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김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횡령·배임 등 혐의로 재판중이던 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이 16일 1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서경환 부장판사)는 회사에 수천억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기소된 김 회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한 김 회장의 지시를 이행하거나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홍동욱(여천 NCC 대표이사,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씨와 김관수(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씨에게도 각각 징역 4년에 벌금 10억 원,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유죄가 인정된 김 회장의 주요 혐의는 세가지다. 우선 한화그룹의 지배주주로서 영향력을 이용해 한화그룹 계열사들을 동원해 부실회사인 위장계열사 한유통·웹롭을 부당하게 지원, 이 과정에서 회사에 약 2883억 원의 손실을 끼친 점이다. 또 고가의 주유소 부지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동일석유㈜를 김 회장의 누나에게 인수시키면서 한화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 주식을 누나 측에게 저가로 양도시켜 계열사에 약 141억의 손해를 발생시킨 점, 그리고 임직원 명의로 상당한 차명계좌를 보유하고 주식거래를 하면서 양도소득세 약 15억 원을 포탈한 점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승연 피고인은 이 사건 모든 공소사실의 공모 혐의를 부인하고, 이는 전적으로 경영기획실 홍 재무팀장이 단독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검찰이 한화빌딩에서 압수한 문서들에 따르면 한화그룹 본부조직에서는 김승연 회장을 'CM'이라고 부르면서, CM은 신의 경지이고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이며, 본부조직은 CM의 보좌기구에 불과하다는 등 한화그룹 본부와 계열사 전체가 김승연 피고인 개인을 정점으로 하여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보고 및 지휘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김승연 피고인이 2007년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약 4개월 정도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증거로 제출된 구치소 면회 접견부에 따르면 당시 면회 온 임원들을 상대로 주식을 잘 관리하라고 당부하고, 천안 백화점 부지를 알아보라고 지시하며, 특별한 사항이 있으면 제때 보고해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재무팀장이 단독으로 방대한 차명 재산을 처리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 "양형기준 적용해 형량 준수"... 재벌 호시절 갔나이번 판결은 최근 사회적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재벌 총수에 대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사법부는 비슷한 혐의로 기소됐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지난 2월 21일 징역 4년6개월·벌금 20억 원을 선고(구속집행정지)하고 이 회장 어머니인 이선애 전 상무에게 징역 4년·벌금 20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이후, 6개월 만에 김승연 회장에게도 실형을 선고하므로서 배임·횡령·탈세 등 재계의 '화이트 칼라 범죄'를 더 이상 과거처럼 '선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과거 재계, 특히 재벌 총수들이 연루된 사건의 경우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경제 기여나 경영상의 공백 우려, 또는 막대한 벌금과 사회 기부금 등을 이유로 대부분 집행유예 선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재벌 총수에 대한 예외없는 사면복권과 함께 지속적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 비판을 받아왔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들이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8개월이었다.
횡령·배임·분식회계 등으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회장 등의 재벌 총수들은 한결 같이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벌총수들에 대한 이 같은 판결에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 '재벌정찰제'라는 말이 나오면서 큰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판결은 재계에 더이상 그런 '호시절'은 갔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재판부는 김 회장 등 피고인 3명에게 실형을 선고한 배경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횡령·배임죄에 관하여 정한 양형기준을 적용하여 권고 형량범위를 철저하게 준수"했다고 밝혔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김승연 회장 판결과 관련해 "오늘은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모 재벌 총수의 사례를 계기로 경제법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날"이라며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관행을 끊지 않으면 불법부당 행위를 근절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횡령이나 탈세는 남의 돈을 도둑질했다는 것인데, 일반 국민이 수천억 원을 도둑질했다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 사건은 아직 2·3심이 남아 있지만, 당장 재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태원 SK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등이 비슷한 혐의로 기소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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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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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횡령' 김승연 법정구속, '유전무죄' 고리 끊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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