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저희들 사정 한 번이라도 귀담아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이광수
국립대 4학년입니다. 그러니 사립대 다니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등록금 걱정이 적지만 220만 원이나 되는 돈은 너무나 큰돈입니다. 아버지는 시장통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엄마는 보험 설계사라 벌이가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몰이 많고, 대형 마트가 있으니 재래시장에 있는 작은 가게는 다 고사 직전이랍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과연 버틸 수는 있을지....
지금까지 낸 등록금 여덟 번 가운데 다섯 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세 번은 알바를 해 모아서 냈습니다. 대학생활 전체를 알바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바는 수능 끝나고부터 시작해서 졸업을 코앞에 둔 지난달까지 했습니다. 정말 쉴 새 없이 했네요. 그렇게 해서 대출금 가운데 한 학기분은 완납했습니다. 아직도 네 번이나 남았습니다. 방학 때는 알바 '투잡'까지 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커피숍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호프집에서 일하는 게 투잡 알바입니다. 그래도 등록금 마련이 안 됩니다. 이러니 등록금, 정말 '미친 등록금' 아닙니까?
주변 친구들이 알바를 하면 사회 생활 폭이라도 넓어지니 그나마 얻은 것은 있겠다고 할 땐 억장이 무너집니다. 스쳐 지나가는 손님에게 무의미한 서빙하고, 매니저에게 닥달 당하면서 무슨 사회 생활 폭이 넓어지겠습니까?
교내에서 친구 선후배들과 이야기 하고,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게 사회 생활 폭 넓히는 겁니다. 알바는 돈 버는 거, 그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긴, 한 가지 있긴 하네요. 더럽고 치사한 거 참고 사는 거요. 그게 옳은 짓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정말 어처구니 없는 건요, 학교 과에서 학과 행사에 빠지면 '쓰리아웃'을 시켜 모든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겁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들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학생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니 어떻게 교수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누군 알바 하고 싶어서 하고, 학과 행사 참여하기 싫어서 참여 안 하나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요. 실제로 선배 언니가 알바 하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학점 4.45를 받았는데, 1등 장학금을 못 받았다네요. 그래서 악이 받치는 겁니다.
실제로 보면요, 집안이 곤란해서 알바 하면서 열심히 사는 아이들이 의식이 있습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저희 같은 아이들한테 뭐라 하는지 아세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너는 사회에 무슨 불만이 그리 많으냐"고 그래요. "왜 그렇게 인상만 쓰고 다니냐"고도 하고요. 그 아이들은 한미FTA 반대 투쟁은 물론이고, 반값 등록금 투쟁조차도 나서지 않아요. 하긴 나설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지만 제발 저희들 사정을 한 번이라도 귀담아 들어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학생들, 교수들 학교 당국 할 것 없이 모두요.
세상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