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읍성에 왜 돌하루방이 있는 걸까요?

등록 2012.05.04 10:19수정 2012.05.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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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천읍성에서 바라본 사천읍내. 작은 읍내이지만 포근함 어머니품입니다.

사천읍성에서 바라본 사천읍내. 작은 읍내이지만 포근함 어머니품입니다. ⓒ 김동수

사천읍성에서 바라본 사천읍내. 작은 읍내이지만 포근함 어머니품입니다. ⓒ 김동수

사천읍성은 사천시민, 그 중에도 읍내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다른 지역 사람들은 존재자체를 잘 모릅니다. 조선 세종 때 백성을 보호하고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인 사천읍성은 지금은 사천읍 사람들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사천읍성 팔각정(침오정)에서 바라보는 사천읍내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합니다. 무엇보다 보름달이 뜬 날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룹니다.

 

숲과 꽃들 잔치가 벌어진 읍성 곳곳을 다니다보면, 작은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3·1의거 기적비입니다. 3·1의거 기적비 안내문 기록을 보면 사천에서의 1919년 기미 독립운동은 3월 13일 사천시 곤양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a  사천읍성에 세워진 3.1기념비

사천읍성에 세워진 3.1기념비 ⓒ 김동수

사천읍성에 세워진 3.1기념비 ⓒ 김동수

 

이후 3월 21일 사천읍, 25일 삼천포, 4월 5일 곤명, 10일 서포에서 학생들과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후 남녀노소, 빈부 구별이 없이 조국 독립을 외쳤다고 합니다. 이들은 학교 졸업식과 장날에 사람이 모이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날 그 음성이 귓가에 울리는 듯 합니다.

 

사천읍성에서 오래만에 본 '자연보호헌장탑'이었습니다. 자연보호헌장은 1978년 10월 5일에 발표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의 삶의 자원이다. 자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으로 오묘한 법칙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a  자연보호헌장비.

자연보호헌장비. ⓒ 김동수

자연보호헌장비. ⓒ 김동수

 

자연보호헌장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일은 국가나 공동단체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의무이다"(1항)와 "개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며, 자연의 보존이 우선 되어야 한다"(4항)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이 두 조항만 지켰다면 4대강 삽질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천읍성에는 침오정(枕鰲亭)이 있습니다. 남문에는 영화루(永和樓), 동문에는 제경루(薺景樓)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침오정도 북문이라고 하지만 정자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 침오정은 1988년에 새로 지었고, 2005년에 단청을 입히면서 현판을 올렸다고 합니다.

 

a  팔각정은 침오정. 그런데 사천읍성에 왜 돌하루방일까요.

팔각정은 침오정. 그런데 사천읍성에 왜 돌하루방일까요. ⓒ 김동수

팔각정은 침오정. 그런데 사천읍성에 왜 돌하루방일까요. ⓒ 김동수

 

그런데 침오정 앞에 돌하루방이 덩그러니 있어 의아했습니다. 사천읍성과 돌하루방, 조금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돌하루방을 세웠을까요?

 

현 사천읍성은 1990년대 초에서 개축을 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 빈틈이 보입니다. 성벽 중간에는 무너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글귀도 보였습니다.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선조들이 개축한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무너질 수 있다는 후손들 글귀를 보면서 따끔한 충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벽 쌓는 일까지 빨리 빨리한 결과입니다.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a  사천읍성. 지난 1990년대 다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선조들이 개축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할까요

사천읍성. 지난 1990년대 다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선조들이 개축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할까요 ⓒ 김동수

사천읍성. 지난 1990년대 다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선조들이 개축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할까요 ⓒ 김동수

a  사천읍성. 지난 1990년대 다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사천읍성. 지난 1990년대 다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 김동수

사천읍성. 지난 1990년대 다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돌과 돌 사이 공간이 왠지 불안합니다. 선조들 지혜가 놀랍습니다 ⓒ 김동수

 

우리나라 공원을 가면 거의 있는 탑이 있는데 '충혼탑'입니다. 사천읍성에도 충혼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호국공원으로 옮겨갔습니다. 충혼탑이 있던 자리가 휑합니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충혼탑이 있었다는 작은 흔적만 남기는 것도 좋겠지만 휑한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다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보호하기 의해 축성한 사천읍성, 그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사천 사람들은 찌든 마음을 씻기 위해 오늘도 읍성에 자신을 맡깁니다.

 

a  충혼탑이 있던 자리. 지난 2010년 10월 사천시 호국공원으로 옮겼습니다. 왠지 가슴이 텅빈 느낌입니다.

충혼탑이 있던 자리. 지난 2010년 10월 사천시 호국공원으로 옮겼습니다. 왠지 가슴이 텅빈 느낌입니다. ⓒ 김동수

충혼탑이 있던 자리. 지난 2010년 10월 사천시 호국공원으로 옮겼습니다. 왠지 가슴이 텅빈 느낌입니다. ⓒ 김동수

 

사천읍성

사천읍성의 위치는 정의리일부와 선인리 일부에 걸쳐 있으며, 현재의 산성공원 일대를 포함하는 전지역이 옛 읍성지(邑城址)이다.

축성시기는 조선 세종(世宗) 24년(1442)에 병조참판(兵曹參判) 신인손(辛引孫)이 왕명에 의해 성을 쌓았다. 이로부터 4년 뒤인 세종 27년(1445) 봄에 공청(公廳:공무를 보는 집) 등 모든 건물을 짓고 현기(縣基)를 정동 고읍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규모를 보면 처음의 기록에는 성둘레 3,015척(尺),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세 곳이라 하였다.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가퀴(여첩女堞) 630곳, 성문 및 옹성이 각 세 곳에 있다 하였다. 이로 미루어 초기에 추가하여 증축(增築)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성은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으나 임진란 때 왜적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9월 28일경, 병사(兵使) 정기룡(鄭起龍)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血戰)을 벌여 왜적을 몰아내었다. 이때 명나라의 유격장 노득공(盧得功)이 전사하였다. 지금의 산성공원은 옛 읍성의 일부로서 성안에는 수양루(洙陽樓)와 팔각정 등이 있어 시민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사천시 누리집 '사천읍성')

#사천읍성 #침오정 #돌하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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