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슈퍼모델 "여자는 발정난 짐승 아냐"

[서평] 여성 할례 문제점 꼬집은 와리스 디리의 <사막의 꽃>

등록 2011.12.14 17:44수정 2011.12.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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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꽃> 책표지
<사막의 꽃> 책표지섬앤섬
<사막의 꽃>(와리스 디리·캐틀린 밀러 저, 이다희 옮김, 섬앤섬 펴냄)은 실화를 담은 책으로 아프리카 사막의 유목민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과 유엔 인권대사가 되기까지의 삶과 꿈,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개척해 간 용기 있는 한 흑인여성의 남다른 삶을 만난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뿔이라 한다. 면적 63만7000km²(한반도의 약 3배)이고 수도는 모가디슈. 인구는 약 1000만 명이고 종교는 95% 이상이 수니파 이슬람교도라 한다. 이 소말리아 사막에서 유목을 하며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던 어린 소녀 와리스 디리는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을 나이 많은 어른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한 것을 알고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세계적인 모델이자 유엔 인권대사가 된 그녀는 도망쳐 나오던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한다. 집을 나와 사막을 헤매다 성폭행 당할 뻔한 사고를 당하고 이모집 언니네 집을 전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소말리아 외교관인 이모부를 따라 런던으로 간다.


이모네 집 가정부로 몇 년간 일하다 수년 후 소말리아로 다시 돌아가는 이모 가족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용감하게 런던에 홀로 남기로 결정한다. YMCA에서 지내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모델이 된다. 용기백배하고 도전적인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작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는 진취적인 여성이다. 결국 성공해 슈퍼모델 활동을 하던 중 유엔 특사로도 활동하게 된다.

4000년 동안 가해진 '여성 할례'... "나를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와 닿는 것은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4000년 동안 가해졌던 여성 할례 문제를 아프리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문제시 했다는 점이다. 관습에 따라 겨우 다섯 살 되었던 어느 날, '녹슨 칼날에 여린 몸을 내놓아야' 했던 소녀, 살점을 도려낸 상처는 핏자국과 고름으로 범벅이 되어 찢어지게 아팠고 여러 날, 여러 달 동안 밤낮으로 아파야 했던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흑인 여성들의 할례 이야기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어 충격을 준다.

남자들의 이기심과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해 낸 여성 할례를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4000년) 여자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해괴망측한 '전통'에 의해 할례를 당하는 여성들, 일 년에 200만 명, 하루에 6000명의 소녀들이 소위 '순결한 몸'으로 시집가기 위해 여린 살점을 난자당한다. 그러나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여성할례에 대한 언급이 없을뿐더러 그것은 종교적인 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와리스 디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들이 그저 자신이 여자가 되고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하는 것으로 할례를 받아들이고 기대하기까지 하며 또한 할례를 받은 후 후유증으로 죽거나 병들기도 하는 상황을 고발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할례를 받는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자인 엄마에겐 아무 결정권이 없다. 엄마는 그저 엄마가 했던 대로, 엄마의 엄마가 했던 대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이 내게 어떤 고통을 받게 했는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소말리아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거니까, 딸을 시집보내려면 으레 그러는 거려니 하는 정도였다… 두 분도 결국 수천 년 이어진 풍습을 전수받은 피해자일 뿐이다."


소말리아 유목민의 딸이었던 와리스 디리는 어느 날 세계적인 슈퍼모델 반열에 오르고 망설임 끝에 1997년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백하기에 이르는데 그녀는 자신의 증언으로 그 끔찍한 전통이 종식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뉴욕의 패션계를 누비는 것에 머물지 않고 고통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유엔'에서 특별대사의 직함을 수여받아 여성 성기 절제(FGM, female genital mutilation) 철폐운동에 헌신한다.

"이제는 우리도 알게 되었다. 예방주사만 맞으면 돌림병에 걸리지 않고, 그럼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들 또한 발정난 짐승이 아니고 미개한 풍습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이 모든 고통스런 풍습과 결별해야 할 때가 이르렀음을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소말리아 부족 간의 전쟁 역시 남성들의 자존심과 이기주의와 공격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여성 할례와 다를 게 없다고. 두 가지 다 남자들이 자신의 영역과 소유물에 집착해서 생긴 결과라고.

운명에 굴하지 않고 꿈을 위해 목숨이 위험한 탈출을 감행했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와리스 디리. 슈퍼모델 뿐 아니라 유엔의 친선대사가 되어 고통 받는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나선 드라마틱한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다.

"나의 목표는 아프리카의 여성을 돕는 것이다. 나는 여성이 강인해지는 걸 보고싶다. 그러나 FGM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무력하게 만든다. 여성은 아프리카의 뼈대이다. 거의 대부분의 일은 여성이 도맡아 한다. 그런 아프리카의 여성에게 어려서부터 칼질을 하고 평생 불구자로 살게 내버려두는 일이 없다면 여성은 정말 많은 일을 해내지 않겠는가."

와리스 디리는 자신의 성공에 우쭐해 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았다. 누가 그녀에게 유명해진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웃기만 했다고 한다. 단지 "유명하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나의 사고방식이 아프리카 식이며 영영 변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p350)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나고 자랐던 경험이 자신을 균형 있게 했다고 말한다.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유목민의 딸로서 그 땅에서 자란 경험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호화로운 집을 때로는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차, 보트,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더 많은 걸 원한다. 다음으로 구입할 것이 마침내 행복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 줄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은 인생 그 자체이고, 그 다음은 건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갖 하찮은 일에 안달하면서 귀중한 건강을 망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모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낀다."

그녀 자신과 부모, 그리고 부모의 부모 세대 대대로 이어져 온 악습이 사라지길 바라는 와리스의 소망이 와 닿는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다.

"나는 내가 태어날 때의 몸이 알라 신이 주신 완전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와서 나를 유린하고 내 힘을 빼앗아가더니 나를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다. 나의 여성성을 훔쳐간 것이다. 특정 부위가 없는 것이 알라 신의 뜻이라면 왜 만들어 놓으셨을까? 언젠가는 아무도 이런 고통을 겪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과거의 일부가 되길 바랄 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소말리아에서 여성 할례가 금지된 거 아니?' 그 다음엔 다른 국가, 그리고 또 다른 국가로 이어질 것이다. 전 세계가 여성에게 안전한 곳이 될 때까지. 그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날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인샬라, 하늘의 뜻대로 되리라."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섬앤섬, 2015


#여성할례 #사막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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