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약국은 국민과 가장 가까이, 또 국민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편의시설이다.
주현아
'우연히 한 약국에 들른 최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 심한 장염을 앓고 있는 최씨와 달리 김씨는 가벼운 편도선염 때문에 약국을 찾았다. 병세가 상이한 만큼 두 사람이 처방 받은 가루약 역시 전혀 다른 종류의 약제였다. 허나 나중에 조제 받은 김씨의 가루약엔 최씨의 장염약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쇄기를 사용 직후 세척하지 않는 오랜 관행 때문이다.'
'위 이야기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상으로 설정해 본 것이다.
최근 약국에서는 약절구 대신 분쇄기계를 사용한다. 손으로 갈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줄이고 조제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탓에 조제 후 잔여약을 털어내는 일이 훨씬 번거로워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가루약엔 수분이 절대 들어가선 안 되기 때문에 분쇄기를 세척할 때는 건조까지 철저하게 마쳐야 한다"며 "환자들의 대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병세에 따라, 처방되는 약이 상이한 만큼 잔여약 혼용은 제2, 제3의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약 때문이란 의심이 생겨도 환자 개인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환자들 대부분은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급받지 않고, 또 처방받은 약 성분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약을 곱게 갈았으니, 약의 크기나 색깔, 약에 새겨진 글씨 등으로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부작용은 특히 가루약 사용이 절대적인 소아 환자에게 심각하게 나타난다. 소아들은 성인에 비해 약물 반응이 민감한 탓이다.
가루약, 꼭 먹어야 하나요?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약을 원형 그대로 먹는 것이다.
'양현정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는 "약은 식도를 통과해 위벽에 닿을 때까지 각각의 단계에 걸리는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 생산한 화학구조물"이라고 말했다. 알약을 자르거나 부수면 이 화학구조가 깨져 약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며 약효가 한꺼번에 흡수돼 위경련 등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도 높아지는 것이다. 알약을 코팅하거나, 가루 형태로 복용해야 하는 약은 캡슐로 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알약을 코팅하거나, 가루 형태로 복용해야 하는 약은 캡슐로 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같은 약일지라도, 용량이 다른 약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인과 소아가 같이 복용할 수 있는 약은 함량이 적은 양으로도 함께 생산된다. 문제는 이렇게 용량이 다양한 약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많이 사용되는 약을 데이터로 뽑아 용량을 다양화한다면 가루약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도 최소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가루약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다양한 용량의 약제가 나와야 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알약을 먹을 수 없는 경우다. 알약을 삼키기 곤란한 성인중증환자나 소아 환자에겐 불가피하게 가루약이 처방되곤 한다. 시럽이 알약을 대신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수가 한정돼 현실성이 떨어진다.
높은 가격도 문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시럽을 대체 사용할 경우 약값 상승 초래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가루약의 대체제를 사용할 경우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에 따라 '자기 건강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가루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알약보다 낮은 효과, 복용과정에서의 부작용 등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가루약 사용을 당장 줄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몇몇 환자들에겐 가루약에 대한 거부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분쇄기 혼용 문제만이라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거 별 수 있나, 약사 양반을 그냥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