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로 맞서자<바보제>를 기획한 김영종 작가는 <너희들의 유토피아>에서 전문가들이 장악한 언론메커니즘에게 맞서기 위해선 유언비어, 헛소리, 노가리, 허풍, 우스개로 말의 아수라장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꼼수처럼.
최진섭
- <바보제>를 기획할 때 영향 받은 것은 무엇인가?"세계적인 신학자인 하비콕스가 쓴 <바보제>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보제>를 보면 바보를 왕으로 세운 뒤, 신분질서를 파괴하고 뒤엎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중세시대에 유행한 축제이기도 했다. 하비콕스는 광대 그리스도, 즉 디오니소스적 그리스도를 예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사회경제적 파괴를 넘어선 자연주의적 순환 지향- 연극 대본을 보면 쥐, FTA, 가카라는 정치적인 표현들이 등장한다. 바보는 현실 참여적 인간형이라 할 수 있나?"해학과 풍자를 즐기는 바보와 광대는 생리적으로 현실 비판적이다. 그런데 바보제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계급적인 변화와 파괴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적 순환을 지향한다. 진보세력도 이성, 역사주의 속에 매몰되어 있다고 본다.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 안의 저항인 것이다. 바보는 이를 넘어서는 근본적 저항을 추구한다."
- 바보주의가 지향하는 근본적 저항은 무엇인가?"바보주의는 역사 안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역사 밖을 지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철거민 투쟁할 때 적절한 보상을 중심에 둔다면 역사 안의 운동이고,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세계관, 이를테면 '집은 우주다'와 같은 생각에 기초해서 싸운다면 역사 밖의 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바보가 지향하는 사회는 무엇인가?"바보는 인본주의가 아닌 자연주의를 지향한다. 자연주의는 신학적으로는 애니미즘, 철학적으로는 영원한 순환을 바탕에 깔고 있다. 바보가 꿈꾸는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쁨이 넘치는 현재다. 나의 '오래된 미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회라 할 수 있다."
- 감성을 중시하는데, 바보주의의 바탕에 깔린 미학관은 무엇인가?"생명감을 중시하는 애니미즘적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애니미즘이란 정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이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원시신앙이다. 애니미즘 미학은 자아를 벗어나 타자와의 만남을 강조한다. 애니미즘적 예술에서는 타자 즉 만물 속에서 신을 만나고, 접신하는 것이 중요한데, 영화 <아바타>(2009)의 나비족들이 '영원한 나무'를 둘러싸고 제의를 벌이는 장면 속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작가의 저서 <너희들의 유토피아>에 대해 민중의 삶과 유리된 담론이고, 예술가 개인의 해방만을 지향한다, 자기 세계에 닫힌 자의 독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광대는 혼자 놀지 않는다. 내가 <헤이, 바보예찬>에서 썼듯이 바보는 혼자서 힘을 낼 수 없다. 초식동물처럼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맞서야 한다. 저잣거리 광장에서의 소통,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SNS의 역할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목적의식적인 조직운동보다는 자연사적인 형성에 의한 연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조중동 불매운동,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때의 소비자주권운동 같은 게 그런 예다."
나꼼수와 전복의 유언비어- 그런 세상을 이루는 데 <바보제>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나?"군사독재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언론은 세련된 '합리성의 메카니즘'을 통해 통제를 내면화하고, 자기검열을 일상화 하고 있다. 그리고 팩트, 사실, 논리를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 교육받은 사람들일수록 논문투의 문어체 말투를 쓴다. 생화가 아닌 조화 같고 표준화된 공산품처럼 느껴진다. 말이 살아 있어야 사회가 살아있다.
근거를 생산하는 전문가들한테 쫄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해야 말이 살아난다. 엘리트 전문가들은 그런 살아있는 말을 유언비어, 괴담이라고 억압한다. 현재성을 생명으로 하는 유언비어나 괴담은 세상을 뒤집는 헛소리다. 아니, 그런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헛소리가 합리성의 언론메커니즘을 상대로 비웃고, 농락하고, 꼬집고, 오리발 내밀고, 호언장담하면서 말의 축제를 벌여야 한다. 광대처럼. 바보제가 그런 축제의 불쏘시개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