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한테 '오빠'라고 불러주면 안 돼?"

[오빠라고 불러줘②] 나이 52, 인생은 7회말이지만...

등록 2012.06.03 10:44수정 2012.06.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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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래봤자 아저씨'들의 이야기. 기획시리즈 '오빠라고 불러줘'는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고픈 '마음만은 오빠'들의 고군분투를 담습니다. [편집자말]
a  이 정도면 오빠소리들을 만 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오빠소리들을 만 하지 않을까. ⓒ 조상연


"당신, 나한테 오빠라고 부를래?"

"이 양반이 갑자기 미쳤나? 왜 그래?"
"아니, 그냥..."

"당신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사촌누이들 있잖아?"
"족보에 올라있는 그런 누이동생 말고."
"그냥 오빠 소리가 듣고 싶어서?"
"응. 하하하."

지난 26일, 책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선잠이라 그랬는지 이내 깼다. 옆에 누워 있는 아내를 깨워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 당신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치자. 그럼 당신은 다 큰 누이동생하고 한 이불에서 자는 거네? 그거 근친상간이라는 거 알아, 몰라?"
"참나, 이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쯧쯧."

"근데 왜 자다 말고 일어나 갑자기 '오빠 타령'인데?"
"좀 젊어 보이고 싶어서... 오빠 소리 들으면 좀 젊어지려나 싶어서 그랬다, 왜!"
"오빠 소리 들으면 세월이 거꾸로 가나? 이 양반이 미쳤나. 분수를 알아야지. 킥킥킥."

듣고 보니 아내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무 소리 못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내에게 '오빠' 소리 하나 듣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해지진 않았다. 왜냐고? 이래봬도 밖에 나가면 뭇 사람들에게 제법 오빠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오빠 소리를 듣기까지 실로 엄청난 노력과 돈이 들어갔다.


'따봉' 표시해 준 아가씨... 고마워요

a  수년 전 BMW 오토바이를 인수하던 날. 비싼 오토바이 샀다고 아내가 시댁으로 가출을 하는 바람에 데려오느라고 무지하게 애를 먹었다.

수년 전 BMW 오토바이를 인수하던 날. 비싼 오토바이 샀다고 아내가 시댁으로 가출을 하는 바람에 데려오느라고 무지하게 애를 먹었다. ⓒ 조상연


a  자칭 젊은 오빠들의 모임인 '논다니클럽'(논다니클럽은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만 다닌다는 뜻으로 내가 작명했다.)

자칭 젊은 오빠들의 모임인 '논다니클럽'(논다니클럽은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만 다닌다는 뜻으로 내가 작명했다.) ⓒ 조상연


내 나이 이제 오십하고도 둘. 야구로 치면 9회말까지는 안 갔지만 7회말 정도는 된 것 같다. 아직 나름 쌩쌩하다. 50대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면 게으른 사람이 석양질 때 바쁜 것 마냥 뭔가 급해 보인다. 오죽하면 세월이 물 흐르듯 빠르게만 지나간다고 한다. 사람들은 '젊음으로의 유턴(U턴)'이 안 된다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10년 정도 세월을 되돌려 놓을 자신이 있다. 나는 아직 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인 청춘이라고 생각하니까. 나이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늘 생각한다.

우선 나는 젊음을 되돌리기 위한 방법으로 오토바이를 택했다. 남성들의 자유를 향한 로맨스라고 하는 그 오토바이. 두건을 휘날리며 시속 80km로 우당탕거리며 달리다가 옆에 젊은 아가씨 운전 중이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어쩌다 마주친 '센스' 있는 아가씨는 엄지 손가락을 번쩍 들어 보이며 젊은(?) 오빠의 기를 살려주기도 했다. 오토바이 덕분에 나이 50을 넘겼어도 3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에게 '형'으로 불린다. 그런데 겉멋만 들어서는 '오빠'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오빠!" 이 한마디에 목숨 걸었다

a  <울고 넘는 박달재> <감격시대> <소양강처녀> 등 열 곡 정도는 자신 있게 퉁길 줄 안다.

<울고 넘는 박달재> <감격시대> <소양강처녀> 등 열 곡 정도는 자신 있게 퉁길 줄 안다. ⓒ 조상연


지난해부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다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전에는 겉멋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내실 다지기인 셈. 젊은 사고 방식을 갖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하여, 나는 기타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는 것이 배호의 <청포도 고향>이나 <굳세어라 금순아> 정도밖에 안 되니 기타 연주 역시 '올드'한 노래 쪽으로만 흘러 그만뒀다.

기타 배우기에 실패한 나는 두 딸을 살살 달래서 함께 연극, 뮤지컬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결과는 흡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공연장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a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서 뮤지컬  <포장마차> 를 보고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서 뮤지컬 <포장마차> 를 보고 ⓒ 조상연


어느 날, 역시나 딸들과 뮤지컬을 보러 갔다. 당시 관람객은 50여 명.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관람객들은 20대로 보였다. 나는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관객들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상관이랴, 나는 뮤지컬을 보는 내내 다른 20대들과 박수를 쳐가며 웃고 즐겼다.

간혹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대개 무표정하거나 그들을 가르치려고 든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 웃을 때 못 웃고, 남들이 손뼉 치며 동조할 때 멍하니 앉아있게 된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지도, 나이 먹은 것을 자랑삼아 말하지도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랑할 일이 없다. 왜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친구들보다 내가 잘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들과 어울리면서 내 실제 나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두 딸과 함께한 수련(?), 그리고 젊은 사고 방식 덕분인지 때로는 젊은 친구들보다 내가 더 난리를 쳐가며 적극적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젊은 친구들은 날 향해 외치곤 한다.

"형!" "오빠!"

이 한 마디는 별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불러주는 친근한 호칭 속에는 그들과의 '소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호칭에 목숨을 거는지도 모르겠다.

"아빠,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a  대학로에서 노래 한 곡조.

대학로에서 노래 한 곡조. ⓒ 조상연


하루는 딸들과 대학로를 거닐다가 노래를 한 곡조 뽑은 적이 있었다. 본디 청중이 300명 이상이 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않는 나지만, 이날은 젊은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니 너무 흥이나 기타 치는 친구 옆에 털썩 앉아버렸다. 앙코르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나마 박수를 받아서 덜 서운했다.

그런데,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두 딸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녀석들이 사진 몇 장 찍어 주더니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렸는데, 골목 한 귀퉁이에서 딸들이 슬금슬금 걸어나왔다. 골목에 숨어 있었단다.

"아빠,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야, 너희들 아까 박수 소리 못 들었어?"
"그건 사람들이 아빠가 안쓰러우니까 쳐 준거지... 집에 갈 거야! 좀 떨어져서 와!"

두 딸이 뭐라 해도 나는 아직 젊고 아직 청춘이다. 청춘은 아름다움에 민감하다. 청춘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정말 자기가 아름답다고 하는 그 어떤 대상을 발견한 순간 아닐까.

술 취해 지나가는데 전봇대가 시비를 걸면 엎어치기 한 번 해보자. 징징대지 말고 뒤로 뻗었던 주먹을 매섭게 앞으로 내질러 보는 건 어떨까. 우리에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용기와 패기가 있지 않던가. 청춘이 만개한 아름다운 우리의 참모습을 보자.

언젠가 누가 그러더라. 인생의 참맛은 9회말 투아웃까지 가봐야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고. 내 인생 아직 7회말이니 그래도 2회나 더 남아있지 않은가. 그러면 됐다.

"나는 아직 가슴이 뜨거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오빠라고. 아, 청춘이여!"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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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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