 마치 한 마리의 누에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산이다. 정상에 도착하여 정자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짚차 한 대가 다가와 섰다. 차 문이 열리며 이재권 도시과장이 피자를 들고 내렸다. 앗싸! 우리 것이었다. 피자를 건네자 우리 일행들은 "웬 피자?"하고 놀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조각씩 나누어 먹으면서 얘기꽃을 피운다.

a  오전 걷기에 참가자들이 쌍달리 갈림길에 세워진 장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전 걷기에 참가자들이 쌍달리 갈림길에 세워진 장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김종술


"힘들다"며 "군인들도 이런 강행군을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소리가 내리막길에서는 누구하나 투정부리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길을 내려간다. 길가에 수줍게 숨어 있던 산딸기가 나를 유혹한다. 상큼하고 달콤한 맛에 몇 알을 김동일 의원에게 건네니 "맛있네요"라며 산딸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산딸기가 몸에 좋다더라", "많이 먹으면 사고 친다더라", "잠을 못잖다더라",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든다. 어느 순간에 한바탕 큰 웃음이 산 가득 펴졌다.

산길을 돌아 돌아 내려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나를 반긴다. 사곡면 월가리에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주민들과 자주 만난 투쟁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 주민들이었다. "집에 잠시 들러 칡즙 한잔 마시고 가라"는 말씀에 발길을 돌려 따라갔다. 대형 냉장고 문이 열리니 시원한 바람이 내 온몸을 호강시켜준다. "아 저 냉장고 속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을 억지로 떨쳐버리고 시원한 칡즙 한잔을 마시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본다.

마지막 산길을 돌아 마곡사에서 정안으로 향하는 월가리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다들 반갑고 정겨운 얼굴들이다. 우리가 온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월가리, 유룡리 주민들이 수박, 막걸리, 감자, 옥수수를 내온다. 내 생전 지금까지 먹어 본 감자 중에 이렇게 맛있는 감자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지금 생각해 보면 또 먹고 싶어진다).

이젠 다리도 완전히 풀리고 몸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가야한다고 또 재촉한다. 아주 밉지만 어쩌랴 가야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민들이 다 같이 걷는다고 따라나섰다. 조금은 위안이 된다. 표고 농사를 짓고 있는 유룡리 이장님이 옆으로 다가 오더니 "언제 삼겹살 좀 사들고 와서 표고랑 같이 구워먹자"고 유혹한다(히히 나중에 꼭 가야지.)

이장님의 유혹 때문인지 갑자기 표고버섯이 먹고 싶어져 입안에 잔뜩 침이 고인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데 권재덕 공주소리 보존회회장이 슬며시 오더니 "공주문화원에서 공연을 했는데, 다른 데는 안 와도 <백제신문>은 꼭 올거라 생각했는데 안 왔대?"라며 서운한 마음을 내 비친다.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라고 변명을 하면서도 미안한 생각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앞에 마곡사 정류장이 보이면서 공주시청 버스가 반갑게 내 시야에 들어온다. "와 고생 끝이다"란 생각에 걸음이 빨라진다. 일행 모두가 버스에 올라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취해 있을 때 동해리 고개에 버스가 멈춰섰다. 다들 내리란다. 300미터 정도는 걸어서 가자는 말에 "난 못 가"라며 나는 차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둘 눈치를 보더니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힘이 들어서인지 억울해서 인지 내 입은 쭈~욱 나와 있었다. 동해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자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게다가 삼겹살을 굽고 막걸리를 내오신다. 술을 못 마시는 나도 한잔 마셔보았다. 목젖을 타고 흐르는 막걸리가 꿀맛이다. 상추쌈에 싸먹은 삼겹살은 오늘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맛있었다. 주민들이 제공한 음식으로 허기졌던 배를 채우고 나니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되어 갔다. 일행 일부는 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다시 답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 이상 일행들과 함께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지만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르르 피곤함이 몰려온다.

최근 들어 '슬로우 시티'는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 나는 음식과,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고, 자유로운 옛날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운동이 대세인 가운데 내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 보니 금강둔치 → 어린이자연학습 경유-요룡리 마을 → 오인리 → 석송, 북계리 교량 → 궁월교 → 고성, 쌍달리 갈림길 → 쌍달리 마을회관 → 무성산 고개 → 월가리 마을 → 회학리 마을 경유 → 마곡사 장승마을 → 마곡사 경내 경유 → 명상의 길 →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 부곡 삼거리 → 부곡리 마을회관 → 동해리 마을회관. '길동무와 함께하는 500리길' 첫날 36km를 걸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공주시에서 발행하는 <백제신문>에도 동일하게 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충남 공주시에서 발행하는 <백제신문>에도 동일하게 게재됩니다.
#공주시 #500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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