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도왔는데... 두 차례 재판 모두 유죄
이집트 교민 김은주씨는 지난달 카이로 시내에서 현지인 반정부 시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 최초의 한국인이다. 이집트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한 타흐리르 광장 부근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던 그녀는 꾸준하고 성실한 경영으로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또한 종교색에 관계없이 평소에도 늘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었다.
지난 해 <카이로의 봄> 당시에도 그러했고 그 이후로도 다친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민주화투쟁을 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어린 대학생들이라는 사실에 가슴 아파했던 그녀는 자비를 털어 마스크와 빵을 배급하기도 했고,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지역에는 다른 현지 의료봉사자들과 함께 과감히 들어가 응급처치를 돕기도 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은 그녀의 주말 일과 중 하나였다.
체포 당일에도 그녀는 부상당한 시위자들을 돌보기 위해 자진하여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김은주 사건의 시작이었다.
주말을 맞는 타흐리르 광장은 그 분위기가 주중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변한다. 주말에 광장을 비롯한 카이로 시내와 전국 주요도시들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예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위를 주도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 정당들이 며칠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에 공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의 타흐리르는 긴장과 경계의지역이 된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들은 종종 차단되기 일쑤며 때로는 군대가, 때로는 경찰진압대가 무력을 행사하기 위해 투입되기도 한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지역경찰들은 물론 잠복해있던 비밀경찰들에게 선의야 어찌되었든 반정부 시위자들을 치료하는 그녀가 좋아보일 리 없었다. 그녀는 자칫 반정부시위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쓸 수도 있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두 차례의 재판에서 그녀는 유죄였다. 영국인 사진작가들과 미국인 NGO들의 수감까지, 그녀를 비롯하여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은 시기였다.
나는 그녀의 수감 직후부터 소셜 네트워크를 통하여 그리고 <오마이뉴스>지면을 통하여 사건 전말에 대하여 상세하게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그뿐이었다. 이집트 주재 대한민국 공관의 힘이 아니었다면 한국인 김은주씨는 자칫 최초의 한인 수감자가 아닌 최초의 한인 형사범이 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변호사의 변론을 허락치 않았던 법정을 지켜보며 느껴야했던 절망감은 아득함 그 자체였다. 그녀가 재판 후 감옥으로 재이송될 때마다 나는 이런 일이 끝도 없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불안했다.
김은주씨 석방 그러나...
지난 주에는 미국정부가 이집트에서 NGO로 활동하다 체포된 자국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펼친 작전이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국내외의 질타를 아랑곳 않고 미 정부는 자국민들을 무사히 빼내어 전용기에 태워 귀국시켰다.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나머지 수감 외국인들이 자칫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지 우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 일로 이집트 국민들은 물론 사법부까지도 심하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누가 보아도 이는 협상이라기보다 주권침해에 버금가는 치욕이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진행중이었다. 아직 현지 법정에서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현지 사법부를 존중했고 기다렸지만 미국은 그러하지 않았다. 부러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미국인들이 석방된 날(2월26일)로부터 열흘 뒤에 김은주씨의 재판이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3월 4일로 재판이 당겨질지도 모른다는 애매모호한 소식에 우리는 무작정 대기해야 했다. 그러고는 4일이 지나고 5일이 되어서야 그것도 재판 한 시간 전에야 정확히 그날 재판이 있으리라는 공지를 전달받았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부랴부랴 법정에 닿았을 때 나는 지난 번과는 사뭇 다른 법정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좀더 진지했고 조심스러웠으며 변호사들에게 변론의 기회를 단 몇 분이나마 허락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희망적으로 보였다.
법정에는 김은주씨만이 아니라 30여 명의 수감자들이 함께 재판을 받았다. 영국인 사진작가들도 함께였다.그리고 마침내 영국인들을 제외한 그 법정의 모든 수감자들에 대한 석방결정이 내려졌다. 모두가 환호했고 나와 김은주씨는 서로 얼싸안고 울기만 했다. 모두에게 감사했다.우리 공관이 현지 사법부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의외로 좋은 결과가 있은 것은 아닐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3월 5일 재판이 끝나고 김은주씨는 다시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저녁 때쯤 다시 카이로로 데려올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 하나만을 위해 현지 경찰들이 그 먼 거리를 하루에 세 번이나 왕복하리라 믿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판결은 났고 그녀는 나올 것이 아닌가.
3월 6일 오전 지난 밤 예상대로 김은주씨는 카이로로 이송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리고 경찰소 구치소로 옮기기 전에 –판결을 받았어도 곧장 석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이 사건으로 처음 알았다 –보안국에서 몇 가지 거쳐야할 절차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보안국 밖에서 기다리면 되리라 여겨 오전부터 한없이 정말 한없이 기다렸다. 어떻게 경찰과 검찰의 공조가 그리도 안될 수가 있는지.
교도소에서는 카이로로 가는 중이라 그러고 카이로 경찰서에서는 보안국에서 아직 안왔다 그러고 보안국에는 김은주씨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로서는 김은주씨의 행방이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는 자기 일은 재판종결과 함께 끝났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보안국은 민간인신분으로 사람 찾으러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다시 우리 공관에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야 비로소 김은주씨가 아직도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이 되었다.
3월 7일 김은주씨는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카이로로 이송되었다. 처음 체포되었을 당시 머물렀던 경찰서 구치소에서 김은주씨는 하루를 묵어야 했다.
3월 8일 그녀는 경찰서와 보안국에서 아침부터 몇 가지 절차를 밟고 이민국이 있는 모감마로 다시 이송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하는 일뿐이라고 모감마의 직원은 누누히 장담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공관에서 파견된 사람이 아니면 그 이상은 설명해줄 수도 김은주씨를 데리고 갈 수도 없다고 했다.
박 서기관님이 현지인 행정직원을 파견해주셨다. 이 사건으로 나와도 안면이 있는 아하맛 무스타파씨였다. 관록이 있어 성품이 차분하고 영어가 뛰어난 아하맛씨는 우리가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이미 파악하여 정보를 알아왔다. 김은주씨는 이민국에서 두 가지 절차가 더 남았으며, 그 후에는 항공권을 구해서 보호경찰과 함께 공항으로 바로 후송될 것이라고 했다. 추방이나 다름없었다.
여권은 이민국에 압수당했다. 출국일에 역시 내어줄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인 9일은 금요일이어서 이민국도 일을 하지 않으므로 김은주씨는 별 수 없이 이틀을 더 구치소에서 보내야 한다. 하지만 8일 늦은 오후에 나는 그 아직 남았다는 두 가지 절차가 기적적으로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김은주씨는 이르면 오는 토요일에 출국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새삼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이제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무사히 이 나라에서 나가기가 어쩌면 이리도 어려운지. 이 장을 감히 빌려 김은주씨 사건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신 주이집트 대한민국대사관 박 서기관님과 전 부인회장 이정희님, 현 한인회장 이진영님, 한국의 김수영님, 카이로의 요세프님 그리고 멀리 시와에서부터 달려와주신 부부와 최현석님, 제니님께도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실인즉 사건 초기에 몹시 겁이 났다. 잊히면 어떡 하나 하는 걱정에 마음을 졸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끝까지 한마음으로 매달려 구출해낼 수 있으리라 예상치 못했다.
'단 한 명의 우리 국민도 끝까지 찾아가 구해낸다.'
이 말이 실현될 날이 오리라 믿지 않았다. 우리도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리라 꿈꾸어 본적 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이 왔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새삼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이 사건에 염려와 관심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 전문이, 페이스북에는 일부가 발췌되어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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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김은주씨 석방..."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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