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라운드> 표지'고어라운드'는 착륙을 시도하던 항공기가 위기를 피하기 위해 궤도를 수정해 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말한다.
라이온스북스
열혈청년 이승환은 화를 내면서 <고 어라운드>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청년세대에게 불어닥친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나아가 청년들이 꿈꿔야 할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는 88만원세대의 제2라운드는 이제 시작이라고 외친다.
우석훈의 <88만원세대>를 필두로 무수히 많은 청년담론 책들이 팔려나갔다. 가히 청년카운셀링 열풍이라 할 만하다. 한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1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절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바라본 청년세대의 문제점 진단에 불과했고, 어설픈 위로를 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한계가 드러나 있었다.
이에 반해 <고 어라운드>는 청년이 쓴 사회담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지독한 현실은 여태껏 출판된 책들의 기성의 저자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보다 더 뜨겁고 더 날카롭게 가슴 한구석을 큰 고통으로 후벼 판다.
저자는 시대를 점검하며 물질적인 부가 곧 행복이라는 공식은 사회체제의 세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 또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5%만이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임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기성세대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청년세대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갖가지의 기준과 자격증을 만들어 장사한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의 토익점수가 성실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모든 지원자가 성실했는지 토익이 변별력이 떨어지자 '토익스피킹' 열풍이 불고 있다.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영어를 잘 말하게 될 때에는 '토익라이팅'이 떠오를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해질수록 행복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또다시 얼토당토않은 여러 가지 조건을 더 만들어내고, 다시 청년들은 거기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을 부수기 위한 잠재성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청년들은 100:1은 기본, 심지어 1000: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생존티켓을 따기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 앉아 토익 책을 편다. 그들은 스펙에 미치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열의를 불태운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스펙을 이긴다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단기인턴, 국토대장정, 해외봉사활동 등을 하며 기업에 열정적으로 충성하고, 열렬하게 구애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만큼은 바늘구멍을 통과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 곁에 두고 싶은 긍정적인 사람이자 훌륭한 인재의 자격을 얻는다.
<고 어라운드>는 이렇듯 기존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청년세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 세대는 무엇을 했다고 할 것인지 묻고 있다. 바로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멍청한 열정가"기존의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먼저 순응주의를 버리라 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지"라는 말은 문제 제기와 해결을 막아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라 지적한다. 우리가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의 장벽을 우리 세대가 힘을 모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지금까지 진보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동력은 타협에 등 돌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미 시장지상주의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주류에 저항하는 반기업적 태도를 혐오한다. 뿐만 아니라 투사와 활동가들이 모여 저항하는 단체를 친북좌빨로 매도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어버린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듣기 싫으면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 삼성맨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친구와 삼성맨을 부러워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자본을 비판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당장 밥을 먹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친구 앞에서 사회 구조가 어떻고, 청년세대가 어떻고 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설득은커녕 성향을 숨기며 적당히 맞장구쳐주기에 급급하다. 이런 침묵의 나선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불편한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지표가 다시 상승한다 해도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얼굴을 땅속에 처박은 채 가장 얌전한 사냥감이 되어주는 타조의 모습은 근거 없는 낙관 속으로 도피하는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냉소주의야 말로 우리들의 심장을 갉아 먹는 세 치 혀라고 말한다. 냉소주의자들의 특징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며 이들은 뭔가를 바꿔보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의욕을 잃게 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도, 잘 안 될 때마다 "그것 봐, 안 되는 거라니까"라고 비웃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건국 이래 몇 백 번은 냉소주의의 수렁에 빠질 수 있었음에도 기적처럼 희망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똑똑한 냉소주의자들이 아니라 멍청한 열정가"라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