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여, 만남의 기회를 미뤘었다.
인연이 이제야 닿았을까. 드디어 지난 15일, 광복절 아침에 경남 남해 보리암을 만났을 수 있었다.
사실, 남해는 내가 사는 여수와 가까운 거리다. 배로 30여 분이면 닿을 수 있고, 육지로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남해의 다른 곳은 몇 번이나 갔는데 유독 보리암만은 만남이 어려웠다. 그러니까 남해 금산 보리암에 안기기까지 4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마~하~반~야~…."
거의 반 백 년 만에 얽힌 묘한 인연일까. 보리암과 상견례는 가족들과 함께 했다. 세상사 인연이라지만 절집은 공덕이 쌓여야 가능한 인연. 왠지 이제야 세상에 태어난 업보를 지운 느낌이다.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보리암과 하나 되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보리암 가는 길은 서늘했다. 보리암 오르는 길은 가파랐다. 쉬 오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꾸역꾸역 올랐다. 땀이 주르르 흘렀다. 공덕을 쌓는 것이라 여겼다.
보리암 가는 길은 여유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그저 마음의 여유랄까, 그 길에서 난 나그네일 뿐이었다. 보리암은 구름 속에 있었다. 속세의 고통을 짊어진 중생을 표현하는 듯했다.
'똑~똑~똑~똑~'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가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난 보리암과 하나가 되었다.
자연 속에 절집을 넣은 듯 아기자기한 '보리암'
보리암은 바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정원이 인위적이라면, 한국 정원은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정원이라고 한다. 보리암은 자연과 어울리는 한국의 정원을 산중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른 절집이 편평한 곳에 자리해 밋밋한 맛이라면 보리암은 자연 속에 절집을 넣은 듯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나 보다. 기도도량 보리암은 자연 뿐 아니라 사람까지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툭 트인 시야를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당초 생각했다. 한 번의 인연으로 보리암을 알 것이란 믿음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가슴에 넣었나 보다. 앞으로 맺을 보리암과 인연이 기대되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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