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묘사에서 발견된 (일명) '신라의 미소' 수막새. 양지 스님의 작품이 아닐까?
정만진
'신라의 미소'는 마냥 행복한 얼굴인데
양지 스님은 선덕여왕 때 사람이다. <삼국유사>에는 '양지 스님은 조상과 고향을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대신 신묘한 방법으로 시주를 받은 스님이었다고 증언한다.
양지 스님은 시주받을 일이 생기면 석장(錫杖, 스님의 지팡이)에 포대를 걸었다. 지팡이는 저절로 시주할 사람의 집으로 날아가 포대를 흔들며 소리를 내었다. 포대가 차면 지팡이는 스님에게 돌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지 스님이 계시는 절을 석장사(錫杖寺)라 불렀다. 석장사는 지금의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뒤편의 계곡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지 스님은 대단한 예술가였다. 그는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삼존, 천왕상, 전탑의 기와, 천왕사탑 아래의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삼존, 좌우 금강신 등을 만들었다. 또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도 썼다. 지금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석장사터 출토 '고행상'과 사천왕사터 출토 '사천왕상'이 스님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양지 스님이 남긴 향가 <풍요>는 불교적 노동요 <삼국유사>의 양지 스님 이야기 '양지사석(良志使錫)' 안에는 향가 한 수가 섞여 있다. 스님이 영묘사에서 장육삼존상을 만들 때 사람들이 진흙을 나르면서 불렀다는 노래다.
오도다 오도다 오도다 오도다 서럽더라 서럽더라 동무들아 공덕 닦으러 오도다