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하고 있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제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다면 광화문과 강남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겠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보통 생산 전력의 1/3만을 사용하고 나머지 2/3은 폐열로 처리합니다.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울산 등 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전력사용량이 많은 서울에 원전을 세워 발전의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원관 중강당에서 열린 '원자력과 민주주의' 강연회에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던진 말이다. '원자력체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연설한 김 발행인은 서울 같은 대도시의 번영을 위해 지방을 희생시키고 있는 현실을 재치 있는 입담으로 꼬집으며 시종일관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열렬하게 호응했다.
"핵발전소에서는 평소에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발전소 근처에서 오래 산 부부들은 아기를 갖기 어렵습니다. 도시에 발전소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도시는 지방의 희생을 통해 전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처럼 원자력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배가 터질 것 같지만 배설할 곳 없는 핵폐기물 서울에는 이제 곧 폐쇄될 예정인 당인리 발전소 등을 제외하면 거의 발전소가 없다.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도시가 전력을 거의 생산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신 멀리 떨어진 고리, 영광, 울진, 영광, 월성 등에 위치한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와 쓰고 있다.
김 발행인에 따르면 원전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도 원전 주변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방사능 피해를 입고 있다. '방사능공중보건프로젝트'라는 미국의 민간 환경문제 연구기관은 2000년 4월 보고서에서 원자로가 폐쇄된 뒤 주변 지역 유아들의 사망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87년에서 1997년까지 폐쇄된 미국의 7개 핵발전소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반경 80km 이내에 살고 있던 생후 한 살까지의 유아 사망률을 조사했다. 1997년 미시건주 빅록포인트 발전소가 폐쇄된 이후 주변 지역의 유아 사망률은 54.1퍼센트나 줄었다. 이는 암, 백혈병, 이상출산 등 방사능 오염 피해로 여겨지는 질병 원인이 제거됐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김 발행인은 "원자력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원전은 하청·재하청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쓰고 버리며, 민심을 황폐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핵발전소의 위험 구역에 투입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점잖게 나와서 성명서를 읽으며 유감을 표하는 이들입니까? 아닙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사례로 보면) 주로 하청·재하청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고농도 방사능 피폭위험이 상존하는 곳에서 작업을 합니다. 원자로 융해나 연료봉 폭발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작업에 매달려 있는 현장 작업자들은 최하층 노동자들입니다."
김 발행인은 얼마 전 일본 언론에서 사고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를 인터뷰한 예를 들었다. 일본 정부를 그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했지만 노동자는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살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하층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원전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원전 중심의 전력 생산은 현 세대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를 재난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핵폐기물을 치울 곳이 없습니다. 현재의 원전은 일단 밥은 먹었는데, 쌀 곳이 없어서 얼굴이 빨개져 있는 모양새입니다. 수십만 년이라는, 인간에게는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핵폐기물의 방사능이 소멸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과 장소가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핵발전소는 핵폐기물을 버릴 곳을 찾지 못한 채 발전소 부지 내에 핵폐기물을 엉거주춤 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김 발행인은 바다로 배출되는 원전의 온배수(냉각수로 사용된 뒤 버려지는 따뜻한 물)도 바다속에서 바로 확산되지 않고 '핫스포트'란 열덩어리가 되어 대륙붕의 생물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궁극적으로 해양생태계 전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