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벗은 '간첩' 누명...뒤틀린 그의 삶

[2011 국가보안법 ④] 조작된 간첩 사건의 희생자들

등록 2011.12.06 13:57수정 2011.12.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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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법률 제10호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여러 변천을 거쳐 올해로 63년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저지른 악행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역행한다는 비판은 치명적입니다. 심지어 미국 등 주요국들로부터 폐지권고를 받았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국가보안법긴급대응모임은 12월 1일을 맞아 'NO! 국가보안법, STOP! 국가보안법' 기치 아래 국가보안법 대응주간을 설정하고 12월 9일까지 연속 기고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그의 기록을 보면서 몇 번이나 힘들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어떠셨어요?" 라는 질문에 당혹스러울 만큼 "그냥 그랬죠 뭐…"라며 말씀하신다. 하지만 30년 전 고문으로, 6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보청기를 끼고 사람 많은 곳은 부러 피해 다니며 아직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으신 걸 보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때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지금의 국군기무사령부)에서 당한 고문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제 강점기 때 할아버지가 일본에 건너가 정착하시면서 재일교포로 태어난 그는, 민족과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유학 왔다. 가슴 한켠에는 공부를 마치면 일본에 돌아가 교포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도 품고 있었다. 그런데 1982년 11월, 국어국문학과 2학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보안사에서 난데없이 하숙집을 덮쳐 그를 연행하면서,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보안사는 물고문, 전기고문, 몽둥이를 무릎 사이에 끼우고 밟는 고문, 통닭구이와 함께 가해진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통해, 꿈을 품고 음악을 즐기며 친구들과 함께 일상을 즐기던 그를 간첩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떨어진 죄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북한에 동조하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지령을 받고 우리나라에 잠입하여 간첩행위를 하고,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하여 북한을 이롭게 하거나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할 목적으로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을 탐독하고 배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5년 8개월 복역 후 형집행정지로 출소), 일본에서는 재일동포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체류 자격도 박탈당하였다. 참고로, 일본 정부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본에 체류한 한인들에 대해서는 그 역사성을 고려하여, 체류 자격에서 다른 외국인들보다 더 많은 보호를 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30년 전 사건으로 모국인 한국에서는 간첩이라는 낙인으로 추방당했고, 태어나 자란 일본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30년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그에 대한 간첩조작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였고, 2010년 형사 재심법원도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법원이야 '그때 잘못 판결했소' 하면 그만이겠지만, 이 사건으로 뒤틀린 우리의 역사와 그의 삶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는가.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형틀'에 묶인 사람들

책상 위에는 아직 시작도 못한 사건이 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의 확산과 국제적 고립 등으로 외교적 위기에 처하자, 1975년 11월 22일 모국 유학을 가장한 재일동포 대규모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을 적발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재일교포 유학생 12명과 국내 대학생 9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그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하였다.


이 중 일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여,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고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았다"는 진상규명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가석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간, 책상 위 사건 속의 '그녀'에게는, 진상규명조차 버거운 일이다. 같은 사건으로 함께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끌려간 한 재일교포의 말에 의하면, 옆 방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녀였다고 한다.


그녀는,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후부터 가석방으로 일본에 돌아올 때까지 그 시간, 그 흔적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물리적으로 그의 외국인등록증에 그 기간의 흔적이 없다는 취지인지 또는 그의 기억 속에 그렇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전의 기억과 사건들을 끄집어내야 하는 진상규명 작업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선뜻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못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반독재 운동,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또는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들에 적용한 죄명이 대부분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국가보안법의 태생적 한계나 규정의 모호성 등을 볼 때, 이 법은 처음부터 그렇게 타고난 운명이었던 것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일부 조작사건 대해 진실규명을 하였으나,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 사건을 입에 담거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며 국가보안법의 형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1975년 그 시간에서 벗어나 진실을 이야기하고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상희(변호사)


덧붙이는 글 이상희(변호사)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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