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만6000원', 통닭 한 마리 값인데...

가구당 책값 소비 한 달에 1만6000원... 2003년 이후 가장 낮아

등록 2012.08.24 17:59수정 2012.08.24 19:35
0
원고료로 응원
a 2012년 2분기 서적 지출액 출판사들은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책을 내놓지 않을 수도 없다

2012년 2분기 서적 지출액 출판사들은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책을 내놓지 않을 수도 없다 ⓒ 통계청

고물가! 이 세 글자, 이 말만 떠올려도 징글징글 맞다. 언뜻 듣기에 '고물 값'인가 착각하게 하는 '고물가'란 요놈은 가난한 사람들 돈 갉아먹는 벌레인 '높은 물가'를 말한다. 그 고물가가 바로 여러 글쟁이들이 인세조차 받지 못하고 책을 펴내게 만드는 '기생충'이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 책을 펴내게 이끄는 '악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큰 출판사 몇몇을 뺀 나머지 출판사에서는 글쟁이들이 애써 쓴 글을 편집해 책을 펴내는 것을 몹시 꺼려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애써 비싼 종이값과 디자인, 인쇄, 제본비를 들여 책을 펴내도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 책을 서점에 깔아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반품'이란 레드카드를 받아야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출판사들은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책을 내놓지 않을 수도 없다. 앞서 펴낸 새 책이 팔리지 않더라도 또 다른 새 책을 서점에 내놓지 않으면 반품 등에 따른 잔고 부족 등으로 서점에서 책값을 한 푼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 책을 출판사에서 펴낸 글쟁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스스로 펴낸 책이 팔리지 않고 출판사에 반품만 잔뜩 쌓이게 되면 출판사 눈치를 은근슬쩍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자비 출판이 아닌 이상 인세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또 한 번 쌈짓돈을 털어 책을 사줄 수밖에 없다. 서로 공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더욱 심해진 것은 책도 마치 백화점에 내놓은 상품처럼 팔리는 것만 잘 팔리고 안 팔리는 것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일회용 휴지' 취급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초중고 '참고서' 구입비 포함... "책은 다음에 사도 된다"

서글픈 현실이다. 지금 '21세기 보릿고개'를 가장 힘겹게 겪고 있는 곳이 유명 글쟁이 일부를 뺀 나머지 글쟁이들과 자본이 약한 중소 출판사들이다. 문제는 고물가로 생활이 점점 어려워질수록 책을 사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부 김아무개(45)씨는 "가계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라며 "그 가운데 책은 다음에 사도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책 외에는 사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계청은 지난 21일 "전국 2인 이상 가구가 서적을 사는데 지출한 금액은 월 평균 1만6141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1% 감소했다"며 "절대 금액으로 따져보면 2003년 통계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서적 지출에는 유치원생과 초중고생 교재, 대학생 교재, 일반 서적이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점 가운데 가장 점유율이 높은 교보문고는 상반기 종이책 매출 성장률이 3%대에 머물렀다. 이는 예전 10%대였던 것에 비하면 낮지만 그나마 아직까지 감소세로 돌아서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평가다. 책을 사보는 사람이 줄어든 까닭은 인터넷과 태블릿 PC에서 정보를 쉬이 얻을 수 있는 데다 e북 이용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종이책 사보기가 줄어들면서 서점도 자꾸 사라지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강남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영풍문고 강남점이 1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인천공항에서 8개 매장을 꾸리던 GS문고도 매출이 급작스레 줄면서 지난 4월 부도를 맞았다. 이곳에는 지금 경인문고가 공항 서점운영사업자로 뽑혀 '경인문고' 간판을 걸어 책을 팔고 있다.


교보문고 전주점과 성남점은 건물주 용도변경과 상권 중복 등 문제가 겹쳐 아예 보따리를 쌌다. 대형 체인서점이 줄줄이 생겨나면서 종로서적과 대구 제일서적, 부산 동보서적 등 지역 토종서점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여기에 책 사보는 독자까지 줄어들면서 체인서점까지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 '핑크빛 희망' 싹틀 수 있을까

서점가 한 관계자는 "최근 태블릿 PC 보급이 확산하면서 일부는 전자책 수요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자책 가격이 종이책의 60% 수준에 불과해 가격 메리트도 있는데다, 휴대가 간편하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되짚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e북을 비롯해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 다운로드, 영화와 공연 관람, 독서실 이용료 등이 포함된 문화서비스 지출은 2분기 가구당 2만9933원으로 통계 집계를 한 뒤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한국전자출판협회는 "작년 전자책 시장 규모를 2891억 원으로 추산하면 올해와 내년 각각 3250억 원, 5838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가파른 오름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e북 시장 무게가 아주 낮은 편이라는 점이다. 교보문고는 전체 책 매출 가운데 e북이 차지하는 비중이 2% 남짓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아직까지 전자책 비중은 크지 않아서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전자책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2015년 가계 동향 개편 때 별도 항목으로 집계할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아무리 삶이 어렵다 하더라도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는 핑크빛 희망이 싹틀 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잡동사니 같은 정보만 가지고 '빨리빨리'를 내세우고 있는 이 발 빠른 시대를 따라갈 수 있을까. 책 한 권을 사는 것은 곧 내 지식을 사는 것이며, 수많은 글쟁이와 출판사를 함께 살릴 수 있다. '잊지 말자 6.25'처럼 '잊지 말자 책 사기!' 너나 할 것 없이 가슴 깊숙이 새기자.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통계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2. 2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3. 3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4. 4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5. 5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