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일 강정 평화학교 교장강정에 머물게 된 이유를 들려주고 있다.
이명옥
조계사 앞마당에서 6월 2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부터 강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수요일(6일)에는 강정평화학교 교장 유가일씨로부터 그가 강정에 머물게 된 이유를 전해들었다.
"사랑이 클수록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도 커진다."
강정 평화학교 교장 유가일씨가 좋아하는 문구다. 유가일씨는 구럼비가 폐쇄되기 3주 전 우연히 강정마을에 갔다. 첫날 구럼비에서 양치질을 하다 눈이 마주친 붉은발 말똥게의 눈 때문에 그곳에서 활동가로 눌러 앉았다. 현재 유가일씨처럼 그곳에서 활동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60명 정도다.
"강정은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운 곳이에요. 강정에 간 첫날 용천혈에서 용천수로 양치질을 하고 있었어요. 양치질을 하는데 물속에서 불은발 말똥게가 저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 눈과 마주친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구럼비를 부수고 그곳에 해군기지를 지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제가 이라크에 있을 때 폭격이 심해지자 고아원에 아이들을 버려두고 담당자들이 달아나 버렸어요. 처음에는 폭격이 시작되면 아기를 안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멍하니 굳어지곤 했지요. 제가 그 극한의 공포를 이겨낸 방법은 제가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었어요. 아기를 보살펴야 하면 오직 그 일에만 온 마음을 쏟은 거죠."유가일씨의 이전 이름은 유은하다. 이라크 전쟁터에 인간방패로 가서 4개월을 살았다. 그곳에 갈 것을 결정한 순간 돌아온다는 기약은 없었다. 그곳에서 목숨을 버릴 각오로 갔기 때문에 어떻게 잘 죽을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낯선 땅 전쟁터에서 담당자들이 모두 달아난 고아원 영아들을 돌보며 2개월을 지내야했던 유가일씨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전쟁터에서 겪은 심각한 내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몸의 반쪽이 마비가 일어나면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됐다. 몸이 조금 회복되자 이름도 바꿨다. 이라크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아픔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가일씨가 강정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구럼비에 펜스가 설치되기 전 3주 동안 구럼비에서 보냈다. 구럼비의 아름다운 풍광과 벗하며 지낸 시간들은 이라크 전쟁보다 심각한 전쟁터에서 그녀를 머물게 했다.
"제가 이라크에 인간 방패로 갔었다는 사실 때문에 용기 있고 강한 사람으로 알지만 전 무척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강정서도 가능하면 경찰과 부딪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투쟁 현장에 잘 나가지 않는 편이에요. 이상하게 제가 나가기만 하면 연행이 되거든요(웃음).
처음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기 전에 새벽 4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사이렌이 울렸어요. 제게 사이렌은 공포 그 자체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바그다드에 있을 때 사이렌이 울린다는 것은 곧 폭격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거든요. 폭격이 끝난 뒤 나가 보면 온 시가지가 파괴되어 있고 사람이 죽어 있곤 했어요. 사이렌은 폭격이고 파괴고 죽음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는 저는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잊어버리고 당황하게 됩니다."그녀가 여전히 강정에 머무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