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단 '직업정치인'... 민주주의는 괜찮을까?

[서평] 박노자외 외침, <좌파하라>... 혁명은 과연 오는가

등록 2012.06.29 10:28수정 2012.06.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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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냉소의 시대

요즘 가장 재미있는 개그프로그램이 무엇인가 하고 묻노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그콘서트>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것은 예측을 불허하며 동시에 시시각각,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개그콘서트>처럼 매주 짜여진 일정대로, 계획대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다. 우리에게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심지어 상당한 공부를 필요로 해서 우리를 작은 지식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과연 무엇일까?


필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정치권' 혹은 '국회'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적어도 한국이라는 극한의 냉소의 땅에서 정치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은 있다는 표현이다. 매우 씁쓸하지만, 현실 정치권은 우리에게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그것이 결코 긍정적인 심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제 한국에서 '정치'라는 말은 곧 '개그'와 동일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유발하는 웃음의 성격은 <개그콘서트>가 유도하는 그것과 180도 다르지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터진 검찰의 정치쇼는 시작에 불과했다. 당원 명부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이어 새누리당의 당원 명부 유출이 있었다. 서로 '당의 심장을 빼앗아 갔다'라며 비난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서로가 들이미는 이중잣대의 검증관, 심지어 국가관 검증, 안보관 검증 등 '검열의 칼날'도 휘몰아친다. 도무지 이 땅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독재 국가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자칭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외쳐야 하는 현실도 우리에게 씁쓸한 웃음을 선사해준다.

요즈음 필자의 주변에서는 '난 정치에 관심 없다'라는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심지어 그런 경향이 조금 더 '선진적'인 태도로 치부되는 모양새도 보인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고 표현을 하면 '분란을 조장한다'라며 꺼리는 기색조차 거침없이 드러내곤 한다. '친구들과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근원을 모르는 '속담'은 이젠 '격언'으로 격상되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두고 '투쟁의 과실을 날로 먹는 기회주의 분자들'이라며 비난을 퍼붓는 것이 정당할까? 그들의 '무임승차' 행위가 과연 우리가 비난할 만한 것이 될까? 일각에서는 그런 '비난'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 편'이 아닌 '회색분자'들에 대한 적개심 때문일 것이다. '회색분자'들은 저항하는 이들보다 기득권의 논리에 좀 더 쉽게 편입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회색분자'는 잠정적으로 '적'으로 비춰질 것이다.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런 '회색분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결코 옳은 태도는 아니다. 더불어 '회색분자'라는 단어 자체도 그다지 좋은 단어는 아니다. 물론 이들 중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런 행동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적어도 대중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들을 비난하기 이전에 이들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좌파하라> 겉표지

<좌파하라> 겉표지 ⓒ 꾸리에

박노자 교수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지적하고 있을까. 그는 우선적으로 '투표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한국의 투표만능주의, 나아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점을 찌른다. 문제가 있는 세상을 투표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오히려 대중을 무력함의 나락으로 빠뜨린다는 지적이다. 투표가 변화의 희망을 준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지난 서울시간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이 당선되고, 실제로 박원순에 의해 서울시의 시정이 나아지고 있으며 또 대중의 평판이 좋은 것을 본다면 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대중에게 안겨준다는 점은 매우 옳다.

그러나 투표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박노자의 지적은 한국이 '투표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투표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것이 결코 근본적으로 삶의 양태를 좀 더 낫게 바꿔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그는 현 의회민주주의는 다수를 위한 정치를 펼친다기보다는 오히려 기득권 유지 기구로서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진정한 사회주의자로서 현재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하기를 넘어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회색분자', 조금 순화시켜서 '냉소적 인구'라고 명명하는 것이 좋겠다. 이들은 누가 양산했는가? 다름 아닌 의회민주주의의 기만성이다. 마치 투표가 모든 것을 바꿔줄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바뀌는 것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잘해야 현행유지, 최악의 경우 개악을 저지르곤 한다. 게다가 그들이 지니는 특권적 계급위치는 그들이 저지르는 온갖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 면죄부를 발급해주곤 한다. 냉소적 인구 양산의 첫째 요인은 이러한 절차적 민주주의로 당선된 소위 '대표자'들의 기만성에 있다.

박노자는 이런 의회민주주의의 기만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직업정치인들이 기업들의 막대한 정치자금을 이용해 유권자들에게 그 정치적 '상품'을 '판매'하고, 그 '판매'가 성공되어 '금배지'만 달면 직업 관료, 기업인들과 하나가 되어서 기존의 체제를 기득권층의 이득을 위해 그대로 운영하는 것은,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좌파하라>(박노자, 지승호 저, 꾸리에 펴냄, p.61)

박노자의 지적대로 현 의회민주주의 또한 '상품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여진다. 유독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정치가 상품화되어 버린 이상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버린다. 다시 말해 '금배지'가 상품화 된 현 시국에서 과연 '금배지'를 구매할 수 있는 인구, 즉 국회로 들어갈 수 있는 인구가 몇이나 될 것인가? 당연히 충분한 재력이 있는 사람들로 한정되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내거는 각종 상품성 공약에 표를 던져줄 수밖에 없다. 표 밖에 던질 수 없는 상황에서, 변화의 희망을 품고 던진 표가 사표가 될 경우 대중이 가지는 환멸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의회민주주의에서 발생하는 기만성과 더불어 이러한 정치적 소외 현상도 의회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니는 근본 문제이자 동시에 냉소적 인구를 양산하는 두 번째 요인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수적 이유들로 인해 냉소적 인구가 양산되고 있지만, 어쨌든 그 진원지는 의회민주주의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중에게 충분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음과 더불어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희망을 싹부터 짓밟아 버리는 기만성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절차적 민주주의로서 어느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은 명백하다. 실제로 북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흔히 말하는 복지국가라는 것이 의회민주주의, 즉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과연 우리가 투표로 뽑은 '대표자'들이 우리의 의지에 따라서 움직여 줄 것인가? 그들의 이해관계는 어디에 있는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그 이해관계는 자본 세력과 결탁되어 있다. 미국에서 로비가 합법화된 것은 의회라는 기관이 얼마나 자본 세력과 잘 결탁할 수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자본가 계급에 봉사한다. 총기 소유로 인한 문제가 빈번함에도, 총기 관련 기업들의 로비에 의해 총기 소지법은 쉽게 무력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의회라는 기관이 기본적으로 자본가 계급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이 민중을 위해 움직일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대중적 투쟁으로 국가 권력을 압박할 때에 비로소 그들이 민중을 위해 움직이는 '시늉'을 한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지상낙원'으로 여겨지는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은 의회가 해결해주기 이전에 강력한 대중적 투쟁이 결집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대중적 투쟁 없이, 단지 투표로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요켠대 현 의회민주주의에서는 '금배지'라는 '상품'이 대중의 '표'라는 화폐로 구매되는 일종의 시장시스템이다. 그리고 구매된 '금배지'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의 압력이 없는 한, 필연적으로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돈줄' 즉 기업들, 자본가 계급에게 봉사할 것이다. 또한 이런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소외된 인구를 낳을 것이고, 소외된 인구는 주변부로 떠밀려 냉소적 인구로 편입된다.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냉소라는 것은 이처럼 본질상 크나큰 문제를 안고 있지만, 현재 한국에서 냉소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씁쓸하게도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라는 표현이 일종의 도도함, 혹은 터프함 정도로 간주되는 것 같다. '무정치적' 혹은 '반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런 태도가 사회 제반에 누적되어 있는 것이다. 현 좌파의 과제도 이런 냉소적 인구를 어떻게 재편성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2. 왜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침체된 경기를 다시 성장 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처방하겠다는 것이 모토다. 즉, 침체된 경기를 긴축과 임금 삭감, 노동 유연화 등을 통해 다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 주요한 전략이다.

그러나 박노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없다'라고. 덧붙여 박노자는 "자본주의의 문제는 신자유주의로 극복할 수 없다"고 아주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문제는 수도 없이 많지만 박노자는 현실에서 자본주의가 진행되는 국가를 구체적으로 들어서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역설한다.

첫째, 극심한 부정부패와 함께 안보꾼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고사된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살아남는 이유는 피착취자 계급의 수직적 분산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개인적 사견을 덧붙이자면 언뜻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가 전혀 없는 곳에서도 자본주의는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진다. 또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서만 해도 최대 자본주의 국가인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호구제와 같은 매우 비민주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박노자는 지적한다.

둘째, 현재 유럽에 몰아치는 신자유주의 광풍은 제 아무리 잘 구축된 복지 시스템도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더 정확히는 '자본주의적' 공격에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동시에 극우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 토양을 마련해준다는 사실이다. 제 아무리 잘 구축된 사민주의라 할지라도 어쨌든 자본주의의 틀 안에 남아 있는 이상 자본주의적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온건좌파가 '신자유주의적 배신'을 통해 노동자들의 표심을 극우들에게 돌려버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박노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살인적인 체제는 수정 자본주의가 되든 그 어떤 자본주의가 되든 어차피 결국 고통과 사회적 위기만을 낳으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자본주의의 문제는 과잉 생산의 위기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자면 사회주의로 가야죠. - <좌파하라> p.151

박노자가 지적한 부분은 대체로 타당하다. 체제가 자본주의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이 사회민주주의건, 신자유주의건 간에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언제든 공격을 당할 수 있으며, 적어도 신자유주의보다는 더욱 인간적인 사회민주주의 체제라 할지라도 그것의 지배세력은 자본주의 세력이므로 그들의 배신의 가능성이 높은만큼 극우가 활동할 토양이 넓다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위기를 낳는 체제라고 볼 수 있겠다.

3. 혁명은 현실인가

'현실 사회주의'라고 여겨졌던 소련이 무너짐과 동시에 '혁명'의 꿈은 사라지는 듯이 보였다.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시대착오적 발언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동시에 자본주의의 전성기, 혹은 승리를 노래하며 마치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엄청난 부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처럼 생각되었다.

더욱이 극우반공 정권이 자리 잡았던 이 땅에서, 그리고 다시 돌아와 정권을 잡은 극우반공정권의 매카시즘적 논리 앞에 여전히 '혁명'을 꿈꾸던 많은 좌파들은 힘없이 스러져갔다. 그들에겐 언제나 '빨갱이' 딱지가 붙었고 최근 들어서는 '종북'이라는 요상스런 단어마저 덤으로 붙었다. 그들은 '사회악'으로 치부되었고 동시에 '국가변란'을 꾀하는 '반란자'로 취급되었으며 법을 위반한 '불법자'로 낙인찍혔다. 해방 이후 대중적으로 불타오른 혁명적 열기는 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과 검증 앞에 속수무책으로 사그라들고 말았다. 더욱이 1980년 대 이후 다시 부활한 계급적 좌파들은 이제 '국가관', 또는 '안보관'이라는 신종 국가주의 논리 앞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국가주의의 망령에 지배당하는 대한민국 땅에서 여전히 좌파는 '몹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다분하다. '애국'이란 이름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고, '국익'이라는 이름이 모든 것에 면죄부를 발부해주는 시대 속에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내포한 비민주성과 계급모순을 드러낼 것이고 동시에 위기를 낳고 심화시킬 것이다. 이제껏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국가 권력이 일정한 통제를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를 보이는 지금, 신자유주의라는 가속페달을 밟고 자본주의는 신나게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노자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궁극적으로 지금 파산을 맞고 있는 것은 시장 자본주의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진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경제가 장기적으로 자기보존과 지속을 제대로 못 한다는 점과 그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 <좌파하라> p.179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동시에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자본주의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박탈하고 있다. 언뜻 자본주의가 행복을 보장하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물질에 의한 일시적 행복일 뿐이요, 동시에 자본에 의해 '선사된' 자유일 뿐이다.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인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대중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혁명이 항상 현실적인 이유다. 누적된 대중의 불만은 대개 두 가지 방향으로 표출되게 마련이다. 외부로 향할 경우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내부로 향할 경우 그것은 혁명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배자들은 언제나 체제 내적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고-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 문제라던가, 외국인 혐오증 혹은 가상의 '적'의 설정으로서, 언제나 그것은 폭력적 형태를 띤다- 안간힘을 쓰지만, 체제 자체의 모순이 파악되고 인식되는 즉시 대중은 혁명적으로 승화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도 독재라는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각성한 대중이 혁명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박노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혁명적 조직체의 필요성까지 말한다. '국가' 내지는 '자본주의'라는 잘 '조직된' 체제에 저항하려면 그에 맞선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급진적 복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은 혁명적 조직체를 구심점으로 한 강력한 대중의 유효한 압박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까지 한다. 또한 조직체가 없는 '우발적' 운동은 언제나 미완의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당시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촛불집회를 두고 '지도자도 지도 단체로 없는 자율적 운동'이라 칭찬한 것을 비판한다. 혁명적 조직체, 구심점 없이는 운동은 돌파력도, 지속성도 가질 수 없다고 말이다.

탁월한 지적이지만 '국가'라는, 체제라는 거대한 조직에 맞서기 위해서 투쟁을 결집시키고 돌파력과 지속성을 위한 혁명적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1차원적 논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투쟁을 조직하는 강력한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박노자의 의견에 동의는 하면서도 혁명적 조직체의 필요성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혁명적 조직은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 모순에 맞선 대중적 투쟁을 강력하게 조직하는 한편 체제의 문제점과 저항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혁명적 대중을 교육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문제는 뭐냐, 몽둥이 들고 상점들을 닥치는대로 약탈한다고 해서 이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반란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고, 이 사람들을 조직해서 반란이 아닌, 혁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겁니다. 산발적인 반란은 체제에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습니다. - <좌파하라> p.189

그 어떤 대중 운동이라 할지라도 구심점이 없다면 돌파할 수 없다. 더불어 명확한 의제 설정 없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분쇄할 수 있는가. 조직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투쟁의 결집이 없다면 그 어떤 투쟁도 더 잘 조직된 국가 기관, 자본주의의 기구들에 의해 역공을 맞게 될 것이 틀림없다.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한 이상, 그것을 뒤집어 엎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기구들의 조밀한 조직과 어깨를 견줄만한 강력한 구심점으로서의 혁명적 정당 내지는 조직체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최소한의 '협상' 여지는 있지 않겠는가. 물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전복이겠지만 말이다. 힘의 차이가 너무나 확연한데 '타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책 <좌파하라>에 나오는 표지문구는 인상 깊기 그지 없다. '자본주의는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이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해 사람들은 그동안 이 골칫덩어리 체제를 바꿀만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노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사회주의라고. 자본주의는 '극복'의 대상이지 '수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박노자는 이 모순덩어리 체제 속에서는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한다. 필자도 이 모순적 체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을 덮으니 반항심이 마구 생겨난다. 한 번 외쳐볼까. 대안은 사회주의다! 그리고 혁명은 여기, 바로 지금 이 땅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이런 글이 '종북몰이' 광풍이 한참인 대한민국 땅에서는 엄청난 거부감이 느껴지는 글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ㅅ과 전혀 관계도 없는 북한이 이름만 사회주의를 내걸고 존재한다 하여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노자의 외침은 극한의 냉소와 왜곡된 국가주의로 점철된 한국 땅에서 무척이나 외로운 외침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말해야 하고, 또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담론 형성조차 죽이려는 시도도 종종 보이는 것을 보면 이 사회가 아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절감한다. 필자의 글은 하나의 서평임과 동시에 '종북몰이' 광풍 속에서 대안담론으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적 냉소에 대한 도전이다. 북한이라는 거대 국가가 사회주의의 이미지와 맞물린다 하여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다. 오히려, 더욱 더 적극적으로 대안적 담론으로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해야 하고, 북한이 그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국가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이런 글이 '종북몰이' 광풍이 한참인 대한민국 땅에서는 엄청난 거부감이 느껴지는 글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ㅅ과 전혀 관계도 없는 북한이 이름만 사회주의를 내걸고 존재한다 하여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노자의 외침은 극한의 냉소와 왜곡된 국가주의로 점철된 한국 땅에서 무척이나 외로운 외침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말해야 하고, 또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담론 형성조차 죽이려는 시도도 종종 보이는 것을 보면 이 사회가 아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절감한다. 필자의 글은 하나의 서평임과 동시에 '종북몰이' 광풍 속에서 대안담론으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적 냉소에 대한 도전이다. 북한이라는 거대 국가가 사회주의의 이미지와 맞물린다 하여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다. 오히려, 더욱 더 적극적으로 대안적 담론으로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해야 하고, 북한이 그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국가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꾸리에, 2012


#박노자 #좌파하라 #자본주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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