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타기 명인 보고 유격훈련이 떠올랐다

명인의 비법은 부채... 삶의 교훈을 배웁니다

등록 2012.07.02 21:17수정 2012.07.0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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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 줄 타기 위해서는 이 길을 올라야 합니다. 발을 이 줄에 놓는 순간부터 긴장은 시작됩니다.
외줄줄 타기 위해서는 이 길을 올라야 합니다. 발을 이 줄에 놓는 순간부터 긴장은 시작됩니다.황주찬

"어떤 사람이 그러더구나. 줄 하나만 잘 타면 빨리 성공한다고... 그래서 그 말만 믿고 아홉 살에 줄에 올라와 줄타기를 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별 볼 일 없네그려. 매일 엉덩이만 터지고... 그래도 딱 하나 좋은 것이 있는데,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나를 올려다본다는 것."


줄타기 명인이 외줄에 올라 구경꾼들에게 구수한 입담을 늘어놓습니다.

지난 6월 30일 낮 12시, 세 아들과 함께 여수세계박람회장에 도착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렸습니다. 국제관을 지나는데 하얀 줄 한 가닥이 보입니다. 허공에 매달린 그 줄을 본 순간 군대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배고픔도 잊고 그 자리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군대에서 '유격훈련'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잘 알 겁니다. 모든 과정이 어렵지만 그중 '외줄타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들죠. 엎드려 줄을 배에 끌어안고 세 번만 당기면 이내 통닭구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리게 됩니다. 기어가야 정상인데 십중팔구는 매달려 갑니다.

제 몸무게를 손에 의지해 먼 곳까지 가려니 죽을 맛이었죠. 뒤쪽에선 조교들이 빨리 건너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요. 아! 그때 심정이란 이루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 통닭처럼 매달린 채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얼차려'를 줍니다.

명인의 숨은 기술은 부채에서 나온다


명인 줄타기 명인입니다. 숱한 시간을 줄에 올랐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긴장될까요?
명인줄타기 명인입니다. 숱한 시간을 줄에 올랐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긴장될까요?황주찬

줄타기 중요무형문화제 제58호입니다.
줄타기중요무형문화제 제58호입니다.황주찬

줄타기 높이는 2미터 정도 될듯합니다. 누구는 이 줄에 매달려갑니다.
줄타기높이는 2미터 정도 될듯합니다. 누구는 이 줄에 매달려갑니다.황주찬

물론, 시범 보인 조교처럼 멋지게 외줄을 건넌 훈련병에게는 큰 포상이 기다리죠. 그러나 달콤한 휴식과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 수 있는 훈련병은 거의 없습니다. 외줄 타는 요령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한쪽 다리에 힘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그날 엑스포장에서 만난 명인은 엎드려서 줄을 잡고 기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걸어갑니다. 사뿐사뿐 걷는데 나중에는 펄쩍펄쩍 뛰어오르기까지 하더군요.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았다면 종일토록 훈련은 안 받고 놀아도 될 신기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궁금했습니다. 제아무리 잘난 군인도 외줄 위에서 통닭구이처럼 매달리는데 이 사람은 훨훨 날고 있으니... 그 숨은 기술이 어찌 탐나지 않겠어요. 명인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했죠.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요. 부채다. 명인은 부채로 균형을 잡고 있었습니다.

활짝 편 부채가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잡아 주는 듯 보였습니다. 그날 외줄 위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넋 놓고 한참 쳐다봤습니다. 공연 장소가 너무 좁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 중의 하나였습니다. '엑스포광장'처럼 너른 곳에서 줄 놓고 놀았으면 많은 사람에게 더 큰 박수를 받았을 텐데 말이죠. 

줄타기 명인의 한마디, 정신 번쩍 듭니다

고사 그동안 줄을 탓던 무수한 명인들에게 안녕을 빕니다.
고사그동안 줄을 탓던 무수한 명인들에게 안녕을 빕니다.황주찬

공연 줄을 탑니다. 사뿐사뿐 걸어갑니다. 군대에서도 이렇게 걸었어야 했나?
공연줄을 탑니다. 사뿐사뿐 걸어갑니다. 군대에서도 이렇게 걸었어야 했나?황주찬

부채 부채의 도움이 큽니다.
부채부채의 도움이 큽니다.황주찬

돌아오는 길,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던 기억과 명인이 외줄 위에서 사뿐히 걸어가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가 던진 말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엉덩이에 피가 나도록 줄 위에서 놀았다던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무엇 하나 손쉽게 얻지 못합니다.

원하는 만큼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고 피나는 노력이 보태져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한 분야에 달인이 됩니다. 명인의 줄타기를 보면서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요 며칠 잠시 게으름을 피웠는데 줄타기 명인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드네요.

한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새로운 절반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렵니다. 그러면 인생이라는 외줄 위에서 훨훨 날아오르지는 못하더라도 통닭구이처럼 매달리지 않겠지요.

출발 줄위에 섰습니다. 처음 한걸음이 중요합니다.
출발줄위에 섰습니다. 처음 한걸음이 중요합니다.황주찬
#여수세계박람회 #줄타기 명인 #유격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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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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