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으로 향하기 앞서
신은미
지난 4월 열흘간의 평양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시차 적응을 할 겨를도 없이 다시 북한에 가기 위해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때는 5월 초. 7명의 미국 친구들 중 1명은 가정문제로 또 1명은 직장 문제로 동행할 수 없어 나머지 5명과 재미동포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모두 9명이 12일 동안 함께 북한을 여행하게 됐다.
12일간의 북한 여행을 마치고 나면, 우리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베이징을 경유해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우리 부부는 베이징 공항에서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한 다음, 항공편으로 옌지(연길)에 닿아 육로로 함경북도 나진·선봉에 갈 계획이었다. 평양에서 직접 나진·선봉을 갈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직접 가기에는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아 힘들다고 했다.
다음에 나진·선봉에 갈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평양에서 육로로 그곳까지 가리라 마음먹었다. 지난해 10월, 첫 북한 여행 당시 내 고향 대구를 떠올리게 했던 추억의 도시 원산을 경유해 함흥, 청진을 거쳐 슬프디 아름다운 동해안을 따라서 말이다.
한 실향민의 목 메임... "고향 땅 가보는 게 소원"이번 여행의 백미는 평양 봉수교회에서의 예배와 백두산 방문, 그리고 나진·선봉 지역 관광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는 관광보다 더 중요한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황해도 사리원'에 가겠다는 것.
북한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고향이 이북이라는 한 할아버님이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이며, 열세살 때 부모님을 따라 남으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할아버님은 "아직 미국 시민권이 없어 고향 방문을 못하고 있다"며 "혹시 당신들이 사리원에 간다면 사진이라도 좀 찍어올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할아버님은 "죽기 전에 친척들을 만나고, 고향 땅 한 번 밟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 논이며, 밭이며, 시내로 향하는 신작로며, 마을의 동무들이며... 모든 것이 눈에 선하다며 울컥하셨다. 그 할아버님은 "고향 생각이 날 때, 약주를 마시며 <고향의 봄>을 부르는데, 목이 메어 노래를 끝까지 불러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사실, 그동안 남편은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한 보육원에 의약품을 전달해 달라는 한 구호단체의 부탁을 받고 사리원 방문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 측은 "관광 목적으로 입국했을 경우, 관광 외의 일은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남편은 그래도 사리원을 가야겠다며 북측과 승강이를 벌였다. 그러던 중 그 구호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보내려고 했던 물품들이 유효 기간이 지나 보낼 수가 없게 됐다"고. 그 연락 덕에 우리는 여행사에 연락을 해 "사리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눈시울을 적시며 할아버님과 통화를 하던 남편은 전화를 끊자마자 여행사에 다시 전화를 걸어 "보육원에는 가지 않아도 되니, 그저 시내 구경만이라도 할 수 있게 일정을 변경해 달라, 황해도 사리원에 꼭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다시 사리원에 가게 해 달라는 남편의 부탁에 북한 측은 보육원 방문도 취소된 마당에 왜 저렇게 사리원을 가려고 하는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과연 사리원 방문을 허가할지 의문이었다.
순간 그 할아버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고향 땅을 단 한 번만이라도 밟아 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곳들을 우리는 한가하게 관광 목적으로 다녔다니... 갑자기 북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도 했다.
둘째는 평양의학대학 병원에 인공관절 치환 수술 장비를 전해 주는 일.
이 장비들은 지난해 10월 첫 북한 여행에서 돌아와 처음 뵌 이후 우리 부부가 스승으로 모시게 된, 세계적인 정형외과 의사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낸 오인동 박사님께서 평양 의학대학 병원에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들이었다.
지난해 북한을 처음 다녀온 후, 나의 무지함을 깨고, 굳게 빗장이 걸려 있던 마음의 눈을 열고 보니 곳곳에서 자신의 재능과 따스한 가슴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정열을 뜨겁게 불태우고 계시는 훌륭한 분들이 재미동포 사회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별히 우리 부부는 오인동 박사님이 쓰신 저서 중 하나인 <평양에 두고 온 수술 가방>을 감명 깊게 읽었다. 우리는 그분의 진심어린 동포애와 민족 통일의 염원을 가슴으로 읽으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됐고, 뒤늦게나마 그분의 끝없는 열정을 어설프게나마 좇으려 했다.
이미 선생님께서는 수차례 북한을 방문해 북한 동포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오셨다. 또한, 그들에게 선진 의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의학 활동뿐만이 아니었다. 오인동 박사님은 지난 2008년 문화관광부 선정 역사분야 우수도서인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 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를 비롯해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등의 저서를 통해 조국의 진정한 독립인 통일을 향해 온몸과 온마음을 불태우고 계셨다.
우리는 박사님의 동포 사랑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이번 5월 여행에 박사님께서 정성스레 준비한 수술 장비와 의료품을 전달하고자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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