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은 지난 1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이냐 정수재단이냐. 박근혜 의원은 선택하라”는 내용으로 1인시위를 벌였다.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이런 맥락에서 <부산일보>가 전국언론노조 총파업 돌입 하루 전 '신문발행 중단'이란 카드를 꺼낸 것은 의미가 크다. <부산일보>의 최근 사태는 왜곡된 권력에 의해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번 언론 총파업 의제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전국언론노조는 총파업 선언에 앞서 언론자유와 독립성을 훼손하고, 언론시장을 파괴시킨 권력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부산일보> 노조가 지난 17일 상경 투쟁을 벌이면서까지 치부를 외부에 밝힌 것은 '더 이상 권력이 언론에 위협적이거나 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강하게 전달한 것이다. <부산일보> 노조는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향해 "대통령 선거에 나설 뜻이 있다면 정수재단을 명실상부하게 사회에 환원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또 "자신의 비서관을 이사장으로 앉히고 소유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박 의원이 평소 강조하는 신뢰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앞에서는 번듯하게 말하고, 뒤에서는 집착하는 두 얼굴의 지도자는 대선에서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가 내년 총·대선 등을 앞두고 언론의 공정성 확보를 전면에 내세우며 박 의원을 상대로 정수재단의 실질적 사회 환원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은 아직도 사주의 방파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지역신문 종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일보> 노조의 이 같은 요구의 배경은 해방 직후인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일보>는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 소유였다. 김씨는 1946년 9월 10일 창간한 <부산일보>를 1949년 인수해 판형을 대판으로 확대하는 등 신문사의 외형을 키웠고, 1959년에는 한국 최초의 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까지 인수해 부산일보 - 부산문화방송 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 세력은 김씨를 부정축재자로 몰아 부일장학회 소유의 땅 10만여 평과 부산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를 빼앗아갔다. 그후 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82년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 자씩 따 현재의 재단법인 '정수장학회'가 됐다.
"노조위원장 해고, 편집국장 징계위 회부, 명분·절차적 정당성 상실... 무효"그후 <부산일보>는 1988년 노동조합의 끈질긴 투쟁으로 편집국장 추천제를 쟁취해 편집권 독립을 확보했지만, 지분 100%를 소유한 정수장학회(이사장 최필립)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다. 즉 정수장학회의 일방적인 사장 선임과 그리고 사장을 통한 편집권 개입 문제가 정치적인 주요 사안이 터질 때 마다 논란이 돼 왔던 것이다.
30일 자 <부산일보>에 노조위원장과 편집국장의 징계와 관련된 내부 노사갈등 기사가 실렸다는 이유로 사측이 일방적으로 신문 발행을 중단한 것도 오랫동안 깊게 파여온 내부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이 발행되지 않아 <부산일보> 독자들은 이날 석간 신문을 받아보지 못했고, 문제의 기사가 올려진 <부산일보> 누리집(
www.busan.com)도 오후 들어 폐쇄돼 기사에 대한 접근이 완전히 봉쇄됐다. 그동안 독자와 지역민들에게 쌓아왔던 신뢰에 금이 간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노사 갈등과 대립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편집국은 30일 오전 전날 발생한 이호진 노조위원장 해고 사태와 이정호 편집국장 징계위 회부 건을 묶어 '부산일보 사측 징계 남발, 노사 갈등 격화' 등 기사 두 꼭지를 게재한 30일자 신문 편집을 끝낸 후, 오전 11시 초판을 인쇄할 예정이었지만 사측이 제동을 걸었다. 노조와 편집국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긴 기사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측은 "지난 주 노조의 상경투쟁 기사 게재에 이어, 발행인 지시를 어기는 일방적인 기사 게재가 계속 되고 있다"며 "이것은 편집권 독립이 아니라 편집국장 독단이기 때문에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부 종사자들 간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앙금이 그동안 쌓여 왔던 것이라서 그리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노조 측은 "정수재단 사회 환원과 사장후보추천제 도입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사측이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편집국장을 징계위에 회부한 것은 사회적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무효"라며 "이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30일 오후 비상총회를 소집했다. 이호진 노조위원장은 "비판기사를 막기 위해 신문발행을 중단하는 언론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비상총회에서 조합원들의 뜻을 물어 제작거부 등 투쟁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신문발행 중단으로 번지면서 이 신문의 편집국장 징계 처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측이 이날 오전 징계위원회를 소집했지만 노조는 이를 저지했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사태에 중심에 서있는 이정호 편집국장이 국장직을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기자협회보>, "박근혜는 부산일보를 자유롭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