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가루약은 먹지 마라, 위험하다

세척 없이 가루약 분쇄기 혼용하는 약국들...잔여약 부작용은 어떻게?

등록 2011.10.21 14:46수정 2011.10.2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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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약국은 국민과 가장 가까이, 또 국민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편의시설이다. ⓒ 주현아


'우연히 한 약국에 들른 최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 심한 장염을 앓고 있는 최씨와 달리 김씨는 가벼운 편도선염 때문에 약국을 찾았다. 병세가 상이한 만큼 두 사람이 처방 받은 가루약 역시 전혀 다른 종류의 약제였다. 허나 나중에 조제 받은 김씨의 가루약엔 최씨의 장염약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쇄기를 사용 직후 세척하지 않는 오랜 관행 때문이다.'

'위 이야기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상으로 설정해 본 것이다.

최근 약국에서는 약절구 대신 분쇄기계를 사용한다. 손으로 갈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줄이고 조제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탓에 조제 후 잔여약을 털어내는 일이 훨씬 번거로워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가루약엔 수분이 절대 들어가선 안 되기 때문에 분쇄기를 세척할 때는 건조까지 철저하게 마쳐야 한다"며 "환자들의 대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병세에 따라, 처방되는 약이 상이한 만큼 잔여약 혼용은 제2, 제3의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약 때문이란 의심이 생겨도 환자 개인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환자들 대부분은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급받지 않고, 또 처방받은 약 성분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약을 곱게 갈았으니, 약의 크기나 색깔, 약에 새겨진 글씨 등으로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부작용은 특히 가루약 사용이 절대적인 소아 환자에게 심각하게 나타난다. 소아들은 성인에 비해 약물 반응이 민감한 탓이다.

가루약, 꼭 먹어야 하나요?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약을 원형 그대로 먹는 것이다.

'양현정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는 "약은 식도를 통과해 위벽에 닿을 때까지 각각의 단계에 걸리는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 생산한 화학구조물"이라고 말했다. 알약을 자르거나 부수면 이 화학구조가 깨져 약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며 약효가 한꺼번에 흡수돼 위경련 등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도 높아지는 것이다. 알약을 코팅하거나, 가루 형태로 복용해야 하는 약은 캡슐로 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알약을 코팅하거나, 가루 형태로 복용해야 하는 약은 캡슐로 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같은 약일지라도, 용량이 다른 약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인과 소아가 같이 복용할 수 있는 약은 함량이 적은 양으로도 함께 생산된다. 문제는 이렇게 용량이 다양한 약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많이 사용되는 약을 데이터로 뽑아 용량을 다양화한다면 가루약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도 최소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가루약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다양한 용량의 약제가 나와야 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알약을 먹을 수 없는 경우다. 알약을 삼키기 곤란한 성인중증환자나 소아 환자에겐 불가피하게 가루약이 처방되곤 한다. 시럽이 알약을 대신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수가 한정돼 현실성이 떨어진다.

높은 가격도 문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시럽을 대체 사용할 경우 약값 상승 초래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가루약의 대체제를 사용할 경우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에 따라 '자기 건강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가루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알약보다 낮은 효과, 복용과정에서의 부작용 등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가루약 사용을 당장 줄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몇몇 환자들에겐 가루약에 대한 거부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분쇄기 혼용 문제만이라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거 별 수 있나, 약사 양반을 그냥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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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조제환경 설문조사 2010년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설문조사 결과


지난해 11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 53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할 결과, "약사가 돈과 컴퓨터 자판을 만진 손으로 조제실에서 약 짓는 것을 얼마나 경험했습니까?"란 질문에 응답자 중 90%가 목격했다고 답변했다. "약사의 맨손 조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라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309명(58%)이 '비위생적이라 몹시 불쾌했다'고 답변했다. 환자 대부분이 약국 위생 및 청결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설문 이후 조제실 청결은 얼마만큼 논의가 됐을까? 당시 환자단체연합회는 대한약사회와 클린 조제실을 위해 간담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지금, 대한약사회 최헌수 팀장은 "클린 조제를 위해 내부지침 등을 일선에 내렸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지만 약사 연수 정도로 약국관리와 관련해 내용이 추가된 건 있다"며 "대한약사회에서 이런 내용과 관련해 강연을 열었단 보고를 들은 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선 약국을 취재한 결과는 이들의 주장과 약간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전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국에 가맹점을 두고 있는 한 약국체인본사에도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대한약사회나 보건복지부로부터 조제실 청결에 관한 공문을 받았다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현재 환자 개인이 조제 환경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산지역 43곳 약국을 알아봤지만, 조제실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약국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마저도 약재에 가려 제대로 된 확인이 불가능했다. 취재 중 만난 이종란(80)씨는 분쇄기 혼용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거 별수 있나. 약사 양반을 그냥 믿어야지." 그렇다. 안타깝게도 지금 상황에서 환자에겐 약사를 믿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환자가 약국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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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19 불만제로 캡쳐 이날 방송에선 투약병, 분쇄기 등 약국의 위생상태를 지적했다. ⓒ MBC


조제약을 개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조제실엔 약 2500개 상당의 약재가 구비되는데 전면을 개방할 경우 약재 진열에 문제가 생긴다. 약사 개인의 업무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약국의 특성상 약사는 영업시간 내내 약국을 벗어나지 못 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약사 개인 공간이 하나쯤 필요하지 않느냐는 게 약사들의 변이다.

하지만 환자의 불안감도 무시할 순 없다. 결국, 조제과정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조금 덜 갈리더라도 청소가 용이한 분쇄기를 사용하거나 매번 청소, 혹은 몇 번 이상 사용 시 반드시 청소 등의 규칙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약의 성분에 따라 분쇄기를 달리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수약국 인증마크제'처럼 환자가 안심할 수 있는 담보장치가 있어야 한다. 환자단체연합회는 2010년 설문조사 말미에 "위생적으로 약을 지어주는 약국에 우수약국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안에 찬성하십니까?"란 질문을 환자들에게 던졌다. 이에 470명(88%)이 '매우 찬성한다'고 답변했고 44명(8%)이 '약간 찬성한다' 15명(3%)이 '그저 그렇다' 5명(1%)이 '찬성 안 한다'고 각각 답변했다. 이를 통해 의약품 조제환경이 우수한 약국에 대한 인증표식의 필요성을 환자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약국외 일반의약품 판매, 일명 '슈퍼 판매'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약물의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성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도 환자들은 분쇄기 혼용이란 위험에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돼 있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먼저 처리하는 것이 일의 순서 아닐까? 약국과 대한약사회의 자정노력과 정부의 감시시스템 마련을 통해 환자로부터 신뢰받는 약국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주현아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인턴활동가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주현아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인턴활동가입니다.
#불만제로 #조제실 위생 #약국 #가루약 #가루약 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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