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
이차령
홍세화 : "그렇죠, 불안이 경쟁을 낳고 경쟁이 또다시 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인 거죠.
방금 이유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이랄까 이것이 정말 참 절망적이죠. 제가 유럽에 살 때는 가령 학교폭력문제 같은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사회전체가 들고 일어나서 토론을 하는 모습을 어쨌든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불감증이라고 할까요. 성장주의와 경쟁에 너무 매몰되다 보니까 옛날과는 다르게 공동체성이랄까 이런 게 완전히 와해되면서 불감증을 낳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내 코가 석잔데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구요."
이유진 : "한 회사에서 일하던(쌍용차 해고노동자들) 노동자와 그 가족이 스무 명 넘게 죽었고, 굴지의 반도체회사에선(삼성반도체) 오십 명 넘게 죽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대구에서 지난 6개월 동안 9명의 아이들이 자살을 했어요. 왜 이렇게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는 걸까요? 왜 이렇게 조용한거죠?
우리 사회는 마음속에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몇 명 정도는 희생을 당하더라도 우리 사는 데 전체적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몇 명의 희생을 개인적인 일로 묻어버리고 가는 것 같아요. 그게 박정희 때 한창 경제성장을 하면서 "파이 키워야 한다" "키워서 나눠먹으면 다 잘 살게 된다" 그러면서 노동자라든지 스러져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 논리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홍세화 선생님이 공동체 얘길 하셨는데,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지 같이 공분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공감하기보다는 대부분은 '사고가 또 일어났구나'라고 무관심하게 대하고, '뭐 어쩔 수 없지'라고 냉소하지 않습니까. 이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가 저는 제일 걱정이 됩니다."
하승창 : "삶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을 해체하기보다는 돈만 있으면 된다는 사회분위기가 큰 문제죠.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학교 교육조차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게 이런 불감증과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홍세화 : "제가 20년 만에 한국에 왔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가 물신주의였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이 광고를 보고 엄청나게 비호감이 들었던 것은 이건 그 자체로 야만인 거거든요, 상상력의 빈곤에서 오는. 그만큼 우리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상실해버렸다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상상력이 좀 남아있다면 화면 속 고급 아파트 모습에 매몰되지 않고 대단히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들의 처지에 한 번 서서 그 말을 되새겨보면 야만성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요.
'부자되세요'를 외치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그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데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학문과 종교일 텐데요. 대학은 경쟁하듯 기업화의 길을 가고 있고 종교도 주류는 물신주의에 앞장선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은 어렸을 때부터 전인적 인간이 아닌 경제 동물로 축소지향하는 가치관을 접하는 셈이죠."
모두가 부자일 수 없지만, 모두가 '부자되세요'를 외치는 대한민국 이유진 : "그만큼 한국 사회가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사회가 된 거겠죠. 돈이 있어야지 기본적으로 집도 구하고, 애 양육시키고 등록금 낼 수 있잖아요. 부모들이 양 어깨에 돈이라는 무거운 짐을 힘겹게 들고 있는 걸 본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돈이 최고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돈이 없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복지서비스나 사회적 기능들이 있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돈 돈 하지 않을텐데…."
홍세화 : "보편적으로 미래를 전망해볼 때 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 불안의 요인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 교육․양육을 잘 시킬 수 있을까,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주거조건을 확보할 수 있을까, 노후에 일을 못 하게 되면 길거리에 나앉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이 다섯 가지가 가장 중요한 불안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경우에는 이 모든 것을 개인이,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는 겁니다. 여기서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가족중심을 말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철저하게 가족이기주의 형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국가는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이념적으로는 국가주의가 관철되고 있는 거죠. 결국 우리 국민들이 굉장히 파편화 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관계성에 있어서 가족밖에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이유진 :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이 다섯 가지. 집, 일자리, 자녀양육, 그리고 건강, 다음에 노후. 진짜 이 다섯 가지만 어느 정도 안전망이 있다면 사람들이 꿈이라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니까 불안하고, 돈에 집착하고,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다들 워커홀릭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최근 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이 복지라는 것도 관계망으로 풀어야 된다고 봅니다. 예산도 늘려야 되지만, 어떻게 접근하는가 역시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 보육비, 양육비 같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런데 막상 보면 그곳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선생님들의 임금조건은 너무나 열악합니다. 선생님들의 과중한 노동과 스트레스가 잦은 이직을 낳고, 질 높은 교육을 제공 못하는 겁니다. 그것이 결국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겠지요.
이처럼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예산이 누구를 위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가 중요합니다. 결국 모두가 노동자인 이 관계망이 건강해져야 복지도 증진되는 것 같아요.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망 속에서는 서로가 쉽게 지치고 피곤하기 때문이죠."
하승창 : "지속가능한 삶을 생각해볼 때 환경이나 안전, 생태적인 문제들에 대한 불안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유진 : "녹색당 강령 중에 첫째로는 생태적 지혜가 있어요. 저는 이 문제가 앞으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욕심이 환경의 한계수용용량을 넘어서고 있거든요.
1년 열 두 달 중 이젠 여름이 다섯 달이나 되었잖아요. 5, 6, 7, 8, 9월. 지난 5월이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온도를 기록했대요. 요즘 지역에 다녀 보면 농부들이 기후변화 때문에 농사 짓는 게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세요. 또, 유가도 계속 올라가고 후쿠시마 사고도 터졌잖아요. 기후변화, 유가상승, 핵 사고는 우리 경제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협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기에 너무나 둔감하고 무감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다섯 가지에 대한 대비도 있어야 하지만 이제는 외부 충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세계 금융위기와 장기적인 경제 침체도 대비해야 하고요. 경제가 성장을 못한다하면 사람들은 거의 패닉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당연히 경제는 성장해야 하는 것이고, 더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747공약이 나온 거잖습니까.
그런데 안팎의 상황이 달라지고 있어요.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최고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와 한계 안에서의 성장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데, 우리사회는 아직 그 논의를 시작도 못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의 상황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까 외부적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무심한거죠. 내부의 치열함으로 인해 외부에서 오는 더 큰 충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은 후손에게서 빌린 것'... 녹색 가치 지향하는 관계의 시대로 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