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밥셔틀'... 요즘 이게 대세입니다

[르포]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탄원서 4000장 쇄도 "희망 보인다"

등록 2012.05.01 10:01수정 2012.05.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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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덕수궁 앞 대한문에 마련된 쌍용차 분향소에 모습이다. 현재 시민 상주단이 자리를 함께 지키고 있다.

덕수궁 앞 대한문에 마련된 쌍용차 분향소에 모습이다. 현재 시민 상주단이 자리를 함께 지키고 있다. ⓒ 김혜승

덕수궁 앞 대한문에 마련된 쌍용차 분향소에 모습이다. 현재 시민 상주단이 자리를 함께 지키고 있다. ⓒ 김혜승
 
"보여, 보이는 것 같아. 대한문에서 보니깐 보여."
 
하루 만에 전국 각지에서 평택 법원으로 약 4000장의 탄원서가 쏟아졌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평택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차 4차 희망텐트' 행사 도중 연행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동료 고동민씨는 "(마음이 모이는) 발걸음이 비로소 보이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던 지난달 24일 평택경찰서에는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폭주했다. 이후 '밥셔틀'을 자처한 시민들이 갖가지 음식과 구호물품들을 대한문 분향소로 연일 보내왔다.
 
연이은 동료의 죽음과 사회적 외면이 주는 절망감을 이겨내고자 나선 서울시청 광장 거리. 차디찬 길바닥 위에 '쌍차' 해고자들을 위한 희망이 싹트는 것일까?
 

"대한문 앞, 여기 사람이 있어요"

 

a  7일, 대한문 앞 분향소 모습이다. 시멘트 바닥 위 영정사진만이 이곳이 분향소임을 보여준다.

7일, 대한문 앞 분향소 모습이다. 시멘트 바닥 위 영정사진만이 이곳이 분향소임을 보여준다. ⓒ 김혜승

7일, 대한문 앞 분향소 모습이다. 시멘트 바닥 위 영정사진만이 이곳이 분향소임을 보여준다. ⓒ 김혜승

 

22번째 죽음. 쌍용자동차 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동료 이윤형씨가 투신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22명의 영정이 그려진 하얀 전지를 깔았다. 총 정리해고자 2646명 중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서 싸우고 있는 조합원은 30여 명에 불과하지만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큰' 용기를 냈다.

 

"여러분, 여기 사람이 있어요."

 

4·11 총선을 앞두고 시청광장에서는 떠들썩한 정치행사들이 많았지만 이런 '총선바람'이 이들에겐 오히려 더 상처였다. 무리의 사람들은 분향소를 지나쳤다.

 

"만 명 정도가 참석한 정치 집회가 열렸는데 사회자가 틈틈이 바로 인근에 쌍용차 분향소가 있음을 공지하기도 했는데 다녀가신 분은 백 명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 게 상처죠, 저희에겐."

 

쌍용차 노조 집행부의 '막내' 고동민씨의 말이다. 김정우 지부장은 "왜 우리는 총선 시기마저 이슈가 되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역시 같은 지적을 했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열린 강연에서 "쌍차 해고 노동자들은 싸움의 긴 시간보다 '왜 우리에게 오지 않는가, 왜 우리는 이 세상이 돌아보지 않는가'라면서 세상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절망이 크다"라고 말했다.

 

'대한문 분향소'는 쌍용차 노조가 스스로 내린 첫 결정이었다. 그동안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등 노동사회 세력과 함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무작정 뛰쳐나왔다. 사전 준비도 없었다. 천막, 탁상 등 물품들도 사후에 조달됐다. 그 과정은 뺏기고 뜯기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영정사진은 찢기고 플래카드는 뺏기면서 하루하루 기자회견과 촛불추모제를 이어갔다.

 

a  21일 '4차 희망텐트'에서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행진중이다. 공장에 다다르자 곳곳에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21일 '4차 희망텐트'에서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행진중이다. 공장에 다다르자 곳곳에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 김혜승

21일 '4차 희망텐트'에서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행진중이다. 공장에 다다르자 곳곳에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 김혜승
a  지난 21일 쌍용차 '4차 희망텐트', 평택공장 앞에서 공장 문을 막아선 경찰에게 상주복을 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22명이나 죽었다,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1일 쌍용차 '4차 희망텐트', 평택공장 앞에서 공장 문을 막아선 경찰에게 상주복을 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22명이나 죽었다,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 김혜승

지난 21일 쌍용차 '4차 희망텐트', 평택공장 앞에서 공장 문을 막아선 경찰에게 상주복을 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22명이나 죽었다,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 김혜승

 

'3차 희망텐트'가 열린 지 두 달 만인 지난달 21일 열린 '4차 희망텐트'.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비가 내리는 날씨 탓에 사람들은 더 적었다. 22개의 관과 꽃상여를 든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은 한 시간 반에 걸쳐 평택역에서 쌍용차 평택공장까지 걸었다. 공장 앞은 경찰들로 벽을 이루었다.

 

"경찰 여러분, 우리가 무슨 죄인입니까? 우리도 사람입니다. 제발 길 좀 열어주세요."

 

집회 전 노조는 사측에 "22명이나 죽었으니 만나서 얘기 좀 하자"며 '대화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회신은 간단했다. "(대화할) 담당 인원이 없으니 불가능하다"는 문자 메시지가 전부였다.

 

이어 최루액 등 무력을 동원한 경찰과 조합원들 사이에 마찰이 생겼고 이때 이창근, 김정욱 등 3명의 조합원이 연행됐다. 경찰이 내건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침입' 등이었다. 연행되는 과정에서 이창근씨는 이런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오랜만에 공장 안에 들어갔다. 참 더럽고, 서럽다. 공장 안도 벚꽃이 폈던데. 다시 평택경찰서에 연행됐다.

 

지난 3년의 과정을 돌이켜보자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희망'은 없었다.

 

4000장의 탄원서, '밥셔틀'... 시민들이 움직인다 

 

a  지난 24일 이창근, 김정욱씨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던 날. 고동민씨는 연대방문 온 한진 이용대씨의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난 24일 이창근, 김정욱씨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던 날. 고동민씨는 연대방문 온 한진 이용대씨의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 트위터

지난 24일 이창근, 김정욱씨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던 날. 고동민씨는 연대방문 온 한진 이용대씨의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 트위터

4월 23일 고동민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속영장 발부를 막기 위한 탄원서를 보내달라며 트위터,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연행된 동지 2명의 영장실질심사가 내일 오후 2시경 평택법원에서 있습니다. 탄원서를 작성해서 4/24(내일)11시까지 보내주세요."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단 하루 만에 약 4000장의 탄원서가 평택법원에 보내졌고 평택경찰서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SNS의 힘이었을까?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a  쌍용차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대학생 2646명이 4월 30일자 <한겨레>에 실은 의견광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대학생 2646명이 4월 30일자 <한겨레>에 실은 의견광고 ⓒ 한겨레

쌍용차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대학생 2646명이 4월 30일자 <한겨레>에 실은 의견광고 ⓒ 한겨레

요즘 대한문 분향소에는 음식들이 한 가득이다. 트위터상에서 시작된 '밥셔틀'의 영향이다. 아기를 업고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여성부터 지방에서 직접 음식을 싸가지고 오는 중년 남성까지 다양했다.

 

분향소를 지키는 '시민상주단'의 표정도 밝아졌다. 대한문 분향소에는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돌아가며 일정한 시간 동안 조문객을 받는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부쩍 젊은 여성들과 청년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2646명의 대학생들'의 이름으로 일간지 광고도 게재됐다. 정리해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가고 싶다는 대학생들의 '희망행동'이었다.

 

"5월 19일, 여러분 희망을 보여주세요"

 

a  대한문앞 분향소, 방문한 사람들로 온기가 오간다.

대한문앞 분향소, 방문한 사람들로 온기가 오간다. ⓒ 김혜승

대한문앞 분향소, 방문한 사람들로 온기가 오간다. ⓒ 김혜승

"'중요한' 마음들이 모여지고 있어요. 이렇게 모이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거예요."

 

지난달 27일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만난 고동민씨는 이렇게 말했다. 때마침 도착한 분향소에는 공지영 작가가 보낸 떡들을 시민상주단 및 방문자들이 오손도손 나누고 있었다.

 

"하루 만에 탄원서가 4000장이 모였어요. 4000장이.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직접적으로 부탁한 적도 없어요. 길게는 8년까지 장기간의 싸움 중인 타 사업장에서 보내온 것들이에요. 자신들의 싸움도 힘들 텐데. 더구나 현대차, 기아차지부는 업무 도중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1000부, 800부를 받아 보내주셨어요. 우리가 뭐라고....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네요."

 

그는 도움을 준 이들을 '자발적 연대'라 표현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동안 언론으로만 '아 또 죽었구나' 했던 분들이 이제는 '바라보지만 말고 한 번 가보자, 전화해 보자'라며 움직이는 게 보여요. 무척 소중한 마음이에요.사실 여전히 저희 근처에 서성이다가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공지영 작가는 시민들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게 '이제 투쟁 음악 말고 클래식 음악 틀고 복장도 캐주얼하게 바꿔보는 것은 어때'라고 조언해 주시기도 했어요.(웃음)"

 

이어 "이른가, 과한 생각인가요?"라며 "사실 아직 이르죠, 아주 밑바닥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움직임이에요"라고 자신의 판단에 겁을 내기도 했다.

 

"이른 판단일 수도 있어요, 언제 (희망이) 사라질지도 모르죠. 5월 18일 49재 이후 열릴 19일 추모대회 때까지 지켜봐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동민씨는 기쁨과 초조함 속 자신의 감정을 애써 누르는 듯 보였다. 그가 대한문 앞에서 발견한 '희망'은 정말 피어날까.

 

한편, 고 이윤형씨의 분향소는 49재를 맞는 5월 18일까지 대한문 앞에서 진행되며 5월 19일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대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다. 5월 3일부터는 전국 동시다발 1인시위가 진행될 예정이다.

 

a  현재 쌍용차 분향소 주변은 시민들의 접근을 어렵게 막아놓은 노란색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현재 쌍용차 분향소 주변은 시민들의 접근을 어렵게 막아놓은 노란색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 김혜승

현재 쌍용차 분향소 주변은 시민들의 접근을 어렵게 막아놓은 노란색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 김혜승
#쌍용차 분향소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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